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신 사외이사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자산순위 상위 30대 그룹 중 1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239개사 사외이사 876명을 분석한 결과, 올해 신규 사외이사 152명 중 전직 관료 인사는 39명(25.7%)으로 지난해 66명(30.7%) 대비 5%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검찰 출신의 감소가 가장 두드러졌다. 지난해 신규 사외이사 중 11명(16.4%)이었던 전직 검찰 인사는 올해 3명(7.7%)에 불과했다. 실제 신규 인물은 NH투자증권의 오광수 전 검사장과 SK디앤디·카카오게임즈의 노정연 전 검사장 2명뿐이다. 대통령실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재계 출신 34.2%로 급증...금융투자 전문가 대거 영입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재계 출신 사외이사의 급증이다. 지난해 38명(17.7%)에서 올해 52명(34.2%)으로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5년 사외이사 현황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신규 사외이사 중 재계 출신이 학계와 관료 출신을 앞지르며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재계 출신 신규 사외이사 39명을 세부 분석한 결과, 금융투자 및 자본시장 분야 전문가가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고강도 리밸런싱을 진행 중인 SK그룹이 대표적이다. SK가스는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을, SK오션플랜트는 문석록 글로벌자산운영 고문(전 삼성증권 M&A 팀장)을, SK케미칼은 박태진 전 JP모건 한국 회장을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기술 전문가들도 9명이 신규 영입되며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현대위아는 김찬우 고려대 인공지능학 교수(전 삼성전자 글로벌AI센터장)를, 롯데케미칼은 조혜성 대상 상담역(전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을 추천했다.
그룹별로 사외이사 구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CJ그룹은 올해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7명 중 6명(85.7%)이 관료 출신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전체 사외이사 28명 중 19명(67.9%)이 관료 출신으로 구성됐다.
삼성은 신규 사외이사 9명 중 5명이 관료 출신으로, 이 중 3명이 모두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삼성바이오로직스), 구윤철 전 국무조정실장(삼성생명), 김상규 전 감사원 감사위원(삼성중공업)이 해당된다. 삼성은 올해 검찰 출신을 단 한 명도 추가 선임하지 않았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롯데그룹에서 나타났다. 16개 계열사 63명의 사외이사 중 16명이 신규 인사인데, 이 중 14명이 재계 출신이다. 지난해 신규 26명 중 2명만 재계 출신이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백복인 전 KT&G 대표(롯데렌탈), 조웅기 전 미래에셋증권 부회장(호텔롯데), 손은경 전 CJ제일제당 마케팅 부문장(롯데웰푸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학계 출신은 대폭 감소, 전문성 중시 경향 뚜렷
학계 출신 사외이사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해 68명(31.6%)에서 올해 35명(23.0%)으로 8.6%포인트 줄었다. 지난해 33.3%에서 올해 26.4%로 감소세가 뚜렷했다.
신규 사외이사를 전문성별로 구분하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법률·정책 분야 사외이사가 31.0%에서 24.2%로 6.8%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재무·회계(13.1%→19.4%), 기술(17.3%→21.0%), 금융투자(16.1%→17.7%) 분야 전문가는 증가했다.
여성 사외이사 비중 역대 최고 21.9% 기록
여성 사외이사 비중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신규 152명 중 28명(18.4%)이 여성으로, 전체 사외이사 876명 중 192명(21.9%)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이는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 이후 3년 새 54.8% 증가한 것으로, 조사 이래 최고치다.
여성 사외이사 비율은 2022년 15.4%, 2023년 18.5%, 2024년 20.3%에 이어 올해 21.9%까지 상승했다. 다만 3월 주주총회 기준으로는 신규 추천된 여성 사외이사가 20명으로 전체의 16.0%를 차지해 지난해 17.3% 대비 소폭 감소했다. 자본시장법 개정 효과가 정점을 찍고 정체기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연령·국적 다양성은 여전히 미흡
theBoard가 국내 주요 기업 51명의 사외이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연령대는 60대가 45.1%로 가장 많고, 50대가 27.5%로 50~60대가 72.6%를 차지했다. 성별로는 남성이 76.5%로 압도적이며, 국적은 한국이 98%에 이른다.
이는 기업들이 여전히 중량감 있는 고위인사를 사외이사로 선호하는 경향과 글로벌 다양성 확보에는 아직 미흡함을 보여준다. 대만 TSMC의 경우 등기이사 10명 중 7명이 외국인인 것과 대조적이다.
위기 기업들의 전문가 영입 가속화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주요 기업들의 사외이사 영입 패턴도 변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전원이 해외파인 동시에 신사업 관련 전문가 3명을 영입했다. 벤자민 탄(싱가포르투자청 아시아 포트폴리오 매니저), 도진명(AI 및 그린수소 전문가), 김수이(외국계 회계사 출신 경영자) 등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기술 초격차 회복을 위해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시스템반도체 산업진흥센터장)을 사외이사로 내정했다.
전관예우에서 전문성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
이러한 변화는 한국 기업들이 전통적인 '전관예우' 관행에서 벗어나 실질적 전문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M&A, 기술혁신, 글로벌 경영 등 복잡해진 경영환경에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는 "검찰 출신 사외이사 급감과 재계 출신 급증은 기업들이 법적 리스크 관리보다는 사업 전문성과 경영 노하우를 더 중시하게 된 변화를 반영한다"며 "특히 금융투자 전문가 대거 영입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M&A와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의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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