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일 이음연구소장, 경영학 박사.
430조 원을 넘어 약 10년 후는 국민연금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퇴직연금 제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모든 국민이 안정된 노후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보고된 개편안은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단기 근로자까지 끌어안으려는 노력과, 제도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제고하려는 고민의 흔적은 매우 인상적이다.
개편안의 핵심 변화는 다음과 같다.
먼저 퇴직금과 퇴직연금이 병행되던 현재 체계를 퇴직연금제로 완전히 일원화한다. 업무 수행을 위해서는 새로운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하여 전담 기관을 두기로 했다.
투자 방식도 크게 달라진다. 기존에는 국내 비상장주식 투자가 불가능했지만, 앞으로는 벤처기업 투자를 허용한다. 기금형 제도는 30인 이하 업체만 가입할 수 있었던 것을 100인 이하 업체로 확대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퇴직급여 지급 대상이다. 현재 1년 이상 근로자에게만 지급하던 것을 3개월 이상 근로자로 대폭 확대한다.
이번 개편안에서 가장 의미 있는 변화는 퇴직급여 지급 기준을 3개월로 단축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혜택 확대가 아니라, 퇴직급여의 본질을 바로 세우는 정의로운 조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퇴직급여를 '근로의 대가로 지급되는 후불임금'으로 규정해왔다. 즉, 퇴직급여는 회사의 시혜가 아닌 근로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임금이다. 그렇다면 11개월 일한 근로자가 퇴직급여를 받지 못하는 현재 상황은 명백한 모순이다. 하루만 일해도 그에 대한 임금이 발생하듯, 후불임금 성격의 퇴직급여도 근로 기간에 비례해 발생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영세·중소기업의 부담 가중 우려가 있다. 하지만 노동시장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려는 이번 결단은 충분히 지지받을 만하다. 다만 영세기업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퇴직연금 업무를 전담할 '퇴직연금공단' 신설도 주목할 만한 결정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던 '국민연금공단의 퇴직연금 운용 참여' 방안이 이번 개편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매우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으로 보인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이 사적연금인 퇴직연금 시장에 직접 뛰어드는 것은 다층노후보장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전 세계 연금 선진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역주행이며, 공적연금과 사적연금의 역할 혼동을 야기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기초 노후를 보장하는 사회보험이고, 퇴직연금은 근로자 개인의 사적 재산이다. 성격과 철학이 다른 두 제도를 한 기관이 운용하면 어느 쪽의 전문성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
따라서 퇴직연금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가입자 권익 보호에만 전념할 독립된 기관을 만드는 것은 공공성 강화와 시장원리 존중의 최적 균형점이라 할 수 있다.
새로 설립될 퇴직연금공단은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을 확대·개편하고 기금형 제도 도입의 핵심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기금형 제도는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중요한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도입 과정에서 신중함이 필요하다.
우선 확정급여형(DB)에 한정해 시범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금형 제도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할 경우 거버넌스 실패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특히 개인이 운용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까지 기금형을 강제하는 것은 개인의 재산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더 중요한 것은 공적 플레이어인 퇴직연금공단과 민간 사업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업자 투자일임형' 제도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
현재 퇴직연금의 낮은 수익률은 가입자가 직접 모든 투자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직된 운용 방식 때문이다. 가입자가 큰 틀의 방향만 정하고 세부적인 자산 배분은 전문가가 담당하는 투자일임형 제도는 이미 10년간 그 우수성이 입증된 방안이다.
퇴직연금공단은 기금형 운용의 안정성과 규모의 경제를, 민간 사업자들은 투자일임형의 전문성과 유연성을 무기로 선의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이런 건전한 경쟁 속에서 가입자는 더 높은 수익률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번 퇴직연금 개편안은 우리 모두의 안정된 노후를 향한 희망의 출발점이다. 노동시장의 취약계층을 끌어안고, 제도의 공공성을 바로 세우며, 효율성을 높이려는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이 소중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후불임금의 정의를 실현하는 3개월 지급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되 영세기업 지원책을 병행하고, 독립된 퇴직연금공단 설립이라는 현명한 선택을 지켜야 한다. 또한 DB형 중심의 점진적 기금형 도입과 민간 사업자의 투자일임형 전면 허용을 통해 공존과 경쟁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이는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라는 낡은 방식을 버리고, 가입자 개개인을 스스로의 노후를 책임질 수 있는 현명한 주권자로 믿고 자유로운 경쟁의 장을 열어주는 새로운 길이다.
고용노동부의 이번 개편안이 국민 모두의 신뢰와 지지 속에서 성공적으로 완성돼, 대한민국 모든 근로자가 행복한 노후를 꿈꿀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 되기를 기대한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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