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의 부실은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는다. 자본이 서서히 잠식되고, 손해율이 누적되며, 금리 환경이 바뀌는 과정 속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응은 늘 마지막 단계에서야 시작된다.
결국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매각이냐, 공적 개입이냐. 그리고 그 사이의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 전체가 부담한다.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되고 있고 부실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는 있는데,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이유는 명확하다. 제도가 시장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10% 반대’ 규정이다. 즉, 계약자의 10%가 반대하면 계약이전 자체가 불가능하다.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보험은 신뢰의 산업이고, 계약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취지는 인정되는 장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무손실 보호”의 역설
한국 보험제도에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사실상 보험계약자 ‘무손실 보호’ 구조다. 부실 보험사가 정리될 때도 계약조건은 그대로 유지되고, 손실은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겉으로 보면 매우 이상적인 구조다. 하지만 이 구조는 그 비용은 결국 누가 부담하는가라는 문제를 남긴다.
결국 그 부담은 건전한 보험사(또는 그 회사의 보험계약자), 그리고 필요할 경우 국민세금(공적자금)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해외는 다르다. 영국, 일본, 미국 모두 일정 수준의 손실분담을 인정한다. 완전한 보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보호를 선택한 것이다.
빠진 퍼즐: ‘중간 단계’
한국 보험산업에는 중요한 단계가 하나 빠져 있다. 정상과 부실 사이, 그 중간 단계다.
지금 구조는 단순하다. 정상이면 유지하고, 부실해지면 정리한다. 그러나 현실의 기업은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일부 보험 포트폴리오를 떼어내고, 위험을 분리하고, 자본을 재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런오프(run-off) 전문보험사다.
보험을 ‘정리’하는 산업
런오프 보험사는 우리에겐 낯선 개념이지만, 본질은 단순하다. 신규 영업을 하지 않고, 기존 계약만 관리하는 보험사다. 이들은 수익성이 떨어지거나 자본을 많이 잡아먹는 계약을 인수해 장기적으로 관리하고 정리한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문제가 되는 포트폴리오를 외부로 이전할 수 있고, 자본을 성장 사업에 다시 투입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거대한 시장이 형성돼 있다. 보험부채를 사고파는 시장이 존재하고, 전문 운용사들이 이를 관리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 시장 자체가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제도가 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방향은 어렵지 않다.
첫째, 계약자 반대 중심 구조를 바꿔야 한다. 계약자 10% 반대 요건을 유지할 이유는 없다. 대신 금융당국의 실질적 심사와 독립 전문가 검증을 강화하면 된다.
둘째, 계약 일부 이전을 허용해야 한다. 전체가 아니라 포트폴리오 단위로 나눌 수 있어야 시장이 작동한다.
셋째, 런오프 보험사라는 새로운 플레이어를 도입해야 한다. 신규 영업을 전제로 한 현재의 규제로는 이 산업이 생길 수 없다.
늦지 않으려면
예별손보 사태는 이미 지나간 사건이 아니다. 앞으로 반복될 수 있는 전형적인 사례다. 보험산업은 장기 산업이다. 문제도 장기적으로 쌓인다.
그렇다면 해법도 사전에 작동해야 한다. 지금처럼 문제가 터진 뒤에야 움직이는 구조로는 같은 비용을 계속 치를 수밖에 없다. 런오프 보험사와 계약이전제도 개편은 위기 대응 수단이 아니다. 보험산업을 ‘미리 고치는’ 도구다.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 보험회사를 “늦게” 고칠 것인가.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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