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그룹, 소프트웨어 전환 주역 배치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사에서 사장 4명, 부사장 14명, 전무 25명, 상무 176명 등 총 219명을 승진시켰다. 지난해 239명에 비해 승진 규모는 줄었지만, 미래 기술 조직을 중심으로 한 선별적인 인적 쇄신에 방점을 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사장 승진자 중 두 명을 소프트웨어중심차(SDV) 체계 전환의 핵심 포지션에 발탁했다는 것이다.
만프레드 하러 현대차그룹 연구개발(R&D) 본부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SDV 전환을 주도하게 된다. 독일 포르쉐 출신의 하러 사장은 포르쉐 전기차 타이칸 개발과 애플의 자율주행차 프로젝트를 총괄한 경험을 보유했다. 그는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모든 유관 부문과의 적극적인 협업을 통해 SDV 전환을 앞당기고 기술력을 제고하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동시에 현대차·기아 제조부문장 정준철 사장은 제조 혁신을 주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글로벌 불확실성의 위기를 체질 개선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인적 쇄신과 리더십 체질 변화를 과감하게 추진했다"며 "SDV 경쟁에서의 압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혁신적인 인사와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LG·SK, 기술통 최전방 배치 일관된 흐름
삼성전자는 AI와 반도제 분야의 미래 선행 기술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원장에 나노과학·분자전자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박홍근 하버드대 교수를 영입하며 '기술의 삼성'을 내세웠다. 또한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삼성리서치장에는 '기술통' 윤장현 사장을 발탁해 AI, 로봇, 반도체 기술 전략의 컨트롤타워를 강화했다.
LG그룹도 기술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LG전자를 이끌 류재철 신임 최고경영자(CEO)는 1989년 금성사 가전연구소로 입사해 재직 기간의 절반가량을 가전 연구개발에 종사한 '기술통'이다. LG화학의 수장에 오른 김동춘 사장은 반도체소재사업담당, 전자소재사업부장, 첨단소재사업본부장 등을 거친 소재 전문가로, 기업의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신사업 개발을 이끌어온 경험을 갖추고 있다.
SK하이닉스 역시 차선용 미래기술원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며 차세대 메모리 기술 경쟁에 힘을 실었다. 이러한 기술 인재의 전면 배치는 각 그룹이 AI, 소프트웨어, 로봇, 반도체 등 미래 먹거리와 직결된 분야에서의 경쟁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음을 의미한다.
40대 임원 대거 등용, 세대교체 본격화
4대 그룹 인사의 또 다른 공통 키워드는 '세대교체'다. 40대 차세대 리더를 대거 중용하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전략이 명확히 드러났다.
삼성전자는 40대 부사장 11명, 30대 상무 2명을 각각 배출했다. 이 중 권정현(45) 삼성 리서치 로봇 인텔리전스 팀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켰으며,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브랜드마케팅본부장 지성원 전무(47)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SK그룹은 신규 임원 85명 중 54명(64%)을 40대로 채웠으며, 1980년대생도 17명에 달했다. 신규 임원 평균 연령은 48.8세로, 전반적인 임원 연령대가 낮아지는 추세를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처음으로 상무 초임 평균 연령이 40대에 진입했고, 40대 비율도 2020년의 24%에서 올해 49%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는 지난 5년간 얼마나 빠르게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흥미롭게도 재계 오너 중에서도 1980년대생 경영진이 등장했다. 1982년생인 정기선 HD현대그룹 회장은 올해 인사에서 총수에 올랐으며, 10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한 1980년대생이다. 1983년생인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도 최근 보폭을 넓히고 있다.
AI 시대, 젊은 엔지니어가 기업 미래 결정
재계는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신기술 이해도가 높은 젊은 리더를 앞세우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1980년대생 임원 발탁이 눈에 띄게 증가하는데 AI 관련 분야 인재를 임원으로 전진 배치하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I 전환이 가속할수록 세대교체 흐름은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편 인사 규모는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관세 정책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을 고려한 '조직 슬림화' 전략의 일환이다. 현대차그룹은 승진자를 지난해보다 20명 줄였고, SK그룹은 계열사 임원을 약 10% 감축했다. LG그룹도 올해 임원 승진자를 역대 최소 수준인 98명으로 줄였다.
이는 단순히 인원 감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술과 실행력을 겸비한 핵심 인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임원 승진은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임원 승진을 최소화하면서도 미래 사업과 기술 혁신을 이끌 인재를 전면 배치해 중장기 성장 전략의 실행력을 제고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올해 4대 그룹의 임원 인사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 인재의 역할이 절대적이며, AI 시대에 걸맞은 젊은 리더십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엔지니어 출신과 연구개발 전문가들이 핵심 보직에 올랐고, 1980년대생 임원들이 대거 전진 배치되는 모습은 4대 그룹이 미래를 대비하는 방식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러한 인사의 변화는 단순히 조직 개편을 넘어 기업 문화와 의사결정 방식의 변화까지 예고하고 있다. 기술 중심의 조직 운영,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아래 4대 그룹이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인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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