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까지 영향 미치는 한 줄의 격차
조종사 서열은 입사 시점에 부여되는 순번이다. 언뜻 단순한 서열 번호처럼 보이지만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기장 승격의 대상 순서가 서열에 따라 결정되고, 기장으로 임명되는 날짜가 기본급 체계와 선임기장·수석기장 수당의 기산점이 되기 때문이다. 서열 차이는 승격 시기의 차이로 나타났다가, 정년까지 매달 누적되는 임금 격차로 전환된다. 대형기 조종사로의 전환 순서, 교관이나 검열 같은 주요 보직 배분도 모두 서열을 따라간다. 조종사들이 서열 문제를 단순한 처우 문제가 아닌 인권 문제로 받아들이는 이유다.
두 회사 통합 과정에서 이 서열 명단을 하나로 합쳐야 하는 순간이 왔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조종사들은 각각의 회사 내에서 구축된 서열 체계를 유지해왔다. 회사가 마련한 통합 서열안은 양사의 기존 격차를 그대로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대한항공에는 군 출신과 민간 출신 조종사 사이에 평균 9개월의 승격 서열 격차가 있었고, 아시아나항공은 평균 4년의 격차가 있었다. 회사는 각사의 이러한 내부 격차 구조를 통합 후에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회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한항공 소속 민간 경력 조종사는 아시아나항공 민간 경력 조종사보다 기장 승격에서 평균 3년3개월을 앞서게 된다고 했다.
문제는 기준일이었다. 회사가 서열 순서를 매길 때 조종사의 입사일이 아니라 정규 사번 부여일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비행시간 1000시간을 채우고 입사한 민간 경력 조종사들은 입사하자마자 정규 사번을 받지 못했다. 계약직 신분으로 회사의 양성 과정을 수개월간 거쳐야만 비로소 정규 사번을 부여받았다. 교육기간이 길수록 정규 사번 부여가 늦어지는 구조였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약 600명의 대한항공 조종사가 불리 해진다고 지적했다. 동일한 입사 조건의 조종사라도 양성 교육 기간의 차이에 따라 정년까지 수억 원의 임금 격차가 누적될 수 있다는 뜻이다. 노조는 이를 명백한 불공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인사권과 협의권 사이의 깊은 골
노사의 입장 차이는 확고하다. 대한항공은 조종사 서열 및 기장 승격은 사용자 고유 인사권이라는 입장이다. 외부 컨설팅을 거쳐 객관성과 타당성을 지닌 기준을 마련했다며, 통합 과정에서 대한항공 조종사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회사 측 자체 분석 결과 대한항공 조종사의 기존 기장 승격 요건과 내부 상대서열이 그대로 유지되고, 승격이 늦어지는 사례도 없다는 설명이다.
노조는 이에 다른 입장을 보인다. 노조는 단체협약 제24조를 근거로 통합 서열은 노사가 협의해서 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조항에는 "회사는 노사 합의로 정한 운항승무원 서열순위제도를 준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통합 이후 새로 짜게 될 조종사 서열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라는 논리다.
회사 측은 이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됐다고 반박했다. 단협 제24조는 2003년 군 경력 조종사와 제주비행훈련원 출신 조종사의 기장 승격 서열을 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었다. 당시 노사가 구체적인 서열안을 논의했지만 노조 총회에서 부결됐고, 이후 새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회사는 이후 자체 기준에 따라 서열을 운영해왔다. 2004년 노조가 단체협약 위반이라며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은 기장 승격 등에 대한 인사권이 사용자에게 있다고 판단해 이를 기각했다. 회사의 인사권 주장에 판례도 함께했던 것이다.
노란봉투법의 등장이 판을 바꿨다
법적 쟁점은 노란봉투법의 등장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올해 3월 시행된 개정 노동조합법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노조는 기장 승격 시기와 임금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통합 서열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새로운 법이 노사 간 해석의 폭을 크게 넓혀준 셈이다.
조정 신청에는 서열 문제 외에도 임금과 근무 조건 개선안이 함께 담겼다. 노조는 임금 3.3%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10시간 이상 장거리 비행 후 현지에서 30시간을 보장하는 휴식 기준을 모든 노선에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는 일부 노선에만 이 기준이 적용되어 있다. 비행수당 산정도 현안이다. 노조는 실제 항공기 운항 시점이 아니라 회사가 지정한 출두 시각부터 비행수당을 계산해달라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이들 요구사항 중 일부는 이미 잠정합의 수준까지 의견이 좁혀져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의 파업은 2016년 12월 7일간의 파업 이후 약 10년 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항공운수업은 필수 공익사업으로 분류되어 실제 쟁의행위가 벌어져도 노사가 정한 필수 유지 업무 수준의 운항은 유지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12월 17일 통합 출범을 앞두고, 조정의 성공 여부는 통합 항공사의 안정적 운영과 조종사들의 처우를 결정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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