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위기, 한국 기업 직접 투자로 해결
세계 경제의 70%가 의존하는 해상 운송은 언제나 위험과 기회의 경계에 있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홍해 사태로 선박들이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해야 했고, 이는 왕복 시간을 2주 이상 증가시켜 운임을 수십 배로 올렸다. 동시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흑해를 봉쇄하고, 파나마 운하의 물 부족 사태가 통행 제한을 야기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항로의 불확실성을 더욱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공급망의 리스크를 줄이려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운임 변동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강력한 선대를 보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 주요 지역에 자신의 물류 거점을 직접 확보하는 것이다. K-물류 기업들은 둘 다 추진하고 있다. 더 이상 글로벌 공급망의 수동적 참여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공급망을 구성하고 통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국이 수출 국가인 만큼, 국내 기업들의 해외 공장과 글로벌 소비지를 직접 연결하는 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은 경제 안보 차원의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HMM이 운영 중인 벌크선. (사진=HMM)
HMM의 결정은 단호했다. 2022년 15조 원 투자 계획에서 2024년 23조 5000억 원으로 늘렸던 계획을 올해 다시 29조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투자 일정은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년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며, 현재까지 상당한 규모를 이미 집행한 상태다. 이는 국내 해운사 역사상 유례없는 공격적 투자다.
29조 원 투자의 핵심은 선대의 다각화다. 그동안 HMM은 초대형 컨테이너선 위주로 사업을 영위해왔다. 하지만 이번 투자 계획에서는 선대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컨테이너선은 2025년 말 99만 TEU(94척)에서 2030년 147만 TEU(166척)로 확대하면서도, 중·소형 피더선의 비중을 대폭 늘린다. 동시에 벌크선(일반화물·광석·곡물·가스 운송선)도 2025년 706만 DWT에서 2030년 1352만 DWT로, 5년간 약 92% 수준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벌크선 보유 척수도 51척에서 110척으로 거의 2배 이상 늘어난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시장 현실이 있다. 컨테이너 해운은 운임 변동성이 크다. 2020~2021년 팬데믹 이후 운임이 수십 배 급등했다가 최근 정상화하면서 실적이 크게 요동친다. HMM은 이제 이 변동성을 버텨내기 위해 벌크선과 가스선 등 장기 운송 계약 기반의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공개된 바에 따르면 HMM은 발레 및 국제 에너지 기업들과 25년 이상의 장기 전용선 계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벌크·가스 부문에서 수익 안정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컨테이너선 부문에서는 '허브앤스포크(Hub-and-Spoke)' 전략을 본격화한다. 대형 컨테이너선은 부산, 싱가포르, 로테르담 같은 글로벌 거점 항만을 중심으로 원양 노선을 운영하고, 중·소형 피더선이 이 거점들과 주변 항만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원양 노선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지역 항만의 물동량을 확보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성장 시장으로의 항로 확대도 이 전략의 일부다.
친환경 전환도 투자의 중요한 축이다. HMM은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2045 넷제로' 목표를 선언했다. 친환경 선박 도입, 해상 연료 전환, 항만 인프라의 저탄소화 등에 상당한 투자 규모를 할당했다. 글로벌 공급망의 리더가 되려면 이제 환경 기준도 충족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현대글로비스의 전략은 좀 더 다양하다. 자동차 운반선과 물류 센터 사업의 글로벌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9조 원을 투자해 연 매출을 2024년 약 26조 5000억 원 수준에서 40조 원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투자 규모의 36%는 물류 부문에, 30%는 해운 부문에, 11%는 유통 부문에 할당하고, 나머지 23%는 신사업 확대와 전략적 투자에 사용할 계획이다.
현대글로비스가 정의하는 미래의 역할은 '물류의 연결'에서 '물류의 완결'로의 전환이다. 기존에는 화물을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기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이제는 화물의 출발부터 최종 도착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엔드투엔드(E2E)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내 최대 규모의 물류 허브들을 적극 확보하고 있다.
첫 번째 거점은 인천국제공항이다. 현대글로비스는 인천공항 제2물류단지에 지상 5층, 총 면적 4만 4420㎡ 규모의 글로벌물류센터를 건설했고, 2025년 완공을 앞두고 있다. 이 센터는 자체 통관 시설과 분류 시스템을 갖춰 글로벌 이커머스 화물의 집결지로 기능할 예정이다. 인천공항의 공항형 자유무역지대 입지를 활용해 반도체, 의료기기 등 첨단산업 분야의 글로벌 공급망도 구축할 계획이다.
두 번째 거점은 부산신항이다. 현대글로비스는 부산신항에 약 9만 5000㎡(정확히는 94,938㎡) 규모의 복합물류시설을 짓고 있으며, 202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부산항은 국내 컨테이너 물동량의 76.6%를 처리하고, 세계 7위 규모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자랑한다. 이곳에 자신의 물류 거점을 확보하는 것은 한국의 수입·수출 화물을 대규모로 관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해운 부문에서는 자동차운반선 사업을 글로벌 1위로 끌어올린다는 야심찬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현대글로비스는 자동차운반선 사업에서 세계 3~4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글로벌 생산 확대에 힘입어 2030년까지 선대를 지속 확대할 예정이다. 동시에 현대자동차와 기아 외 외부 고객의 물동량도 적극 확보해 매출을 늘릴 계획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스마트 물류 솔루션 사업의 강화다. 글로벌 스마트 물류 시장이 현재 57조 원에서 2030년 132조 원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대글로비스는 자신이 직접 운영하는 물류센터에서 효율화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글로벌 고객에게 솔루션으로 판매하는 사업모델을 구축하고 있다. 국내에서 검증된 기술을 전 세계로 수출하는 전략이다.
![LX판토스 부산신항물류센터 [사진=LX판토스]](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60813122446062550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LX판토스 부산신항물류센터 [사진=LX판토스]
LX판토스: 전략적 거점 확보 한국 기업 글로벌 진출 뒷받침
LX판토스는 포트폴리오 확대와 전략적 거점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외 380여 개의 네트워크를 보유한 LX판토스는 해상운송에서 세계 6위, 항공운송에서 국내 1위 규모를 자랑하지만, 앞으로는 선박과 물류센터 확보를 통해 더 강력한 위치를 다지려 하고 있다.
부산신항이 첫 번째 전략이다. LX판토스는 약 1100억 원을 투자해 부산신항 배후단지에 국내 최대 규모의 물류센터를 건설 중이다. 신항에코물류센터로 명명된 이 시설은 부지면적 12만 5720㎡(축구장 약 18개 규모), 바닥면적 7만 6083㎡로 부산항 전체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물류시설이다. 2026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LX판토스와 LG전자가 각각 90%, 10%씩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
이 센터는 단순 보관 기능을 넘어 재고 관리, 수배송, 유통가공 등 고부가가치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점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특히 LG전자의 물동량을 통합 관리하면서, 동시에 산업군 전반의 비계열 고객도 확대할 계획이다. 부산항이 세계 2위 환적항이자 7위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는 글로벌 허브항인 만큼, 이곳의 거점 확보는 동북아 물류 허브로서의 위상 강화를 의미한다.
두 번째 전략은 유럽이다. LX판토스는 정부와 함께 폴란드 카토비체 물류센터를 인수하여 운영 준비 중이다. 총 인수금액은 약 2160억 원이며, 해양진흥공사 등으로부터 약 1500억 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받았다. 약 10만 9000㎡ 규모의 친환경 물류시설로, 폴란드 카토비체는 폴란드 최대 산업지대인 실레시아주의 중심지로 독일, 체코 등 주변국과의 연결성이 뛰어나다. 러-우 전쟁 종전 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도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거점이다.
이러한 투자들은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직접 뒷받침하는 것이 LX판토스의 역할임을 분명히 한다. 현지 통관, 재고 관리, 유통가공까지 아우르는 종합 물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한국의 전자, 자동차, 배터리 기업들이 현지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자산과 기술로 세계를 연결하는 새로운 K-물류 패러다임
HMM, 현대글로비스, LX판토스의 투자 전략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명확하다. 모두 국내에서 다져진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공급망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하려 한다는 것이다. HMM은 자신이 운영하는 선대와 항로를 통해 공급망의 물리적 기반을 장악하고, 현대글로비스와 LX판토스는 물류센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기업들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한다.
단순히 화물을 빨리 옮기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생산지와 소비지를 안정적으로 연결하는 인프라를 직접 구축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투자는 1편에서 보여준 쿠팡과 CJ대한통운의 '배송 속도' 경쟁과는 다른 차원의 도전이다. 배송 속도는 개별 기업의 역량이지만, 공급망 전체를 연결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는 방식이다. 과거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선사나 3PL 기업에 운송을 외주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주요 물류 기업들이 직접 선박을 사고 항만을 확보하고 거점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는 것은,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의 수동적 참여자에서 능동적 설계자로 변신했다는 의미다. 이는 국가 경제 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한 선택이다.
세계 공급망 주도권으로 향하는 K-물류의 여정
HMM의 29조 원 투자가 완료되면 276척의 선대 규모는 세계 주요 해운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 현대글로비스가 인천과 부산에 확보한 물류센터는 한국의 대표적인 수입·수출 거점이 될 것이다. LX판토스의 부산과 폴란드 투자는 동북아에서 유럽까지 한국 기업들의 공급망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준다.
2030년을 향해 진행 중인 이들의 투자는 단순한 기업 성장 전략을 넘어,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제 지위를 높이는 전국적 프로젝트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 다져진 효율성과 안정성을 무기로, 세계 공급망의 가장 중요한 노드가 되겠다는 K-물류의 야심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이제 K-물류의 경쟁력은 단순히 선박과 창고를 얼마나 많이 보유하느냐가 아니라, 세계 곳곳의 생산지와 소비지를 얼마나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연결하느냐로 결정된다. HMM의 276척 선대, 현대글로비스의 글로벌 허브, LX판토스의 전략적 거점들이 만드는 네트워크는 단순한 운송망을 넘어, 한국 경제 전체를 세계와 연결하는 강력한 기반이 될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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