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정찰과 점검에만 머물다
현재 세계 시장의 사족보행 로봇들은 한결같은 임무에 특화돼 있다. 2020년 상용화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스팟'부터 중국 업체들의 신작까지, 모두 감시·정찰과 시설 점검, 데이터 수집 같은 가벼운 임무용이다.
따라서 이들 로봇의 보행 시 적재량은 통상 10~14kg이며, 최대 40kg에 불과하다. 정지 상태에서도 120kg을 넘지 못한다. 건설·중공업·군수 현장에서 실제로 요구되는 '중량물 이송'이라는 임무는 기술 지도에서 철저히 제외돼 있었던 셈이다.
국내 동향도 다르지 않다. 올해 하반기 육군 실전 배치를 앞두는 전투용 사족보행 로봇도 정보 수집에 중심을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참호 정찰과 폭발물 탐지에 로봇이 활용되는 것도 그 방증이다.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현장의 가장 기초적인 수요는 여전히 충족하지 못했다.
1톤급 하이브리드 액추에이터가 문을 열다
케이엔알시스템이 개발을 착수한 로봇은 이 공백을 정면으로 공략한다. 가반하중 1톤(1,000kg)이라는 압도적인 스펙이 그 증거다. 글로벌 현존 제품의 25배에 달하는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핵심은 2025년 세계 최초로 개발에 성공한 '로봇용 하이브리드 로터리 액추에이터'다. 전기모터와 유압액추에이터의 장점을 하나로 결합한 이 기술이 없었다면, 이 같은 중량 운반은 구상 단계에서 끝났을 것이다. 케이엔알시스템은 이 액추에이터에 2,000Nm(뉴턴미터)의 압도적 회전력을 담아냈다. 1미터 길이의 막대 끝에 200kg의 무게가 실리는 것과 같은 힘이다.
더욱이 회사는 기존 사족보행 로봇의 치명적 약점이었던 '짧은 운용시간'과 '낮은 적재량'을 동시에 극복하는 독자적 설계를 적용했다. 핵심 구동구조 설계에 대해서는 이미 특허 출원을 마쳤다.
험지 제압, 거리 확장, 그 모든 것을 담다
개발 중인 로봇의 성능 사양은 현장용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최대 1톤의 중량물을 싣고서도 평지 기준 시속 10km 이상의 속도로 90km 이상 주행할 수 있다. 비포장도로라는 악조건에서도 약 40km를 안정적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행거리의 획기적 확장이다. 휠(바퀴) 주행 시 다리 관절의 대기전력을 차단함으로써 기존 방식 대비 주행거리를 최대 62%까지 늘렸다. 회사가 휠과 워킹(보행) 방식을 병용할 계획인 이유다.
고출력 인휠모터를 각 휠에 장착한 것도 전략적이다. 1톤을 실은 상태에서도 경사진 지형을 등판할 수 있는 강력한 기동력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험한 환경 정복과 무거운 짐 운반이라는 두 가지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킨 설계다.
건설부터 원전 해체까지, 현장의 모든 곳으로
케이엔알시스템이 그리는 활용 영역은 광범위하다. 건설 현장의 자재 및 장비 운반에서 시작해 조선·플랜트 같은 중공업 현장의 특수 중량물 이송까지 직결된다. 군사 작전에서는 전술차량이 접근 불가능한 지형에서 탄약과 포탄 수송을 담당하게 된다.
재난과 소방 현장도 주요 무대가 될 것이다. 극단적 환경에서의 물자 수송이 필요한 장면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할 영역은 원전 해체다. 극한의 방사능 환경에서 인간이 하지 못하는 무거운 작업을 대신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의 가치는 헤아릴 수 없다. 실제로 케이엔알시스템은 올해 초 원전 '중수로 방사화 구조물 절단 플랫폼 제작' 관련 본계약을 체결하고 원전 해체 시장에 진출했다.
사람의 어깨를 가볍게 하는 로봇의 시대로
케이엔알시스템 김명한 대표는 회사의 지향점을 명확히 했다. "최근 10년간 사족보행 로봇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정작 현장이 필요로 하는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로봇'은 글로벌 어디에도 없다"며 "감시하고 점검하는 로봇의 시대를 넘어, 사람의 어깨를 실제로 가볍게 하는 로봇의 시대를 열어 나가겠다"고 했다.
이 선언은 빈 말이 아니다. 회사는 이미 깊은 바다에서 작업하는 로봇과 제철소 용광로를 관리하는 로봇 기술을 현장에서 실증했다. 기존 로봇팔보다 2배 업그레이드된 '다목적 유압 로봇팔'도 개발에 성공했으며, 소형 서보밸브 국산화도 이뤄냈다. 'K-휴머노이드연합' 공식 참여기업이자 'AI팩토리 전문기업'으로 선정된 것도 기술 실력을 입증하는 방증이다.
회사가 예정한 시간표는 인상적이다. 내년 초 고중량 사족보행 로봇의 실제 구동 모습 발표, 올해 말에는 최대 600kg의 가반하중을 자랑하는 고중량 슈퍼휴머노이드 선보임이다. 600kg급 이족보행 로봇이 개발되면 이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일하는' 로봇이 된다.
사족보행 로봇 기술이 감시와 정찰이라는 한 가지 임무만 반복하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현장이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을 때 기술의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케이엔알시스템이 보여주는 것은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함께 지는 시대의 시작이다.
[글로벌에픽 이성수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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