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가 요구하는 것은 이렇다. 초과이익성과급(OPI) 발생 구간을 3년간 고정하고, OPI 50% 기준을 초과하는 성과 달성 시 경쟁사 수준 이상의 보상을 해주며, 초과 성과 비중을 부문 50%, 사업부 50%로 나누는 것이다. 핵심은 성과급 상한 폐지해달라는 것. 이는 단순한 임금 인상 요구를 넘어 회사 전체 영업이익 배분 구조를 노조 뜻대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선례와 삼성의 박탈감
노조의 요구가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성과급 상한선을 완전히 없애기로 합의했으며, 영업이익의 10% 전액을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실제로 SK하이닉스 노조의 요구에 따라 2025년 성과급 평균은 1억3000만원을 넘길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반도체 업계에서 한 회사가 해낸 일을 다른 회사가 못 한다는 것은 조직 내 박탈감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회사의 사업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삼성전자의 경우 성과급 상한이 사라지면 업황에 따라 실적이 좋은 사업부는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되지만 실적 달성이 어려운 사업부는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반도체 메모리가 모든 실적을 좌우하는 SK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TV, 가전 등 다양한 사업부를 운영한다. 2025년 DS(반도체) 부문이 역대급 실적을 올렸지만 가전 부문은 2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상한 폐지로 인해 야기될 조직 내 불화가 회사 전체의 경쟁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투자재원 축소는 미래경쟁력 저하로 직결
더 큰 문제는 투자 재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영업활동현금흐름(약 85조원)의 절반이 넘는 47조원을 시설에 투자했다. 반도체는 선제적 투자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산업이다. 2026년 AI 칩 매출 비중은 전체의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며, 하이퍼스케일러(빅테크) 기업들의 AI 데이터센터 설비투자가 2026년 5,2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집계된다. 성과급으로 유출되는 재원이 늘어날수록 미래 기술 개발과 생산 시설 확대에 쓸 돈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실제로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는 투자 경쟁이 치열하다. TSMC는 2026년 1분기에만 450억 달러 규모 자본 예산을 승인했으며, 이는 연간 예산 560억 달러 중 80%를 조기 집행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2025년 DS 부문 설비투자 40조9000억 원에서 2026년 메모리 투자를 상당 수준 증가시킬 방침이며, HBM 월 생산량을 현재 17만 장에서 25만 장으로 끌어올리고, 평택 P4-4 구역 준공 시점을 2027년에서 2026년 4분기로 앞당겼다. 이런 시기에 성과급 상한 폐지로 고정비가 급증한다면 투자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글로벌 사례가 말하는 것, 상한 폐지가 정답은 아니다
국내외 기업 사례가 노조의 주장을 전적으로 뒷받침하지도 않는다.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상한 폐지는 분명 파격이지만, 이것이 업계 표준이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영업이익률이 40%에 달하는 SK하이닉스와 10%에도 못 미치는 다른 제조업체들은 수익 구조 자체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고정적 현금 보상 확대보다는 장기 인센티브와 성과 연동 구조로 설계하는 추세다. 상한 폐지는 호황기에는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경기 둔화 시 기업의 발목을 잡는 고정비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갈등이 가지는 시기적 중요성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2000억 달러 매출을 달성하며 엔비디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지위를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역대급 실적이 가능한 시대에 주도권을 놓치는 것은 경쟁력에 직결된다. 장기 노사 충돌이 이어질수록 핵심 인재의 해외 이탈도 가속될 수 있다. 이것이 노조 요구의 진정한 대가다.
상한 폐지 아닌 규칙 재설계가 답이다
해결책은 상한 폐지가 아니라 '규칙의 재설계'에 있다. 성과급 산식을 단순화하고 투명화하되, 일정 수준 이상부터는 주식형 보상과 장기 인센티브로 전환하는 방식이 선례다. 또한 업황에 따라 자동 조정되는 '가변 배분율'을 도입해 호황기에는 과감하게, 침체기에는 부담을 줄이는 안전장치도 필요하다. 5년·10년 누적 보상 경쟁력이라는 중장기 관점에서 경쟁사와의 격차를 재설계하는 것도 방법이다.
성과급 상한 갈등은 당장의 보너스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다. 이것은 삼성전자가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글로벌 반도체 경쟁의 최전선에서 한국 대표 기업이 장기 노사 충돌 위험에 직면해 있다. 노조가 '투쟁'에 쓸 에너지를 '규칙을 설계하는 협력'으로 돌릴 때, 세계 시장은 다시 한국의 1등 기업을 신뢰할 것이다. 성과의 공정한 배분을 원하는 노조의 목소리는 정당하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산업 구조 변화를 외면한 채 상한 없는 배분을 고집한다면 명분도 현실성도 함께 잃을 수밖에 없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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