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SBS
19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1989년 조선대 교지 편집장이었던 대학생 이철규 변사사건 관련해 30년 동안 묻혀있던 감춰진 비밀에 대해 추적했다.
1989년 5월의 어느 화창한 봄날, 광주 제4수원지에서 새까만 얼굴과 퉁퉁 부은 몸으로 신원을 파악하기 힘든 시신 한 구가 수원지 관리인에게 발견되었다.
현장 수습을 위해 도착한 경찰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참혹했던 모습은 수많은 광주 시민에게 지울 수 없는 충격을 남겼다. 시신의 주인공은 조선대학교 전자공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철규(당시 25세) 씨로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시신의 상태는 그것만으로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손목에는 무언가에 묶여 있던 자국이 있었고, 다리에는 무언가에 찔리고 긁힌 상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이 주장한 실족 지점의 수심은 176cm였던 故 이철규 씨 키보다 낮은 1.6m였다. 정말 사인은 검찰의 주장대로 실족으로 인한 익사였을까? 검찰의 발표대로라면 故 이철규는 왜 그 저수지를 건너야만 했을까?
故 이철규 씨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가 그곳에 갈 이유도 없고, 수영을 잘했기에 수심이 낮은 곳에서 익사하지 않았을 거라 주장하면서 그의 죽음에 강한 의혹을 품었다. 이에 조선대학교 선후배들은 그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광주 시내를 돌아다녔고, 그가 제4수원지 바로 옆 삼거리에서 택시 검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검문 사실이 밝혀지자 경찰은 택시 강도 예방 차원의 단순 검문이었고 검문을 받다 도망간 사람이 故 이철규 씨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故 이철규 씨 대책위 상황실장은 “국가보안법으로 300만 원 현상금에 1계급 특진이 걸려 있어요. 그 1계급 특진을 놔두고 철수할 경찰이 누가 있어요?”라며 경찰의 발표에 의문을 표시했다. 당시 故 이철규 씨는 조선대학교 교지의 편집장으로 북한 관련 글을 실었다는 이유로 수배령이 떨어져 현상금과 특진이 걸려있던 상황이었다.
경찰은 택시 검문을 받다가 故 이철규 씨가 도주했고 그를 잡지 못한 채로 철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신이 발견된 이틀 뒤 이철규 씨 죽음과 관련해서 ‘이것은 개탄스럽고 잔악한 행위이다. 살인자가 밝혀져 엄벌에 처해지기를 바란다’라는 미국 국무성의 논평이 이례적으로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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