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이같은 메시지를 발표하는 배경에는 이재용 회장이 신년 메시지에서 제시한 기조가 있다. "일하는 방식과 조직 DNA를 송두리째 바꿔야 한다"며 "R&D부터 생산·마케팅·지원까지 모든 업무 밸류체인에 AI를 접목해야 한다"는 주문이 삼성 전역에 전해진 지 몇 개월. 이번 포럼은 그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실행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가 되었다.
400명의 AI 전문가가 모인 이유
30일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AI 포럼 2026은 올해로 10회를 맞았다. 국내 AI 대학원 교수와 연구원 100명, 삼성전자 AI 분야 임직원 300명 등 총 400명이 참석했다.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공개되었다. 포럼의 주제는 "에이전틱 시프트: 지능에서 임팩트로"였다. 이는 거대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스스로 목표를 이해하고 판단해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틱 AI와, 현실 세계를 인식하고 행동하는 피지컬 AI를 실제 업무와 사업 성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글로벌 전문가들이 제시한 에이전틱 AI의 미래
리처드 호 OpenAI 하드웨어 담당 부사장은 LLM을 기반으로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에이전틱 AI가 기업과 산업에 가져올 변화를 소개했다. 이미 기술의 이론적 토대는 마련되었다는 취지의 발표였다. 데이비드 그린 AWS 아시아태평양·일본지역 AI 기술 리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업이 에이전틱 AI를 도입할 때 필요한 보안과 거버넌스 전략을 제시했다. 기술을 도입하되,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할 것인가를 강조한 것이다.
란제이 크리슈나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피지컬 AI 분야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소형 모델로도 고성능 로보틱스 AI를 구현할 수 있다는 주장은, 비용 효율성을 중시하는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희소식이 되었다. 김윤형 삼성리서치 상무는 AI 에이전트의 역량과 적용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차세대 '에이전틱 인텔리전스' 아키텍처를 소개했다. 국내 연구진도 선진 대열에 함께 섰음을 드러낸 발표였다.

완성품 사업의 AI 전략: 온디바이스와 피지컬 AI
오후 세션은 삼성전자의 두 축인 DX(디바이스경험) 부문과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DX 부문은 효율적인 AI와 피지컬 AI, 지속 학습을 중심으로 온디바이스 AI 최적화 기술과 월드 모델, 로봇 기반 모델 등의 연구 성과를 공개했다. 월드 모델은 현실 세계의 작동 원리를 학습하는 AI 모델로, 미래의 로봇 자동화 시대를 준비하는 기초 기술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자가 진화 AI(Self-Evolving AI)' 기술이다. 제품 출시 이후 실제 사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을 AI가 스스로 분석하고 성능을 개선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성능 업그레이드를 넘어, AI가 사용자 경험에 지속적으로 적응한다는 의미다. 한 번 출시된 제품이 사용될수록 더 똑똑해지는 제품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설계와 제조에 AI를 파고들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 부문은 AI를 실제 설계·제조 현장에 적용한 구체적인 사례를 공유했다. 반도체 업무 전반에 AI를 접목한 설계·제조 혁신 사례와, 현장의 다양한 과제를 AI로 해결하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델 테크놀로지스와 앤트로픽도 무대에 올랐다. AI 에이전트의 업무 적용과 기업용 AI 팩토리 구축 사례를 발표한 것이다. 이는 삼성이 단순한 반도체 제조업체가 아니라 AI 기반 지능형 제조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글로벌 파트너들과 함께 그 방향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다.
8대 업무 프로세스에 AI를 심다
삼성은 이미 그룹 차원에서 '인공지능 전환(AX)'을 속도 있게 추진하고 있다. 개발·구매·제조·물류·마케팅·판매·서비스·경영지원의 8대 업무 프로세스에 AI를 적용하고, 각 관계사에 AI 전담 조직을 두는 구조다. 포럼에서 논의되는 기술들이 실제 업무에 투입되는 과정이다.
리더십 차원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 사장단과 임원 대상 'AX 부트캠프'를 가동해 조직 최상단부터 AI 중심의 일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삼성전자 DX 부문은 이미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 등 외부 생성형 AI를 업무에 공식 도입했다. 더 이상 AI는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현재의 업무 도구가 된 것이다.
2030년 AI 자율공장으로의 대전환
삼성의 진정한 목표는 2030년까지 국내외 생산 거점을 'AI 자율공장(AI Driven Factory)'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재 입고부터 생산·출하까지 전 공정에 디지털 트윈과 AI 에이전트를 적용하는 구상이다. 생산·설비·수리·물류의 자율화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포럼에서 논의된 기술들이 실제로 삼성의 공장에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로드맵이다. 에이전틱 AI가 단순히 사무실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을 넘어, 제조 현장의 의사결정부터 실행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할 수 있다는 확신을 담고 있다.
피지컬 AI 기술과 온디바이스 AI 최적화 기술이 집약되는 지점이 바로 AI 자율공장이다. 이 공장에서는 로봇이 AI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고, 불량품은 자동으로 감지·제거되며, 설비 고장은 미리 예측되어 대응된다. 인간의 개입이 최소화되는 완전 자동화 생산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론에서 실전으로의 전환
삼성이 이번 포럼에서 강조한 것은 AI 기술 자체가 아니라 '임팩트'다. 얼마나 좋은 성과를 낼 것인가, 얼마나 빠르게 도입할 것인가, 어떻게 조직과 문화를 바꿀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 포럼의 주제인 "지능에서 임팩트로"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삼성이 실제로 따르고 있는 전략 방향이다.
전영현 부회장의 말처럼 "글로벌 AI 리더들과 함께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실질적인 AI 기술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 목표다. 유명한 연사들의 발표를 듣고 박수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삼성의 조직과 업무에 직접 녹여내는 실행력을 보여주겠다는 결의가 묻어났다.
조직 문화 혁명이라는 전영현의 표현은 앞으로 삼성이 겪을 변화의 규모를 암시한다. AI가 도입되면서 기존의 의사결정 구조가 재편되고, 많은 직급과 부서의 역할 정의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조직이 얼마나 빨리 진화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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