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영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중근 회장은 84세(41년 생)로 지금까지 후계구도를 공식화 하지 않고 있다. 2023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은 현재 29개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으로 직접 활동하며 그룹 전반을 독점 통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절대적 지배력이 오히려 세대교체의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영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는 단순한 기업의 내부 문제를 넘어선다. 자산 규모 20조 원을 초과하는 거대 기업집단의 미래가 불명확한 가운데, 충분한 경영 경험을 갖춘 후계자 없이 한 개인의 능력과 건강 상태에만 의존하는 '오너 리스크'는 한국 경제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회장이 보유한 막대한 지분을 물려주기 위해 감수해야 할 세금 부담이 경영권 승계 자체를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전 계열사가 비상장 … 회장 의사결정이 그룹의 갈 길
특히 주목할 점은 부영그룹이 상장사 없이 모든 계열사가 비상장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산 규모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 중 상장사가 단 한 곳도 없는 경우는 부영이 유일하다. 이는 외부 주주의 견제가 없다는 의미이며, 이 회장의 의사결정이 곧 그룹의 방향이 된다는 뜻이다. 공정거래위원회 데이터에 따르면 부영의 내부지분율은 99.1%로, 대기업집단 78곳 중 오케이금융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회장이 현재 29개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으로 직접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도한 겸직은 한 개인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며, 고령의 나이에서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
세대교체 첫 번째 장벽은 막대한 세금 부담
부영그룹의 경영권 승계가 막히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경제적 부담이다. 이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2세들에게 상속하거나 증여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이 회장이 보유한 지분의 가치는 약 2조 5천억 원으로 평가된다. 이는 재계 10위 수준의 개인 자산이다.
최근 이 회장이 2021년부터 3년간 부영으로부터 683억 원, 1,260억 원, 1,221억 원의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선제적 자금 확보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배당금만으로는 1조 원대 세금을 충당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에서, 어떻게 세금을 마련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남아있다.
2세 보유지분 거의 없어 승계작업 난항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현재 2세들이 부영그룹 내에서 보유한 지분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장남 이성훈 부영주택 부사장은 부영 지분 2.18%와 광영토건 지분 8.33%만을 보유하고 있다. 차남 이성욱 전무와 삼남 이성한 전 대표는 부영 내 의미 있는 지분을 보유하지 않고 있으며, 막내딸 이서정 전무도 동광주택산업 지분 0.87%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지분이 없다.
통상 경영승계 과정에서는 후계자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활용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합병을 통해 지분율을 높이는 방식이 사용된다. 하지만 부영그룹의 경우 이러한 수단을 활용할 여지가 극히 제한적이다. 부영과 부영주택이 사실상 모든 자산의 83.94%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두 회사의 지분은 이 회장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우려는 상속·증여 과정에서 현물납부가 불가피해질 경우, 외부 투자자나 경영진이 그룹 지분을 갖게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부영그룹의 '1인 지배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며, 심하면 경영권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재계에서는 이를 부영그룹의 가장 큰 리스크로 지목하고 있다.
후계 대상 3명 모두 경영 경험 부족
현재 이 회장의 네 자녀 중 누가 부영그룹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은가를 분석하면 각각의 장단점이 드러난다. 장남 이성훈 부사장은 형식상 가장 유력한 후계자로 지목되곤 한다. 부영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2002년부터 등기이사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2014년 부영주택 사내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광영토건도 자본잠식 상태에 있다.
차남 이성욱 전무와 삼남 이성한 전 대표는 부영 계열사 어느 곳의 이사회에도 포함되지 않아 경영 경험이 더욱 미흡하다. 차남은 천원종합개발 대표로서 일부 경영을 하고 있으나, 이는 모그룹 전체와 비교하면 제한적이다. 삼남은 현재 부영엔터테인먼트에서도 물러난 상태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주목받는 인물은 막내딸 이서정 전무다. 그는 13개 부영그룹 계열사에서 사내이사직을 맡고 있으며, 이중근 회장 다음으로 많은 사내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다. 2021년 부영 사내 이사진에 이름을 올린 이후, 부영, 동광주택산업, 동광주택, 광영토건, 남광건설산업, 남양개발, 대화도시가스, 부강주택관리, 부영유통, 비와이월드, 오투리조트, 더클래식씨씨 등의 회사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전무의 역할 확대에 주목하며, 그가 부친의 경영 일선에서 점진적으로 역할을 넓혀나가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차선책으로 동광주택산업 활용 방안 대두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한 가지 가능성으로 논의되는 것이 동광주택산업을 활용하는 방안이다. 동광주택산업은 자산총액 3,848억 원 규모이며, 자산총액 1조 8,798억 원인 동광주택 지분을 96.5% 보유하고 있다. 만약 동광주택산업이 동광주택을 흡수합병한 뒤 다시 부영과 합병된다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경영권 승계가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네 자녀 모두 동광주택산업 지분을 0.87%씩 균등하게 나눠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어떤 자녀가 주도적으로 승계할지가 불명확하다는 의미다. 다만 지배구조 개편의 '손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산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것이 향후 경영권 승계의 실마리가 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기업공개 통해 투병한 지배구조 확립해야”
부영그룹의 경영권 승계 문제는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절대적 지배력을 유지한 창업주는 개별 계열사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일관된 경영 철학 전달 등의 장점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체제는 본인이 부재할 때 조직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는 '오너 리스크'를 안고 있다.
현재 이중근 회장은 개인의 건강과 나이가 언제까지 경영 일선을 유지할 수 있을지 불명확한 상황이다. 충분한 경영 경험을 갖춘 2세 경영인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1조 원대에 달하는 상속·증여세 때문에 경영권 자체를 잃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부영그룹이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명한 지배구조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상장을 통해 주주 의결권을 분산시키고 외부 감시 체제를 강화하면, 단기적으로는 경영의 제약이 생기겠지만, 장기적으로 기업의 신뢰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더불어 세대 간 경영권 이양 과정에서의 세금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나, 순환적 지분 구조 개편을 통한 경영권 승계 방안도 검토되어야 한다.
부영그룹의 미래는 이중근 회장과 그의 자녀들뿐 아니라, 수만 명의 직원과 임차인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산 20조 원 규모의 거대 기업집단이 불명확한 승계 구도 속에서 표류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남아있는 지금이야말로 본격적인 세대교체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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