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30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GPU) '지포스' 출시 25주년 행사에서 단상에 올라 인사를 하고 있다. 2025.10.30
이미지 확대보기그 순간, 현장은 숙연해졌다. 황 CEO는 29년 전 받은 그 편지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천천히 풀어 놓기 시작했다. 무명인으로부터 받은 그 편지는 다름 아닌 당시 삼성그룹을 이끌던 이건희 회장으로부터의 것이었다. 한국 기업가의 선견지명과 글로벌 기술 리더의 꿈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세 가지 비전이 담긴 편지
황 CEO가 공개한 이건희 회장의 편지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앞서 있었다. 1996년이라는 시대를 감안하면 거의 미래를 내다본 선견지명이었다. 편지에 담긴 내용은 세 가지 핵심 비전으로 요약된다.
둘째, 비디오게임이 한국의 기술 발전을 이끌 응용 분야라는 확신이었다. 편지에는 "한국에 도입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은 비디오 게임이며, 게임 산업이 한국의 기술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이는 단순한 여흥이 아닌 산업적 기회를 본 통찰이었다.
셋째, 세계 최초의 비디오게임 올림픽을 개최하고 싶다는 꿈이었다. 그리고 황 CEO에게 이를 함께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 이건희 회장은 글의 마무리에 "세계 최초로 비디오게임 올림픽을 열고 싶으니 지원해달라"고 명확하게 명시했다.
한 장 편지에 마음 사로잡힌 초보CEO
황 CEO는 무대에서 이 편지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 편지 때문에 제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그 편지에 담긴 비전은 모두 현실이 됐습니다."
당시 엔비디아는 GPU(그래픽 처리 장치) 분야에서 갓 첫발을 내딛던 작은 회사였다. 황 CEO는 낯선 사람으로부터 받은 한장의 편지에 마음을 사로잡혔고, 한국을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1996년의 황 CEO를 한국으로 이끈 '운명의 초대'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무대에 올라 이 역사를 증명했다. "25년 전 지포스가 첫 나왔을 때 삼성전자의 그래픽용 D램(GDDR)을 사용했고 그 순간부터 젠슨과 삼성의 협력이 시작됐습니다."
PC방과 e스포츠, 엔비디아를 살리다
이건희 회장이 예견한 한국의 게임 산업 발전은 정확하게 현실화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PC방 문화는 게이머들의 강력한 GPU 수요를 만들었다. 엔비디아의 지포스는 PC 게이밍의 표준이 되었다.
황 CEO는 이를 명확하게 인정했다. "지포스가 없었다면, PC 게임이 없었다면, PC방이 없었다면, e스포츠가 없었다면 지금의 엔비디아가 없었을 것입니다."
한국이 생산해낸 세계 최고 수준의 게이머들과 e스포츠 선수들은 엔비디아 그래픽카드의 성능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테스트 베드가 되었다. 이를 통해 엔비디아는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선하고 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다.
이건희의 비전, 현실이 되다
이건희 회장이 1996년에 담아 보낸 세 가지 비전은 어떻게 현실화되었을까?
첫째, 초고속 인터넷 구축은 한국을 초고속 인터넷 대국으로 만들었다. 한국은 오늘날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갖춘 국가가 되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PC방 문화도, 온라인 게임도, 이후 AI 시대의 데이터 센터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둘째, 비디오게임 산업은 한국의 문화와 경제를 대표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K-게임, e스포츠는 이제 한국의 국제적 경쟁력을 대표한다. 정의선 회장도 무대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언급하며 자신의 자녀도 즐길 정도로 게임이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었다.
셋째, 비디오게임 올림픽의 꿈은 국제 e스포츠 대회들로 현실화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Worlds),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등이 세계인이 주목하는 대회가 되었다.
AI 시대로의 확장
2024년 현재, 이건희 회장의 비전은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황 CEO는 당시 "이건희 회장의 편지에 담긴 비전이 엔비디아의 핵심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 처리 기술로 출발한 엔비디아의 GPU는 이제 AI 시대의 핵심 기술이 되었다. 황 CEO는 행사에서 "지포스 덕분에 AI 혁명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초고속 인터넷으로 연결된 한국의 인프라 위에서 게임으로 검증된 GPU 기술이 이제 AI, 자율주행,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의 기반이 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미래 협력을 언급하며 "앞으로 자동차에 로보틱스 기술을 더 깊이 결합해 더 많은 게임을 차 안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 통의 편지가 만든 30년 역사
이건희 회장이 1996년 보낸 한 통의 편지는 단순한 비즈니스 제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선견지명이자, 한국의 잠재력에 대한 확신이었고, 글로벌 리더와의 연결을 만드는 '초대장'이었다.
황 CEO는 이날 무대에서 여러 번 한국에 감사를 표현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놀라운 일을 할 것이며, 여러분이 엔비디아의 성공을 가능하게 해주셨습니다."
1996년의 한 통 편지로부터 시작된 한국과 엔비디아의 인연은, 단순한 기술과 자본의 결합이 아닌, 비전을 공유한 두 리더의 믿음이 만든 역사적 협력의 증거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그 인연은 계속되고 있으며, AI와 로보틱스의 시대에 새로운 장을 쓰고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