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좀 차분히 얘기해줄래요? 제발요” (가끔은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애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 “엄마는 지금 네가 어떤 기분인지 모르겠는데, 엄마한테 말해줄 수 있어? 네 감정을 이해하고 싶어” “엄마한테요? 왜요?” (이렇게 적나라한 거절을 당해보긴 처음이다.)
- “어디까지 궁금해 할 거예요? 엄마 진짜 피곤한 사람인 거 알아요?” (걱정이 되어 물어보면 꼭 내가 스토킹이나 하는 듯 귀찮아한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예민해지고 반항기가 생긴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직접 이런 일들을 겪고 나면, 정말 아이가 작정을 하고 작은 악마가 된 것 같다. 이제는 말싸움하는 게 너무 힘들고, 더 이상 나를 따르지도 무서워하지도 않는 이 아이가 과연 내 뱃속에서 나온 아이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무조건적으로 부모의 말은 듣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한 아이를 대하는 일은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다. 전쟁 같은 날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어느 날엔 ‘내가 그간 아이를 잘못 가르쳤던 건 아닐까?’ 하며 곰곰이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왜 아이를 낳기로 결심을 했던 것인지 화가 날 때도 있다. 이렇게 욱하며 분노를 느끼다가도 금세 부모로서 자격이 없는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린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변하는 아이만큼 부모도 흔들리게 된다.
‘널 만나서 반가웠다.’
벨기에 출신의 한 방송인이 자신의 부모가 가진 자녀관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용한 말이다.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인생의 한 시기에 거쳐 가는 인연임을 강조한 말이다. 즉, 자식을 하나의 인격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태도를 반영한 말이다. ‘내 뱃속에서 열 달이나 품었다가 낳은 내 자식’이라며 남다른 소유욕을 가진 부모들이 되새겨봐야 할 말이다. 사춘기가 찾아오면 부모는 아이 곁에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큰 변화를 겪는 사춘기는 아이들에게 엄청난 시기다. 변화라는 자체만으로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시기다. 아이 스스로 자아를 찾아가는 이 시기에 삶의 무대에서 부모가 비켜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를 밀어내는 아이를 존중해서 더 이상 아이와 친해질 수 없는 관계로 돌아서라는 뜻일까?
'사춘기 아이는 어느 때보다 엄마가 필요하다. 그저 그 방식이 이전과는 다를 뿐이다'아이의 사춘기에는 아이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함께 변해야 한다.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과 아이를 존중해줘야 할 일 사이에서 길을 잃는 부모들이 많다. 천방지축 사춘기 아이들을 어디까지 받아주고 어디까지 선을 그어줄 것인지, 그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도 아이 곁에 머물러 있는 부모들은 그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아이를 지켜보고 지원해주면 된다.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내달리는 사춘기 아이들에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안전을 지켜줄 과속방지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신, 아직 판단이 부족한 아이에게 부모 역할이 필요할 때는 당당하게 개입해야 한다.
자료: Love in the Time of Contempt, 조앤 페들러
마상현 기자 news@kidstv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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