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배경훈 LG AI연구원장과 이미 임명된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그리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인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는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사업 경험을 보유한 인물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이론가가 아닌 실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AI 서비스와 모델을 개발해 본 '실무형 리더'라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과거 정부가 이처럼 친기업적 성향을 가지고 장관급 인사를 단행한 적이 있나 싶다"며 "실무가 가능한 기업 출신을 중심으로 인사를 구성한 만큼 기업 입장에선 기대감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하정우 수석은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 학사·석사·박사를 마치고 네이버 AI 조직의 핵심 연구 리더로 9년간 활동해왔다. 1977년생인 그는 네이버의 거대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 개발을 총괄하며 한국 AI 기술의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한 인물이다.
현재 네이버 퓨처 AI센터 센터장과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는 하 수석은 2015년 박사학위 취득 후 네이버에서 AI 분야를 이끌어왔다. 특히 그가 개발을 주도한 하이퍼클로바X는 세계 3번째 초거대 언어 AI로 평가받으며 한국의 AI 주권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2년간 외부에서 한 AI 강연이 900회가 넘을 정도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쳐온 하 수석은 '소버린 AI(국가주권형 AI)'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대응해 AI 주권을 지키고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파트너 기업들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해왔다.

배경훈 LG AI연구원장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자: 엑사원 개발의 총괄 책임자
삼성탈레스와 SK텔레콤 미래기술원 등을 거쳐 2016년 LG그룹에 합류한 그는 LG경제연구원, LG유플러스, LG전자 LG사이언스파크 등에서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주도했다. 2020년 LG그룹이 AI 역량 강화를 위해 설립한 LG AI연구원의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AI 연구개발에 매진했다.
배 후보자의 가장 큰 성과는 한국형 거대언어모델 '엑사원(EXAONE)'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다. 2021년 12월 첫 엑사원 모델을 공개한 이후, 2022년 엑사원 3대 플랫폼을 연이어 선보이며 국내 AI 개발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특히 올해 초에는 중국의 '딥시크' 성능을 넘는 추론 AI 모델을 오픈소스로 자체 개발하여 국내 AI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 CEO 포럼에서 "AI가 실제 생산에 활용되는 비율은 11∼13%에 불과하다"며 "AI가 실제 산업현장에 사용되기까지는 데이터 신뢰성, 산업별 특화된 기능 구현, 성능과 경제성의 조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그가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실용적인 AI 상용화에 깊은 이해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성숙 네이버 고문. 네이버 제공
한성숙 중기부 장관 후보자: 1세대 IT 리더의 새로운 도전
1967년 6월 20일 경기도에서 태어난 한성숙 후보자는 의정부여고와 숙명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1세대 IT 전문가다. 그녀의 IT 업계 입문은 컴퓨터 전문지 '민컴' 기자로 시작됐으며, 이후 월간 'PC라인' 기자를 거쳐 본격적인 IT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1997년 엠파스 창립 멤버로 합류해 검색사업본부장을 맡은 한 후보자는 당시 다른 포털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검색결과까지 보여주는 '열린검색'을 선보이며 국내 검색 서비스의 혁신을 이끌었다. 이는 현재 통합검색 서비스의 원형이 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엠파스가 SK커뮤니케이션즈에 매각된 후 2007년 네이버의 전신인 NHN으로 합류한 한 후보자는 검색품질센터 이사, 서비스본부장 등을 거쳐 2017년 여성 최초로 네이버 최고경영자(CEO)에 취임했다. 2022년까지 5년간 네이버를 이끌며 검색뿐만 아니라 클라우드, 금융, 웹툰 등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성장을 견인했다.
특히 그녀가 추진한 쇼핑 서비스 '스마트스토어'와 중소기업·소상공인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꽃'은 상생 경영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소버린 AI 전략의 구체화와 산업용 AI 생태계 구축
하정우 수석과 배경훈 후보자는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 산하 초거대AI추진협의회에서 함께 활동하며 국내 AI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 노력해왔다. 이 협의회는 네이버클라우드와 LG AI연구원이 공동회장사를 맡고 있어, 두 사람의 협력 기반이 이미 구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일 울산에서 열린 'AI 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업계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소버린 AI 구현을 통한 AI 주권 확보 ▲공공데이터 등 충분한 학습용 데이터 확보 ▲글로벌 진출 지원 등을 요청했다. 배 후보자는 이 자리에서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중심 생태계 경쟁력 강화 정책의 필요성을 제언하기도 했다.
업계는 두 사람이 한국형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 개발에 적극 나서는 한편, 특히 산업용 AI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LG AI연구원의 '엑사원'이 산업용 AI에 특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조업 기반의 산업용 AI를 수출 산업으로 육성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실용주의 인사의 성과와 과제
이번 인사는 이재명 정부의 '일하는 정부' 기조를 명확히 보여주는 동시에 AI 산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중소벤처기업부에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를, 국무조정실장에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을 지명하는 등 대기업 출신 전문가들을 대거 발탁한 것은 민관 협력을 통한 경제 위기 극복 의지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특정 기업에서 장관급 후보자가 발탁됐다고 해서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며 "실용주의를 앞세운 이 대통령이 친기업적인 사고방식으로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를 이번 인사에서 보여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직접적인 공직 경험이 없는 민간 전문가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업 경영과 정부 부처 운영은 근본적으로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초기 적응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도 예상된다.
그럼에도 업계는 "실무형 인재를 전진 배치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실패를 한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얻어지는 교훈과 양성되는 전문 인재들이 있을 것"이라며 "이번 장관급 인사가 산업 전반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AI 3대 강국 진입이라는 야심찬 목표가 하정우-배경훈-한성숙으로 이어지는 테크 출신 전문가들을 통해 어떻게 구현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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