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수는 단순한 생산 거점 확보를 넘어 글로벌 통상·안보 정책이 바이오 공급망을 재편하는 상황에서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분산하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 기조와 중국 견제 정책이 강화되는 가운데, '메이드 인 USA(Made in USA)' 생산 옵션을 확보하는 것이 글로벌 수주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6만L 규모, 기존 계약 물량까지 승계
락빌 생산시설은 메릴랜드 바이오 클러스터 중심지에 위치한 총 6만리터 규모의 원료의약품(DS) 생산공장이다. 2개 제조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임상 단계부터 상업 생산까지 다양한 규모의 항체의약품 생산을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이로써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총 생산능력은 송도 사업장(78만5,000리터)을 포함해 총 84만5,000리터로 확대되어 글로벌 위탁개발생산(CDMO) 업계 1위의 '초격차'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게 된다.
송도-락빌 이원화 생산체계의 완성
이번 인수를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송도-락빌'로 이어지는 이원화된 생산 체계를 구축한다. 송도의 '메가 플랜트'는 대량 생산을 전담하는 글로벌 허브 역할을 맡으며, 락빌 공장은 북미 고객사와 인접한 '현지 밀착형 전진 기지'로서 임상용 시료나 중소 규모 상업 생산을 담당한다. 한국 송도에서 대규모 생산 역량을 바탕으로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면서도, 북미 고객에게는 미국 내 생산이라는 선택지를 동시에 제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지역별 공급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북미 고객과의 협업 기반을 확대해 CDMO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검증된 설비와 숙련 인력, 기존 계약까지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락빌 거점이 인수 대상으로 최적의 선택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세 불확실성과 지정학적 리스크의 선제적 대응
미국 정부는 지난달 13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를 통해 한국 의약품에 최혜국 대우를 제공하겠다고 밝혔으나, 최대 15%의 관세 부과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당초 언급됐던 100% 관세에 비해서는 낮지만,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에는 장기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미국 생산 거점을 확보함으로써 이러한 관세 리스크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국 CDMO 배제에 따른 글로벌 수주 기회 확대
미국 의회는 최근 중국을 겨냥한 '생물보안법'을 통과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8일 국방수권법안에 최종 서명함으로써 법적 효력을 갖게 되었다. 생물보안법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우려 바이오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으로, 사실상 우시바이오로직스·우시앱텍 등 중국의 유명 CDMO·CRO(임상시험위탁) 기업들을 겨냥한 것이다.
바이오의약품을 CDMO 기업에 맡겨 생산하면 세포주, 유전자 서열, 공정 조건, 분석법 등 제품의 '레시피'에 해당하는 자료가 외부로 이동한다. 미국 의회·행정부는 바로 이 민감 데이터와 지적재산권(IP)의 대량 이전 가능성을 들어 중국 기업을 우려 대상으로 지목했다. 중국 CDMO 기업 배제에 따라 그들의 생산 물량을 차지하기 위해 한국, 인도, 일본 등 여러 나라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미국 내 생산 거점을 확보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
올해 역대 최대 수주 기록 달성
실적 측면에서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즉각적인 효과를 거두었다. 기존 계약 승계를 통해 대규모 물량을 확보하면서, 올해 누적 수주액은 6조8,19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5조4,035억 원을 훨씬 뛰어넘으며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또한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유럽 소재 제약사와 총 1조2,200억 원 규모의 위탁생산 계약 3건을 추가로 체결해 공시하면서, 글로벌 고객 기반 확대를 입증했다.
3대축 확장 전략의 본격화
미국 생산 거점 확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3대축 확장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다. 글로벌 거점 확대, 포트폴리오 확대, 생산능력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이 전략은 다층적인 성장 경로를 제시한다.
특히 지난달 28일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11공구 부지를 추가로 확보하며 제3바이오캠퍼스 조성에 본격 착수했다. 제3바이오캠퍼스는 기존 항체의약품 중심의 생산 구조를 넘어 세포·유전자치료제(CGT), 항체백신, 펩타이드 등 차세대 모달리티 전반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파이프라인 다변화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차세대 성장 동력을 단계적으로 확보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경쟁 구도 변화 속 한국 CDMO 업계의 도약
삼성바이오로직스보다 앞서 같은 이유로 미국 생산 시설을 확보한 기업도 있다. 셀트리온은 올해 9월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일라이릴리의 생산 공장을 약 460억 달러에 인수했으며, 생산 공장 확대 등에 700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미국 생산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바이오로직스와 함께 국내 CDMO 기업들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생물보안법은 해외 시장에서 신뢰성을 갖춘 국내 기업들에게 호재가 될 수 있다"며 "다만 최근 미국 정부가 의약품과 관련해 약가 인하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기 때문에 손익을 잘 계산해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최근 계속되는 환율 상승도 원료의약품 수출 비중이 높고 달러 기반 계약을 하는 CDMO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CEO의 약속과 글로벌 파트너의 신뢰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이번 인수는 글로벌 헬스케어 산업 발전과 미국 내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한 회사의 전략적 결정"이라며 "고객 지원과 바이오의약품 공급의 안정성을 강화하고, 풍부한 경험을 갖춘 현지 인력과의 협업을 통해 락빌 시설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레지스 시마르 GSK 글로벌 공급망 총괄 사장도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락빌 생산시설을 인수함으로써, 미국 환자들을 위한 주요 의약품의 미국 내 생산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됐다"며 "GSK 역시 글로벌 공급망 운영의 안정성과 대응 역량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제약사의 신뢰를 바탕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락빌 시설을 통해 북미 시장에서의 위상을 한층 높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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