
곽동신 회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열린 개소식에 임직원과 함께 참석했고, 회사는 19일 이를 공개했다. 미국에서 새 반도체 공장이 가동되는 시점에 맞춰 엔지니어를 현지에 배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번 진출은 고대역폭메모리(HBM)용 장비를 파는 데서 인공지능(AI) 반도체 패키징 장비로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행보로 읽힌다.
공장보다 서비스망 먼저, 고객 곁에 엔지니어 배치
한미USA의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영업과 기술지원이다. 한미반도체는 미국 고객사의 신규 공장 가동 일정에 맞춰 숙련된 엔지니어를 보내 장비 설치와 운영, 유지보수를 맡긴다. 현지 배치 인원과 출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대만과 중국, 싱가포르 법인에 이어 네 번째 해외 법인이다.
반도체 장비는 판매 이후 대응 속도가 재구매를 좌우한다. 장비가 멈추면 고객의 생산 라인도 선다. 한국에서 엔지니어를 보내던 방식으로는 시차와 이동 시간이 부담이다. 고객이 미국에 공장을 지을수록 현지 지원 체계를 갖추지 못한 장비 업체는 불리해진다.
고객 공장이 줄줄이 들어선다
시점도 맞물린다. SK하이닉스는 지난 8월 27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40억 달러(약 5조 5000억원) 이상을 투입하는 HBM 패키징 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클린룸은 2028년 10월 완공하고, 차세대 HBM4E 양산은 2029년 하반기 시작한다. 마이크론은 아이다호에서 D램·HBM 생산시설을 짓고 있고, 앰코테크놀로지는 애리조나 피오리아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세우고 있다. 앰코의 애리조나 투자 규모는 120억 달러로 알려졌다.
다만 이들 프로젝트가 곧 한미반도체의 확정 매출은 아니다. 공장 완공부터 장비 반입, 양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한미USA는 이 공백기에 현지 접점을 먼저 확보하려는 선제 투자에 가깝다.
노림수는 HBM에서 2.5D 패키징으로의 확장
미국 거점은 제품군 확대와도 연결된다. 한미반도체는 HBM용 열압착(TC) 본더 분야 세계 1위를 내세운다. TC 본더는 HBM 안에서 D램 칩을 쌓는 장비다. 회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GPU와 HBM 같은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2.5D 공정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9월 대만 '세미콘 타이완 2026'에서 한미반도체는 2.5D 패키징 장비 5종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중 4종은 지난해 말부터 파운드리와 후공정(OSAT) 업체에 양산용으로 공급되고 있고, 'TC 본더 120'은 출시를 앞뒀다. HBM4용 'TC 본더 4'와 내년 출시 예정인 '와이드 TC 본더'도 함께 소개했다. 회사는 같은 달 대만 고객사로부터 플립칩(FC) 본더 추가 주문을 받았다.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경쟁도 만만치 않다. 한화세미텍은 같은 전시회에서 TC 본더와 함께 팬아웃 패널레벨패키징(FOPLP) 장비, 하이브리드 본더를 공개했다. 미국 현지 고객사에 먼저 자리 잡는 것이 장비 채택의 변수가 될 수 있다.
상승세 속에서 나선 투자
한미반도체는 실적 여력도 갖췄다. 올해 2분기 매출은 약 2500억원으로 역대 최대 분기 기록을 세웠다. 전년 동기보다 39.5% 늘었다. 영업이익은 1303억원으로 51% 증가했고, 영업이익률은 51.9%였다. 해외 법인 설립 부담을 감당할 수익 기반은 갖춘 셈이다.
46년 만에 이은 '한미'의 뜻
회사는 이번 법인 설립에 창업정신을 실현했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고(故) 곽노권 창업회장은 1967년부터 14년간 미국 모토로라에서 일했고, 1980년 한미반도체를 세웠다. '한미'라는 사명에는 한국과 미국 반도체 산업을 잇는 교두보가 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회사는 창립 46년 만에 그 구상을 현지 법인으로 구현했다고 설명한다.
평가는 수주로 갈린다
법인 설립이 곧바로 장비 수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회사는 한미USA와 연계한 미국 고객사별 수주 규모를 공개하지 않았다. 앞으로 성과는 세 가지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고객 생산 일정에 맞춘 기술지원이 제때 이뤄지는지, 2.5D 장비가 파운드리와 OSAT에 채택되는지, 그리고 실제 후속 수주가 나오는지다. 한미반도체의 미국 진출은 사무실 개소보다 현지 대응력을 장비 공급 확대로 연결하느냐에 달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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