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이 지난 3월 18일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삼성그룹 영빈관 승지원에서 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음 달 8일, 정부와 첫 만남
30일 정부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수 회장은 다음 달 8일 서울에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만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과 간담회를 갖는 방안도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리벨리온과 딥엑스, 모빌린트 같은 국내 신경망처리장치(NPU)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AMD와 과기정통부는 이미 지난 7월 AI 반도체 생태계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다. AMD의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와 국산 NPU를 연계한 AI 컴퓨팅 인프라 구축과 실증, 국내 AI 연구 거점 설립, 인재 양성 등이 주요 협력 분야로 정해져 있다. 정부 차원의 협력 기반 위에서 민간 기업들과의 연결 고리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지난 3월, 이재용과의 첫 만남이 남긴 것
이튿날에는 노태문 완제품(DX)부문장 사장과도 회동했다. 반도체에서 모바일·AI PC까지 협력 범위를 넓힐 가능성을 함께 탐색했다는 의미였다. AMD의 입장에서는 설계(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의 파운드리와 메모리 역량까지 필요했던 것이다.
구체적 협력이 사업으로 변하다
양사의 협력은 이미 구체적인 사업 단계로 접어들었다. 삼성전자와 AMD는 지난 3월 차세대 AI 메모리·컴퓨팅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삼성전자는 AMD의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 MI455X'용 HBM4의 우선 공급업체로 선정됐다. 이는 단순한 명목상 협력이 아니라, AMD의 주력 제품에 삼성 메모리를 실제로 탑재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
또한 AMD의 차세대 EPYC 프로세서와 랙스케일 AI 플랫폼 '헬리오스'에 적용할 DDR5 솔루션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데이터센터용 고급 프로세서부터 메모리까지 완전한 시스템 설계를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다. 양사는 메모리를 넘어 파운드리와 첨단 패키징 분야로 협력을 확대할 가능성도 열어둔 상태다.
AI 에이전트 시대, 메모리 부족이 현실이 되다
이번 방한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AI 서비스 확산으로 심화되고 있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있다. 생성형 AI가 단순 질의응답을 넘어 스스로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트로 진화하면서 서버용 D램과 HBM 수요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AI 서버 투자 확대로 HBM과 일반 D램 간 생산능력 확보 경쟁이 이어지면서 메모리 공급 부족이 2027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부터 로봇과 자율주행 같은 피지컬 AI 시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경우,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를 결합한 AI 컴퓨팅 수요는 한층 커질 전망이다.
엔비디아 추격에 속도를 내는 AMD로서는 한국의 HBM·메모리·파운드리 공급망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진 셈이다. 단순한 칩 판매가 아니라, 전 세계 AI 인프라를 지탱하는 핵심 부품의 안정적 공급망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LG전자와의 만남도 변수
수 회장이 방한 기간 SK하이닉스나 LG전자 경영진과의 회동 여부도 업계의 관심사다. 두 회사 모두 최근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AI 협력을 확대해왔다. 수 회장의 이번 방한을 계기로 회동이 성사될 경우 한국 기업과 AMD 간 파트너십이 한층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메모리 제조사들이 엔비디아뿐 아니라 AMD와도 동시에 협력하는 구도가 만들어진다. 이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협력 선택지를 늘리는 것일 뿐 아니라, AI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의 영향력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다만 현재로서는 각 기업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일정은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총수급 경영진은 공개적인 자리 외에도 비공개로 사업 협의를 이어갈 수 있다"며 "공개 회동이 이뤄진다면 협력을 구체화할 정도로 논의가 진전됐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1월 'Advancing AI Korea', 이미 시작된 전략
수 회장의 이번 방한은 AMD가 한국에서 열기로 한 AI 행사 '어드밴싱 AI 코리아'를 앞두고 있다. AMD가 자신의 대표 AI 행사인 '어드밴싱 AI'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한국을 단순한 협력 대상이 아니라 글로벌 AI 생태계의 중심지로 보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수 회장의 이번 방문은 11월 행사를 앞두고 한국 AI 생태계와의 접점을 넓히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정부와의 만남, 국내 AI 칩 스타트업들과의 간담회,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형 기업들과의 협력 논의가 모두 같은 선에서 진행된다. AMD는 한국을 AI 반도체의 새로운 허브로 구축하려 한다.
변수: 이재용 회장의 일정
한 가지 변수가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현재 해외 출장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최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에 참석했고, 30일에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기증품 국외 순회전 갈라 디너에 참석할 예정이다. 다음 달 1일 영국박물관 특별전 개막을 앞두고 열리는 전야 행사다.
수 회장의 방한까지 일주일가량 남은 만큼 향후 이 회장의 귀국 일정과 국내 스케줄에 따라 2차 회동 성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서는 "이 정도 규모의 협력을 논의하는 경영진이라면, 일정을 조율해서라도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미 구체적인 사업이 진행 중인 만큼, 3월의 '1라운드'보다 더욱 깊이 있는 '2라운드' 회동의 필요성은 분명해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