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의 목적지는 2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개최되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갈라쇼다. 저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기증품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북미 지역에서 40여 년 만에 최대 규모로 열리는 한국 고미술 전시회로, 한국 문화의 가치를 세계무대에 알리는 중요한 자리가 될 예정이다.
삼성 오너 일가, 글로벌 무대에 결집
주목할 점은 삼성 오너 일가가 함께 이 행사에 참석한다는 점이다. 이 회장뿐 아니라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명예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총수 일가가 나란히 워싱턴을 찾는다. 삼성전자와 계열사의 주요 경영진들도 함께 방미길에 올랐다.
러트닉 상무장관 초청, 외교 채널의 확대
이번 갈라쇼가 단순한 문화 행사를 넘어서는 이유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초청 명단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러트닉 장관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통상 실권자로 손꼽히는 인물로, 반도체 보조금 집행과 대중국 규제를 총괄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삼성전자의 미국 내 반도체 투자 및 공급망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핵심 인사라는 점이다.
공식 회담이 아닌 문화 행사에서의 비공식 접촉이라는 설정은 외교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와 보조금을 무기로 통상 압박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정면 대응 대신 우회적 소통 채널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 이슈를 문화·예술이라는 비정치적 공간으로 옮겨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명시적 압박 뒤의 전략적 만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과 러트닉 장관은 과거 수차례 공식 석상에서 만난 전력이 있다. 지난해 8월 한미 정상회담 비즈니스포럼에 이어 10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 투자와 공급망 협력을 주제로 논의한 바 있다. 이번 갈라쇼는 그러한 대화의 맥락을 이어가면서도, 더욱 유연한 채널을 열어두려는 의도로 읽힌다.
반도체 보조금과 미국 투자의 연장선
재계 내에서는 이번 방미가 텍사스 테일러 반도체 공장에 대한 보조금 확정 여부, 나아가 추가 인센티브 협상과도 직·간접적으로 맞물릴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공식 의제는 아니지만, 미 정부 핵심 인사들과의 접점 자체가 향후 협상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찰이다.
행사 전후로 이 회장과 러트닉 장관의 별도 면담 여부가 초점이다. 만찬이나 네트워킹 자리에서 반도체 관세, 미국 내 투자, 공급망 협력 등을 둘러싼 의견 교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회장이 그동안 글로벌 현안 국면에서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싣는다.
소프트파워 외교로서의 문화 자산 활용
'이건희 컬렉션'을 매개로 미 정·재계 핵심 인사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는 점에서 이번 행보는 일종의 소프트파워 외교의 성격을 띤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문화 자산을 활용하여 경제·통상 현안의 긴장을 완화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국 정부의 발표들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한국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가 전해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웃리치나 한국 친화적인 활동을 통해 양국 간 교류 활동이 이뤄진다면 미국 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바꾸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상 악화, 예정된 행사의 변수
다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했다. 미 동부 지역 폭설로 인한 기상 악화가 주요 인사들의 참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 측은 25, 26일 박물관 내 모든 시설을 일시 폐쇄했다. 행사 직전까지 일정 조율이 이어질 가능성이 남아있다.
북미의 역사적 전시, 글로벌 순회의 시작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이건희 컬렉션' 전시 '한국의 보물: 모으고, 아끼고, 나누다'는 지난해 12월 15일 워싱턴에서 개막했으며 다음 달 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이는 이 선대 회장의 기증품으로 이뤄진 첫 국외 순회전으로, 올해 3월 미국 시카고박물관, 9월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에서 계속 전시될 계획이다. 이 선대 회장의 문화보국 정신을 글로벌 무대에 알리는 동시에, 한국 문화의 위상을 높이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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