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일)

시인 백승진 '걸음거리' 출간 인터뷰, "정해진 구조에서 벗어나 나만의 걸음을 찾는 시간 갖길..."

승인 2022-08-19 09:25:00

'Walk Distance - 걸음거리' | 저자 백승진

[글로벌에픽 최민영 기자]
'걸음거리' 저자 시인 백승진 / 사진=Courtesy of poet
'걸음거리' 저자 시인 백승진 / 사진=Courtesy of poet


"포항의 북쪽, 월포해수욕장 근방의 작은 마을 월포리는 내 고향이었다..."


시인 백승진은 자신의 이야기을 에세이, 산문시, 드로잉 삽화 등으로 그가 지나쳐온 여러 걸음들을 돌아보는 자전적 에세이집 'Walk Distance - 걸음거리'를 출간했다.

백승진의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삶을 다시 돌아보고 아직 남아있는 인생의 길을 지혜롭게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책 '걸음거리'를 출간한 시인 백승진을 만나본다.

이번 책 '걸음거리(Walk Distance)' 책을 직접 기획하고 출간했다고 들었다. 계기가 있는가?

올해 봄. 친한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아주 오랜만에 서울로 상경했다.
긴 텀을 두고 다시 마주한 서울은 더욱 거대해진 것 같았다. 식장이 위치한 호텔 앞에 주르륵 늘어선 으리으리한 차들, 단정한 유니폼을 갖춰 입은 승무원과 기장들이 우르르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는 모습, 중후한 멋을 가진 호텔과 식장에 어울리기 위해 사람들이 걸치고 나온 명품 옷들. 그 외에도 장엄한 예식장을 나와 거리를 거닐다 본 다른 많은 것들이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생경함 속에는 낯익은 감정도 여럿 스며들어 있었다.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한 서울의 모습과 성대하고 고급스러운 건물 앞에서 나는 과거와는 다르게 공포를 느꼈다. 어쩌면 큰 도시라는 구조가 가진 굉음에 사로 잡힌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과거 유년기, 청소년기 때 구조의 굉음과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느꼈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일종의 계시와 영감의 순간들처럼 지친 몸으로 예식장을 나서던 길, 모든 것이 구조적 리듬의 소리이자 유혹적이고 매혹적인 소리로 들렸다. 강남에 잡아 둔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내 걸음이 꼭 리듬처럼 느껴졌다. 그것들을 에세이와 시로 풀어서 이야기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거리' 저자 시인 백승진 / 사진=Courtesy of poet
'걸음거리' 저자 시인 백승진 / 사진=Courtesy of poet


올해 2번째 만남이다. 활동이 많은 듯 보이는데 매일 시와 글을 쓰는가?

부족한 걸 알기에 매일 쓴다. 어쩔 때는 무슨 것을 쓰고 있는지 나도 모를 때가 있다. 더군다나 나는 내가 글과 시를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래파나 서정시 등의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다. 각기 다른 형식 속에서 무의 공간을 읽어 주시는 독자들과 활자로 표현한 나의 사유가 만날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퇴고를 열심히 해 완성도가 높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는 분들도 존경한다. 그런 분들에게는 아직 못 미칠뿐더러 내 시에 한해서 말하자면 활자로 홀로 있는 시는 미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사유가 누군가에게 읽혀 행과 행사이 혹은 무의 공간에서 하나 될 때 한 편의 시가 이야기가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직 부족한 실력이지만 책을 낼 결심을 했다.

책의 디자인과 일러스트의 배치 등 모든 것을 기획하고 참여했다 들었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보려고 했다. 걸음에서 시작한 에세이와 시로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했기에, 사회가 규정한 출판 방법이라는 구조와 발걸음을 맞추기보다 스스로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일러스트레이터 김현진 님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이석화 님께 도움을 받았고 협업도 진행했다. 이것을 계기로 미술과 회화의 미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작업 과정에서 지키고자 했던 것은 그림의 여백을 최대한 남겨두는 것이었다. 시의 행간처럼 보는 이들이 많은 의미를 창조할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과 텍스트의 예술인 글과 시, 공간의 예술인 미술을 함께 활용해 공간과 시간을 책 안에 모두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걸음거리' 표지, 저자 백승진 / 사진=한국문화예술
'걸음거리' 표지, 저자 백승진 / 사진=한국문화예술
'걸음거리' 목차 / 사진=한국문화예술
'걸음거리' 목차 / 사진=한국문화예술


책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걸음거리'인 이유는?

동물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걸어야 한다. 한편 인간은 양육자의 보호 아래 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때부터 걷는다.

하지만 양육자의 보호 아래 몸을 뉘인 아이도 무의식과 의식의 경계에서 사유의 걸음을 걷는다.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걷는다는 표현 속에서 나는 리듬을 보았다. 발걸음, 심장소리, 피의 순환, 호흡 등. 인간의 내면에는 리듬이 있다.

이는 외부도 똑같다. 자연의 시간, 사회와 문명, 음악 등 삶과 관련된 모든 것, 다시 말해 살아가려는 의지가 있는 삼라만상에는 리듬이 깃들어 있다. 이 리듬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우리는 내면으로 침잠하다가도 외부로 빠져들거나 외부에 빠져있다가도 내면으로 침잠할 때가 있다.

이것을 사회와 구조의 리듬으로 봤다. 따라서 무언가에 빠져있다는 자각은 그 자체로 현 상태에 대한 각성인 동시에 착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완전히 자신의 상태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그 답을 리듬을 듣고자 하는 연습에서 찾았다.

삼라만상의 리듬을 들으려는 연습을 한다면 적어도 어떤 소리가 나는 것인지는 구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협화음인지 혹은 아름다운 화음인지 말이다.

걸음은 필연적으로 거리로 나아가는 행동이며 거리는 사회다. 사회 속에는 인간 내면의 것보다 더 큰 리듬이 있다. 우린 그 리듬에 내던져진다. 이는 불가피하나 착각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저는 걸음을 걷기 시작하는 순간, 즉 사회와 개인이 서로 이어지는 순간부터 걸음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는 나름의 해결 방법을 고안했다. 그것을 '판단중지(判斷中止)'라 부르고 싶다.

걸음거리라는 제목에는 위에 설명한 삶과 내면에 대한 고찰, 그리고 판단 중지라는 개념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다.

어떤 것에 빠져있던 내가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감에 대항하고,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해 걸음에서부터 잠시 멈춰서 판단중지하며 쓴 이야기다.

책 속에서 걸음을 리듬이라고 말했는데 리듬을 중지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내가 말한 것이 아니라 철학자 후설의 '판단중지(判斷中止)'라는 사유를 차용했다.

나도 솔직히 그 대가들의 사유를 완벽히 이해 하진 못한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개념을 걸음(리듬)에서 보았다.

쉽게 말하면 걸음을 잠시 멈춘 곳에서의 자신의 사유, 더 나아가 종교의 예배, 의례를 하는 것은 자신과 사회의 리듬을 잠시 중단하는 것이다.

잠시 중단을 하여야 자신이 어디 있는지 혹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거리(큰 리듬)를, 휩쓸리지 않을 사유를 리듬을 최대한 중지한 채 쓰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일상에 찌든 삶 속에 지하철에서 읽는 시 한 편, 공연장에서 듣는 노래, 관람, 종교의례, 미술작품 감상 등이 일상의 리듬을 중지하고 내부와 외부의 리듬과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잠정적 중지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삼라만상에 모두 리듬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면 리듬과 외부 리듬의 매개체인 걸음을 판단중지하면 외부 세계(거리)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인가?

내면의 리듬이 큰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사회 발전과 그 발전으로부터 비롯된 여려 욕망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러한 욕망들이 과잉된 탓에 자신의 걸음과 리듬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나는 내면과 외부의 매개인 걸음과 거리에서 먼저 외부의 거대한 리듬을 소거하고 그다음으로 자신의 걸음과 리듬을 확인한다면, 다시 말해 사회가 제시하는 선입견과 관념을 뒤로하고 자신의 리듬까지 중지하도록 노력하면 자기의 실존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외부의 리듬에 휩쓸리지 않는 자신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맞다.

'걸음거리' 저자 시인 백승진 / 사진=Courtesy of poet
'걸음거리' 저자 시인 백승진 / 사진=Courtesy of poet


사회에 편승하지 않고 독자적인 노선을 가는 이유는?

그렇게 결심한 계기가 있다.

얼마 전 모 대학에 교수로 임용된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 함께 사고도 치며 동고동락한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친구와 교수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과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때 깨달았다 ‘친구’라는 단어 속에 내가 그 사람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언어는 사람을 규정한다. 우리는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서로를 다양한 언어로 규정짓는다.

그렇게 각자의 역할 속에 우리는 갇힌다. 주변인이 내게 작가, 시인이라고 말하면 나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그저 나이고 싶다고 말을 한다.

등단 관련하여서도 질문을 해오는 경우도 많다. 신춘문예 등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등단한 작가들이 인고의 기간을 견뎌낸 것을 당연히 존경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소규모 예술 단체 같은 곳에서도 활발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정리 정돈된 휘황찬란한 빌딩뿐 아니라 공원과 시장처럼 북적이고 질서 없어 보이는 곳에서도 우리는 살아간다. 따라서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들어주는, 응원하는 곳이면 어떤 곳이든 나서서 이야기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소년이 글과 시를 썼고 어디로 갈지 삶의 방향을 가늠하게 된 계기, 삶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는 바로 그것이었다.

문자가 양적으로 팽창하면 이야기가 되고 양적으로 축소되면 시가 된다고 생각한다. 문자를 펼칠 수 있는 공간 속에 사유를 집어넣고 저자와 독자의 사유가 그 안에서 합쳐지는 것이 문학이라 생각한다.

이때 개개인이 느끼는 감정에는 주관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 끌림은 선택으로, 선택은 취향으로, 인기와 대중성으로 넓어진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에게 끌림을 선사한 저자의 글은 무조건 좋은 글이고 선택받지 못한 저자의 글은 나쁜 글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위대한 예술가, 위대한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삶이 위대한 것이다. 개인의 삶과 글을 어느 누구도 해체하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유를 판단하는 각종 공모전과 신춘문예는 존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내고 읽고 향유하는 공간들 중 조금은 열악한 독자적 출판 공간을 개척해보고 싶었다.

유한한 삶을 붙잡으려는 시도이기에 예술이 위대하듯 우리의 직업은 원래 예술가다.

필연적 구조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이러한 것들을 깨닫는 시간을 가진다면 보다 아름다운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걸음거리' 저자 시인 백승진 / 사진=Courtesy of poet
'걸음거리' 저자 시인 백승진 / 사진=Courtesy of poet


■ 시인 백승진

동국대 행정학과 중퇴

수상

문학광장 신인문학상

지필문학 신인문학상

문학고을 신인문학상

시창작대회 동상 _ 작가협회

사회문화발전 공헌대상 _강건문화뉴스

활동

대전환선대위원회 _ 문화예술특보

대전환선대위원회 _ 문학특보

선대본 전략기획특위 _ 문화예술특보

시산맥문인협회 정회원

광장문인협회 정회원

황금찬시맥회 정회원

저서

《우리 안의 우리》

《오늘도 사랑해요》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생명들에게》

《돌 눈 그리고 시 》 종이책

《돌 눈 그리고 시 》 전자책

《걸음거리》 종이책

《Walk Distance - 걸음거리》 전자책

그외 월간지, 계간지 ,격월지 다수

시인 백승진은 예술인 기본소득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 예술창작 수당 지급에 관한 내용을 담은 ‘예술인의 기본소득법’과 예술인 사각지대에 대한 사회 안건 등을 정부와 여야에 제안하는 등 자신만의 예술관만을 내세우지 않고 지속적으로 예술인의 복지에 관심을 갖고 실제 변화를 만들기 위한 행동에도 나서는 주목받는 청년 시인이다.

최민영 글로벌에픽 기자 cmy@globaledu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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