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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90% 소통이다] 국내 최초 삼각 주먹밥 시초 '카도', 단돈 77만원에서 강남 빌딩주 된 스토리

석현수 칼럼리스트

2026-06-01 14: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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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현수 칼럼리스트] 내 청춘의 중심, 일본의 길모퉁이 식당들

가장 힘든 시기, 내 청춘의 중심에는 일본이 머물고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화려한 연출력보다도, 마을 모퉁이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동네 작은 식당들이었다.

따뜻한 국물이 일품이던 가락우동집, 예상치 못한 조화로운 맛을 선물해 준 라면집, 바쁜 시간을 쪼개 배를 채우던 오니기리(삼각김밥)집, 그리고 든든한 한 끼를 책임지던 도시락 전문점까지. 가난한 유학생이자 직장인이었던 내게 그곳들은 언제나 따뜻하고 소중한 안식처였다.

이 작은 공간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잡다한 인테리어에 겨우 열 명이나 들어갈 법한 좁은 공간. 대단한 외관을 갖추진 않았지만, 그 집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시그니처 메뉴가 확실했다. 세련되지는 않았어도 맛에 대한 신뢰는 분명했고, 주인과의 소통(疏通)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그것만으로도 몇 십 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그 시절의 맛과 기억을 고스란히 연상할 수 있는 공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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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파네... 여기는 뭐가 맛있을까?“

4년간의 타향살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가 마주한 음식점들의 풍경은 조금 달랐다. 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두 번에 한 번꼴로 깊은 고민에 빠져야 했다.

"다 파네. 여기는 도대체 뭐가 맛있을까?"

대다수의 음식점은 메뉴의 다양성과 맛에 대해 모종의 압박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갇힌 느낌이랄까. 식욕이 돋지 않았던 건 음식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이 돈이면 차라리...' 하고 불쑥 고개를 드는 내 까다로운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4년간의 외식 생활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음식과 가게를 바라보는 나만의 날카로운 관점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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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비디오 공장'의 3D 직업, 그리고 시장기

PD가 된 후, 그 관점과 열망은 조금 다른 의미로 더욱 강해졌다.

당시 내가 다니던 방송국—사람들이 '여의도의 비디오 공장'이라 부르던 그곳은 한마디로 3D 업종의 최전선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방송 현장은 장기적인 계획보다는 즉흥적이고 단편적인 성격이 강했다. 시간은 늘 턱없이 부족했고 찍고, 편집하고, 마감에 맞춰 수정하는 지옥 같은 루틴이 반복됐다. 쌓여가는 편집본을 붙들고 밤을 하얗게 지새우기 일쑤였다. 일이 많은 만큼 돈은 벌었지만(돈을 쓸 시간조차 없었기에 박봉임에도 저축이 가능했다), 1년, 2년, 3년 시간이 흐를수록 회의감이 밀려왔다.

시간에 쫓기며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러고 사나' 싶었다.

일상에 여의가 없다 보니 먹는 것 또한 늘 어설펐다. 방송국 앞 포장마차의 떡볶이, 대충 때우는 김밥, 늘 배달되는 뻔한 음식들. 먹거리가 부실해지니 내가 만들어내는 결과물과 삶의 시간마저 무기력하게 퇴색되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조금 제대로 된 밥을 먹으려 하면 혼자 갈 만한 마땅한 곳이 없었다. 나는 그저 깔끔하게 배를 채우고 싶을 뿐인데, 대다수 음식점은 너무 거창했고, 길거리 음식은 늘 아는 맛, 뻔한 맛이었다. 참신함이 없었다.

콘텐츠를 한 알 한 알 골라내고 주무르고 뭉쳐서 브라운관에 탁탁 펼쳐내던 나의 본업은,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시장기를 더욱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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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찾아온 아이디어, "오빠, 직접 해보는 건 어때요?"

그 무렵, 아내의 친구인 은주 씨가 프랑스 최고의 요리 전문학교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거문고를 전공하던 그녀는 돌연 요리를 하겠다며 프랑스로 떠나 파티시에가 되어 귀국한 참이었다. 우리 집 집들이에 온 그녀와 자연스럽게 음식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나의 일본 유학 시절(주방 보조 아르바이트 짬밥) 이야기와 일본의 면 요리, 그리고 간편식 '오니기리'가 그날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녀는 작지만 든든한 일본의 오니기리에 큰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 유학 시절 보았던 일본 주먹밥 서적을 보여주며 이것저것 물어왔고, 대중음식점 바닥에서 구른 경험이 있던 나는 만드는 법부터 맛의 스펙트럼까지 신나게 설명해 주었다. 말이 나온 김에 옛 기억을 되살려 요리를 시작했다. 집에 있던 파스타 면으로 우동과 샐러드를 뚝딱 만들어내며, 평소 쌓아두었던 한국 음식점들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일본에서의 기억을 손끝으로 재회하는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시작되었다.

"오빠, 손재주 꽤 있네요? 진짜 괜찮은데? 아이디어가 이렇게 좋으면 직접 한번 해보지 왜 그러고 있어요?"

"잉? 그럼 PD는 어쩌고?" 속으로 외쳤지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가 처음 극찬한 건 주먹밥이 아니라 파스타 면으로 만든 우동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을 스친 건 오직 하나, '오니기리(주먹밥)'뿐이었다.

내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최초의 혼밥 식당', 부담 없으면서도 밥다운 밥이 있는 곳, 편안하게 참신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공간. 그 해답이 바로 삼각 주먹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시(1993년) 우리나라에는 집에서 김밥을 싸고 남은 재료로 대충 뭉쳐 먹던 둥근 주먹밥만 있을 뿐, 일본 오니기리 같은 전문적인 '삼각 주먹밥'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 경험 속에서 꺼내 올린 작은 영감이 내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찾는 자'에서 '만드는 자'로의 전환이었다.

화려할 '라(羅)'에 입 '구(口)', 나만의 화려한 소통(口羅)이 잠재된 기억 속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내 인생 전환점의 그 모퉁이, 바로 '카도(かど·모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리고 2년 뒤인 1995년 7월, 나는 지금의 양재동 말죽거리에 '2평의 기적'이라 불릴 공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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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77만 원의 자본금, 그리고 2평의 기적

사업을 확정한 뒤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간(인테리어)과 맛이었지만, 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핵심은 바로 '목(입지)'이었다. 부담 없이 들어와 빠르게 먹고 나가는 공간이기에 가게가 클 필요는 없었다. 대신 유동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야 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처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2평짜리 작은 상가였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이자 학교 부근인 최고의 터였다. 이미 정육점에 보증금 500만 원, 월세 60만 원으로 세를 놓은 상태였지만, 나는 이만한 명당이 없다고 확신했다. 곧장 장모님을 찾아가 당당하게 외쳤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120만 원을 드리겠습니다. 저를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주변 시세의 두 배를 부르자 장모님은 "에이, 무슨 120만 원이나 주냐"며 만류하셨지만, 내 눈엔 그곳이 가만히 있어도 하루 2~3만 명의 유동인구가 흐르는 황금 상권이었다. 모든 버스가 정차하는 정류장 앞이었기에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지성이면 감천이었을까, 결국 그 2평의 공간은 내 차지가 되었다.

"도대체 뭘 하려고 그러냐"는 장모님의 질문에 주먹밥집을 하겠다고 하니, 대번에 반대의 기류가 흐르기 않았다. 겨우 두 평짜리 가게에서 무슨 주먹밥이냐며, 의자 두 개 놓으면 끝날 공간에 주방은 어떻게 넣을 거냐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동안 누구도 2평짜리 공간에서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어쩌면 나를 제외한 세상 모든 이들에게 내가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맛에 대한 확신과 불안감, 완전히 새로운 관점, 그리고 단돈 77만 원이라는 턱없이 부족한 자본금.장모님을 비롯한 주변의 모두가 불안해했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창업 단 1년 만에 가맹점 30개를 돌파하고, 현재는 강남 매봉역 대로변에 위치한 시가 150억 상당의 꼬마빌딩 건물주가 되었으며, 이자카야 '내가사케'까지 성공적으로 론칭하게 될 줄을.

약 1년 7개월간 밤낮없이 음식점을 운영하며 이루어낸,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카도 신화'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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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막다른 모퉁이(かど)에서 기적을 기다리는 당신에게

단돈 77만 원,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이 "그 좁은 곳에서 장사가 되겠냐"며 만류했던 겨우 2평의 공간.

만약 제가 당시 안정적인 방송국 PD의 삶에 안주했거나, 혹은 남들과 똑같이 대중적인 식당만을 찾아다니는 '소비자'의 시선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막막한 순간이 있나요?

의자 두 개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고 척박한 나만의 환경에 좌절하고 계시나요?

어쩌면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위태로운 골목 끝이, 나만의 날카로운 '관점'을 채워 기적을 만들어낼 인생의 가장 찬란한 모퉁이, '카도(か도)'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인생 모퉁이에는 지금 어떤 위대한 시작이 기다리고 있나요?

다음 편에서는 의자 두 개 놓으면 꽉 차는 2평 공간에 어떻게 완벽한 동선의 주방을 설계했는지, 그리고 단돈 77만 원으로 버텨낸 눈물겨운 초기 생존 전략을 본격적으로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장사는 90% 소통이다] 국내 최초 삼각 주먹밥 시초 '카도', 단돈 77만원에서 강남 빌딩주 된 스토리

[석현수]

현)빅컬쳐엔터테인먼트회장
WB 글로벌 F&B 그룹회장
STN TV 예능부문 대표

전)중앙대학 아트센터 예술감독
동아일보 동아콩쿨 자문위원
다큐서울 프로듀서
국내최초 1995년 삼각주먹밥 카도 프랜차이즈 창시자

[석현수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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