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4천억원 증여로 경영권 승계 완료
30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1년간(2024년 7월~2025년 6월) 가장 큰 규모의 지분 증여는 한화그룹에서 이뤄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4월 ㈜한화 보통주 848만8천970주(4천87억원 규모)를 세 아들에게 증여했다.
이번 증여로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 등 3형제의 ㈜한화 지배력은 기존 18.8%에서 42.8%로 24.0%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한화에너지를 통해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3형제는 이번 증여로 사실상 한화그룹의 경영권을 완전히 승계받게 됐다.
신세계그룹, 남매 각자경영 체제로 전환
신세계그룹에서도 대규모 승계 작업이 마무리됐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총괄회장은 지난 5월 본인이 보유한 ㈜신세계 지분 전량 98만4천518주(1천751억원 규모)를 딸 정유경 신세계 회장에게 증여했다.
이로써 정유경 회장의 신세계 지분율은 18.95%에서 29.16%로 높아져 최대주주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됐다. 앞서 올해 2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어머니 이명희 총괄회장으로부터 이마트 지분 10%(2천251억원 규모)를 매입한 것과 함께, 신세계그룹의 '남매 각자경영 체제'가 완성됐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0월 백화점 부문과 이마트 부문 간 계열 분리를 공식화하며 정유경 총괄사장을 신세계 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이는 1997년 삼성그룹에서 독립한 이후 27년 만에 이뤄진 본격적인 계열 분리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효성그룹은 고(故) 조석래 명예회장의 잔여 재산 상속이 마무리되면서 가족 간 지분 정리가 이뤄졌다. 부인 송광자 여사는 공덕개발㈜ 주식 490억원어치를 상속받았으며,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도 계열사 주식을 다수 상속받았다.
형제간 교차 증여도 눈에 띈다. 정몽진 KCC 회장은 동생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의 가족에게 주식을 증여하고, 정몽익 회장은 정몽진 회장의 자녀에게 주식을 증여하며 지배구조를 재편했다.
자사주 직접 매수로 지분 확대 사례도
한편 일부 후계자들은 증여 대신 직접 매수를 통해 지분을 확대하기도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어머니 이명희 총괄회장이 보유하던 ㈜이마트 지분 전량(2천251억원 규모)을 사재를 투입해 매수했다. 이로써 정 회장의 ㈜이마트 지분율은 18.6%에서 28.8%로 10.2%포인트 상승했다.
넥슨 총수인 유정현 NXC 의장의 두 딸 김정민·김정윤 자매도 각각 1천650억원을 들여 유한책임회사 '와이즈키즈'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경영 참여 의지를 보였다.
전문가들 "稅 부담 완화와 투명성 제고 병행돼야"
이처럼 대규모 승계 작업이 몰리는 배경에는 높은 상속세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의 직계비속에 대한 기업승계 관련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 달한다. 실제로 한화그룹 3형제가 이번 증여로 납부해야 할 증여세는 2218억원에 이른다.
상속세 금액이 워낙 많다 보니 대기업 오너가가 주식을 담보로 대출받아 세금을 내는 일도 적지 않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총수가 있는 대기업 집단 72곳 중 상장 계열회사 주식을 보유한 57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월 말 기준 대출 등으로 담보로 제공된 주식은 28조9905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0~40대 벤처·스타트업 창업자 및 최고경영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높은 상속세가 기업가정신을 저해(93.6%)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96.4%)시킨다고 답했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한국의 상속 증여세는 징벌적"이라며 "세제 개편을 하되 경영진이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법 개정안 추진.. 승계 환경 변화 주목
올해 들어 가시화된 대규모 승계 작업은 한국 재벌사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1970년대생이 주축인 3세 경영진들이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면서, 향후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 방식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다만 높은 상속세 부담으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와 소액주주 권익 보호 등의 과제도 함께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인하하고 자녀공제를 5천만원에서 5억원으로 상향하는 세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승계 환경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