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5.11.24(월)

[심층분석] 금호석유화학, 100분기 연속 흑자 비결은

동종업계 부진 불구 나홀로 ‘룰루랄라’ … 고부가가치 선택과 집중 먹혀

안재후 CP

2025-11-24 10:28:19

금호석유화학 여수 제2고무공장. 금호석유화학 제공

금호석유화학 여수 제2고무공장. 금호석유화학 제공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금호석유화학이 업계 최초로 100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2000년 4분기부터 분기별 실적을 공시한 이후 단 한 번의 결손도 없이 지켜낸 성과다. 지난 2024년 3분기 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 1조740억원, 영업이익 612억원을 기록한 금호석유화학은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수요 둔화로 동반 부진에 빠진 상황에서도 '나홀로 승승장구'를 이어가고 있다.

같은 시기 LG화학의 석유화학 부문은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롯데케미칼은 2400억원을 넘는 영업손실을 냈으며,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도 연속 적자를 겪고 있다. 수십 년간 국내 석유화학 업계를 주도해온 대형 기업들이 구조적 침체에 신음하는 와중에 금호석유화학만이 독자적인 성장 궤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비결이 궁금해진다.

나프타 분해설비 없음의 '역설적 강점'

금호석유화학의 100분기 연속 흑자 비결을 이해하려면 먼저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대형 석유화학 기업들의 핵심 수익 기반은 나프타분해설비(NCC)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얻은 나프타를 열분해하여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 석유화학 원료를 생산하는 핵심 설비다.
그런데 최근 중국과 중동 지역의 대규모 증설로 글로벌 시장에는 공급 과잉이 심화되었다. 기초 소재의 가격이 급락하면서 NCC 기반 사업 구조를 가진 국내 업체들은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금호석유화학은 애초부터 나프타 분해설비를 갖추지 않았다. 대신 외부에서 부타디엔(BD)과 스티렌 모노머(SM) 같은 기초 원료를 조달하여 고부가가치 특화 제품 생산에 집중했다.

이는 단순한 사업 선택이 아니라, 기초 화학의 공급 과잉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구조적 우위'가 되었다. 여천NCC에서 부타디엔을, 에스케이피아이씨 등에서 스티렌 모노머를 구매하는 금호석유화학의 사업 모델은 기초 원료의 가격 변동성에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으면서도, 이를 고급 제품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마진율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부가가치 제품 포트폴리오의 이중 축

금호석유화학의 100분기 흑자는 크게 두 가지 고부가가치 제품 사업으로 지탱되고 있다. 합성고무 부문에서의 NB라텍스와 SSBR이 그것이다.

NB라텍스: 의료 수요의 구조적 성장

NB라텍스(니트릴 부타디엔 라텍스)는 의료용 고무장갑의 핵심 원료다. 금호석유화학은 이 시장에서 전 세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NB라텍스 시장이 코로나19라는 일시적 현상을 넘어 구조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 의료용 장갑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금호석유화학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적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했다. 2016년 당시 NB라텍스 사업은 회사 영업이익의 20~30% 수준에 불과했지만, 코로나 시기에 40%를 넘어섰고, 현재도 회사의 핵심 수익 기반을 이루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에도 NB라텍스 수요는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이머징 국가의 위생 의식 고도화, 글로벌 장갑 제조업체들의 생산 기지 확충, 미국의 중국산 의료용 장갑에 대한 고관세 부과 등이 맞물리면서 금호석유화학이 안정된 공급처로 각광받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글로벌 NB라텍스 시장 점유율은 약 30~35%로 여전히 1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24년 상반기 NB라텍스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보였다.

SSBR: 전기차 타이어 시장의 성장 수혜

한편 금호석유화학의 또 다른 성장 축은 SSBR(솔루션스티렌부타디엔고무)이다. SSBR은 차체가 무겁고 토크가 높은 전기차에 최적화된 고부가가치 타이어 소재다. 일반적인 범용 합성고무인 SBR이나 유화중합방식의 ESBR과 달리, 용액중합 방식의 SSBR은 분자 구조를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어 저온에서의 접지력과 고온에서의 안정성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

전기차용 타이어 시장은 향후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글로벌 전기차용 타이어 시장은 2024년 현재 연평균 28% 성장률을 기록하며, 2030년에는 1280억달러(약 171조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타이어 수명이 15~25% 짧아서 교체용 타이어 시장이 이미 형성되고 있으며, 향후 이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호석유화학은 이러한 추세를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SSBR 생산능력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왔다. 기존 연산 12만3000톤 규모인 생산능력을 2024년 말까지 15만8000톤으로 늘렸으며, 향후 중기적으로는 30만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러한 공격적 투자는 전기차 시장 성장이 불가피하다는 경영진의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금호석유화학 직원들/사진=금호석화 제공

금호석유화학 직원들/사진=금호석화 제공



전략적 선택과 집중의 성과

금호석유화학의 100분기 흑자는 단순히 운이 좋았거나 일시적 호황의 결과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2010년대 중반부터 전략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제품 차별화와 기술력 축적

금호석유화학은 2018년 기존의 제품별 연구조직을 고무·수지·신사업 등 3개 영역의 프로젝트 중심 연구체제로 전면 개편했다. 이후 NB라텍스의 인장강도와 물성 안정성 향상, SSBR의 고기능화 연구에 집중해왔다. R&D 투자액도 2016년 369억원에서 2019년 478억원으로 늘어났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R&D 투자는 회사의 타이어 고객사들과의 신뢰 관계를 강화했다. 금호석유화학은 타이어 제조사가 요청하는 특정 물성에 맞춘 맞춤형 SSBR을 개발하여 공급하는 '캡티브 고객'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브리지스톤, 콘티넨탈, 미쉐린 등 글로벌 메이저 타이어 기업들과 한국타이어, 넥센타이어 등 국내 기업들은 모두 금호석유화학의 주요 고객사다.

금호석유화학의 SSBR은 2019년 한국의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었으며 현재도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 5% 이상이면서 동시에 상위 5위 이내의 제품만 받을 수 있는 이 인증은 금호석유화학의 기술력과 시장 지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산 효율화와 원가 경쟁력

금호석유화학은 제품 차별화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일찍부터 인식했다. 2024년 3분기 전체 매출이 감소했음에도 영업이익이 61.1%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재료 가격 하락과 생산 효율성 개선의 결과다. 부타디엔 등 원재료 가격이 떨어지는 와중에도 판매단가를 전략적으로 인상하여 가격 스프레드를 개선했고, 제조 과정의 효율화로 원가를 절감했다.

이는 회사가 단순히 시장 상황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쟁력을 구축해나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래를 대비한 선제적 투자

금호석유화학은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SSBR 증설 통한 전기차 시장 선점

여수 공장의 SSBR 증설 사업은 단순한 생산능력 확대를 넘어 미래 경쟁력 확보의 전략적 투자다. 2030년이 되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현재보다 훨씬 성숙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금호석유화학은 지금부터 이에 대비하고 있다. 전기차 타이어의 모든 특성을 최적화할 수 있는 SSBR 제품 라인업을 21개 등급으로 세분화하여 생산하고 있으며, 개별 고객사의 요구에 따른 맞춤형 개발도 진행 중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타이어 고객사들과의 공동 개발 체계다. 브리지스톤, 미쉐린 등 글로벌 메이저 타이어 업체들이 전기차용 고성능 타이어 개발을 위해 금호석유화학과 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협력은 금호석유화학의 제품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고 있다.

친환경 소재 개발과 케미컬 리사이클링

금호석유화학은 기존 사업의 고도화와 함께 친환경 신사업 개발도 추진 중이다. 롯데케미칼과 협력하여 폐PS(폐폴리스티렌) 열분해로 회수한 모노머를 SSBR 제조에 재활용하는 '케미컬 리사이클링' 기술을 도입할 계획이다. 유럽의 '유로 7' 등 강화된 환경 규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제적 기술 개발은 중장기 경쟁력 확보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활용 SSBR은 일반 제품 대비 1.5배 수준의 프리미엄 가격 책정이 가능하며, 향후 시장 규모는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CNT(탄소나노튜브) 사업 확대

금호석유화학은 배터리 소재 사업도 적극 개발 중이다. CNT(탄소나노튜브)는 철의 100배에 달하는 인장강도와 구리의 1000배 수준의 전기전도성을 가진 첨단 소재다. 기존에는 합성고무 첨가제로 주로 사용되었지만,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를 높이는 양극 도전재로의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새로운 수요처가 창출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CNT 생산능력을 기존 120톤에서 360톤으로 늘렸으며, 율촌과 아산에 분산되어 있던 생산 설비를 율촌으로 일원화하고 있다. 이차전지 시장의 성장과 함께 CNT 사업도 미래의 주요 수익 기반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호석유화학 본사 전경. (사진= 금호석유화학)

금호석유화학 본사 전경. (사진= 금호석유화학)



석유화학 불황을 넘어서는 전략

결론적으로 금호석유화학의 100분기 연속 흑자는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나프타 분해설비라는 '약점'을 거꾸로 '강점'으로 전환시킨 경영 전략,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선택과 집중, 기술 혁신과 R&D 투자의 지속, 글로벌 시장에서의 차별화된 포지셔닝,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선제적 투자 등. 이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작동했기에 가능했다.

특히 석유화학 업계 전반이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기초 소재의 가격 하락으로 고통받는 와중에도, 금호석유화학이 의료용 장갑 원료와 전기차 타이어 소재라는 두 개의 고부가 시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점은 경영 다각화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산업의 주기와 시장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본질적인 경쟁력 구축에 집중한 25년의 노력이, 불황의 시대에 더욱 빛나는 100분기 연속 흑자라는 성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앞으로 전기차 시장 성장과 친환경 소재에 대한 수요 증가가 본격화되면, 금호석유화학의 경영 성과는 더욱 돋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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