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10.06(화)

[CP’s View] 솔리다임 상장, '쪼개기' 아닌 'M&A 완성'

낙인보다 구체안 검증이 먼저 … 성급한 프레임 걷어내야

안재후 CP

2026-10-06 11:37:26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카운티 랜초코도바시에 위치한 솔리다임 글로벌 연구개발(R&D) 캠퍼스. 솔리다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카운티 랜초코도바시에 위치한 솔리다임 글로벌 연구개발(R&D) 캠퍼스. 솔리다임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SK하이닉스 주가는 지난 8월 6일 하루 만에 10.37% 급락했다. 솔리다임이 나스닥 상장을 전제로 프리IPO(상장 전 투자유치)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 날이다. 회사는 곧바로 "확정된 사항이 없다"고 공시했지만, 시장은 '쪼개기 상장'이라는 익숙한 이름표를 먼저 붙였다. 그러나 솔리다임은 국내 증시의 쪼개기 상장과 출발점이 다르다. 인텔의 낸드 사업을 인수해 만든 미국 법인이고, 상장 무대도 미국이다. 구체안이 나오기 전에 낙인부터 찍는 것은 성급하다.

확정된 것은 없는데, 결론은 먼저 나왔다
8월 5일 한 매체는 솔리다임이 모건스탠리·골드만삭스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5조~10조원 규모 프리IPO를 추진한다고 보도했다. 거론된 기업가치는 약 50조원이다. SK하이닉스는 같은 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나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9월 25일(현지시간)에는 로이터가 솔리다임이 이르면 2027년 상장을 목표로 투자은행을 상대로 주관사 선정 경쟁 프레젠테이션(베이크오프)을 열었다고 전했다. 기업가치는 최대 1500억 달러, 조달 규모는 150억 달러 안팎이 거론됐다. 다만 로이터는 규모와 시점이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SK하이닉스는 10월 1일에도 확정된 사항이 없다며, 외부 자본 유치를 포함한 방안을 검토할 수 있으나 판단 기준은 장기 주주가치라고 설명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이를 대기업의 자회사 중복상장, 물적분할 후 상장과 같은 문제로 본다. 현대차와 LG전자의 인도 법인 상장까지 같은 맥락에서 비판한다. 우려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지금 시장이 평가하는 대상은 계획이 아니라 보도다.

인수한 미국 기업을 미국에서 상장한다
쪼개기 상장 비판의 핵심은 모회사 주주가 보유한 사업의 가치를 분할해 국내 시장에 다시 나눠 판다는 데 있다. 솔리다임은 이 구조와 맞지 않는다. SK하이닉스는 2020년 10월 인텔과 낸드·SSD 사업 인수 계약(90억 달러)을 맺었고, 2021년 12월 1차 거래(70억 달러)를 마친 뒤 2025년 3월 2차 거래로 인수를 끝냈다. 솔리다임은 이 과정에서 미국에 설립된 독립 법인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1월 28일 솔리다임의 모회사인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즈에 최대 100억 달러를 출자하기로 약정했다. AI 데이터센터용 고용량 기업용 SSD(eSSD) 경쟁에서 생산과 기술 투자가 계속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국 사업에 쓸 자금을 미국 자본시장에서 조달하는 방안은 이 맥락에서 따져야 한다.


모빌아이, 상장하고도 지배력 유지
가장 가까운 선례는 인텔의 모빌아이다. 인텔은 2017년 이스라엘 자율주행 반도체 기업 모빌아이를 153억 달러에 인수했고, 2022년 10월 26일 나스닥에 상장했다. 공모가는 21달러, 기업가치는 약 170억 달러였다. 당초 기대한 500억 달러에는 크게 못 미쳤다. 인텔은 시장 상황을 감안해 눈높이를 낮추고 상장을 밀어붙였다.

핵심은 상장 이후다. 인텔은 모빌아이의 의결권 약 99.3%를 보유한 채 상장을 마쳤다. 상장이 곧 지배력 포기가 아니며, 모회사가 사업을 시장 가격으로 평가받으면서 통제권을 지키는 방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점 선택이 가치를 좌우한다는 교훈도 함께 남겼다.
퀄트릭스, 상장이 출구 선택지 넓혀
독일 SAP의 퀄트릭스 사례는 자회사 상장이 '한 번 올리고 끝나는' 결정이 아님을 보여준다. SAP는 2018년 11월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퀄트릭스를 80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고, 2021년 1월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상장 과정에서 약 15억 달러를 조달했다. 그리고 2023년 3월 사모펀드 실버레이크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 Investments)에 125억 달러 규모로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SAP가 보유한 지분의 가치는 77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상장 2년 만에 전략적 보유에서 재무적 매각으로 방향을 바꾼 셈이다. 시장 가격이 형성되자 인수 제안이 들어왔고, SAP는 선택지를 확보했다. 상장은 비상장 상태에서는 얻기 어려운 협상력을 모회사에 준다.

솔리다임이 상장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첫째는 투자 재원이다. SK하이닉스는 현재 재무 여력을 갖췄다고 밝혔지만, 자금이 있다고 모든 투자를 자체 자금으로 하는 것이 최선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미국 내 낸드 생산시설 건설도 검토하고 있고, 뉴욕주 북부가 후보지로 거론된다. 미국 법인이 미국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면 현지 투자 확대의 속도와 유연성이 달라진다.

둘째는 가치 평가다. 헤럴드경제가 SK하이닉스 반기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낸드 사업 부문인 솔리다임은 올해 상반기 매출 12조 2507억원, 순이익 5조 8396억원을 기록했다. 기업용 SSD는 장기 고객 기반의 사업이어서 나스닥에서 SK하이닉스 본체보다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인수가 90억 달러와 거론되는 기업가치 1500억 달러 사이의 간격은 시장이 메워야 할 숫자다. 다만 인수 투자의 성과를 시장 가격으로 확인하는 절차라는 점은 분명하다.

반대론에도 근거는 있다… 관건은 설계
반론은 가볍지 않다. 이영곤 토스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솔리다임이 별도 상장하면 SK하이닉스에 연결돼 있던 사업의 가치가 별도 기업에서 평가되므로 기존 주주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투자 재원 조달이 목적이라면 솔리다임 주식을 주주에게 현물배당하는 인적분할 방식도 가능하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증권가에서는 특별배당 같은 주주환원 방안이 관건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제도적 장치도 이미 마련됐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7월 중복상장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모회사 이사회가 지켜야 할 5대 의무를 정했고, 자회사를 해외 거래소에 상장하는 경우에도 같은 의무를 적용한다. 투자 회수만을 목적으로 한 중복상장은 주주 보호 필요성이 더 높다는 점도 심사 기준 예시에 담겼다. 솔리다임이 미국 법인이라고 해서 모회사 주주 보호 의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한국거래소에 적용 기준을 공식 질의할 계획이다.

그렇다면 따질 대상은 상장 자체가 아니다. 기존 주식을 파는 구주매출인지, 회사가 새 주식을 발행하는 신주발행인지, 어느 비율의 지분을 유동화하는지, 조달 자금을 어디에 쓰는지, 그리고 주주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려주는지가 쟁점이다. 구주매출 중심이면 모회사의 투자 회수 성격이 짙고, 신주발행 중심이면 솔리다임의 성장 자금 확보에 무게가 실린다. 같은 상장이라도 주주에게 돌아오는 몫이 달라진다.

상장은 수단이다
SK하이닉스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하게 되면 이사회 차원에서 재무·사업 영향을 살피고, 기존 주주에게 미칠 영향과 보호 방안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이 약속을 지키는지 감시하는 일이 투자자와 시장의 역할이다.

90억 달러를 들인 인수의 성과가 이제 반기 순이익 5조 원대로 나타나기까지 4년이 넘게 걸렸다. 당장은 주주의 손해처럼 느껴지는 전략적 결정이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키우는 사례를 SK하이닉스는 이미 경험했다. 솔리다임 상장은 아직 계획의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았다. 모빌아이와 퀄트릭스가 보여줬듯 자회사 상장은 가치 발견과 자본 조달, 출구 전략을 아우르는 도구다. 도구의 설계가 주주의 몫을 지키는지는 구체안이 나온 뒤에 엄격하게 따져도 늦지 않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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