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6.15(월)

기금형 퇴직연금의 성공 조건: DB형 도입과 ‘수익 공유(Surplus Sharing)’의 법제화

성기환 CP

2026-06-15 08:34:20

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 박사)

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 박사)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우리나라 퇴직연금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을 앞두고 노사정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원리금 보장 상품에 묶여 사실상 방치되어 온 기존 계약형 퇴직연금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탁법인이라는 전문적 지배구조를 통해 근로자의 노후 자산을 체계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의지는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기금형 제도는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바로 기금형 퇴직연금을 ‘DC형(확정기여형)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복수의 사용자가 참여하는 ‘연합형 기금’의 경우,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DB형(확정급여형)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계약형 DB 구조를 그대로 기금형에 이식할 수는 없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DB형의 자산운용 수익이 사실상 사용자(기업)에게만 귀속되기 때문이다.

즉, 기금이 아무리 높은 수익을 올려도 근로자가 받는 퇴직급여는 고정되어 있고, 사용자의 납입 부담(기여금)만 줄어드는 구조다. 이러한 ‘유인 불합치’를 해결하고 진정한 기금형 영토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근퇴법)의 과감한 개정과 해외 선진 사례의 벤치마킹이 필수적이다.
1.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 개정의 당위성과 핵심 조항

현행 근퇴법 제2조 제8호에 따르면 DB형은 “근로자가 받을 급여의 수준이 사전에 결정되어 있는 제도”로 정의된다. 이 고정된 정의가 기금형 DB 도입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운용 성과가 좋을 때 그 초과 수익(잉여금)을 근로자에게 환원하거나 노사가 합리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하려면 법적 빗장을 풀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 방향의 법 개정이 요구된다.

첫째, 제15조(급여수준) 개정: ‘실적 연동형 및 하이브리드형 급여’ 허용

현재 DB형의 급여수준은 퇴직 시점의 평균임금과 근속연수에 의해 완전히 고정되어 있다. 기금형 DB에 한해서는 기금의 운용 성과가 우수할 경우 이를 반영하여 근로자의 퇴직급여를 추가로 인상(물가연동 또는 실적 가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신설해야 한다.

즉, 고정된 DB의 틀을 깨고 운용 실적에 따라 급여가 가산되는 ‘수익 공유형 DB’ 급여 설계가 가능하도록 예외 조항을 두어야 한다.

둘째, 제16조(적립금의 적립 등) 개정: ‘초과 적립금(잉여금)의 처분 및 활용’ 규정 신설
현재 사용자는 매년 재정검증을 통해 최소적립금 비율을 맞춰야 하며, 초과 적립된 금액은 오직 향후 사용자의 납입금을 줄이는 데만 사용된다. 개정안에는 기금형 수탁법인이 적립비율을 초과하는 ‘잉여금(Surplus)’을 달성했을 때, 이를 근로자의 급여 개선 재원으로 직접 사용하거나 기금 내 공동 예비비로 유보할 수 있도록 처분 권한을 수탁법인 이사회에 부여하는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셋째,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관련 신설 조항 내 지배구조 권한 명시

향후 기금형 제도가 법제화될 때, “기금형 DB 수탁법인의 이사회(노사 동수)는 운용 수익의 일부를 근로자의 복지 향상 및 급여 증액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취지의 자산 처분 권한을 명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재무적 위험 분산과 효율적 운용이라는 인센티브를 얻고, 근로자는 추가 수익을 분배받는 ‘윈-윈(Win-Win)’ 구조의 지배구조를 확립할 수 있다.

2. 글로벌 표준에서 찾는 해법: 위험과 수익의 공유 모델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기금형 DB 또는 하이브리드 제도를 통해 운용 수익을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리적으로 공유하는 지배구조를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해외 주요국의 수익 공유 모델 비교]

국가주요 제도수익 귀속 및 공유 방식
네덜란드집합형 DC (CDC),

위험 공유형 DB
적립률 초과 시 은퇴자·가입자의 연금액을 물가상승률에 맞춰 인상
영국DB신탁제도

(Trust-based Scheme)
수탁자와 사용자의 합의를 통해 잉여금의 일부를 근로자 연금 혜택 향상에 사용
미국타프트-하틀리

(Taft-Hartley Plans)
기금 초과 수익을 기업이 환수하지 않고, 기금 내 유보하여 근로자 급여 안정에 사용


① 네덜란드: 집합형 DC(CDC) 및 위험 공유형 DB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퇴직연금 제도를 가진 네덜란드의 산업별 연합기금(ABP, PFZW 등)은 전통적 DB와 DC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모델을 운영한다. 이 모델의 핵심은 ‘적립률(Funding Ratio)’에 연동된 수익 공유다.

기금의 운용 성과가 좋아 적립률이 일정 기준을 초과하면, 노사 동수로 구성된 기금 이사회는 이 초과 수익을 활용하여 가입자 및 은퇴자의 연금 수령액을 물가상승률에 맞춰 인상(Indexation)해 준다. 반대로 적립률이 하락하면 기여금을 인상하거나 인상을 보류하는 방식으로 고통을 분담한다. 수익이 사용자에게만 귀속되지 않고 기금 전체의 건전성 확보와 근로자의 실질 소득 보장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네덜란드는 2023년 7월 '미래연금법(WTP)'을 통과시키고, 기존의 DB/CDC 중심 제도에서 '개인별 계좌 기반의 집합형 DC'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진행 중이다(2028년 완료 예정).

② 영국: DB 신탁제도(Trust-based Scheme)와 잉여금 공유(Surplus Sharing)

영국의 기금형 DB는 독립된 수탁법인(Trustee)이 자산을 관리하며, 기금에 ‘잉여금(Surplus)’이 발생할 경우, 이를 처리하는 엄격한 법적 기준을 두고 있다. 수탁법인은 잉여금을 단순히 사용자의 기여금 감면 재원으로만 쓰지 않는다. 수탁자와 사용자의 합의를 통해 잉여금의 일정 비율을 근로자의 연금 혜택을 향상(Benefit Improvement)시키는 데 사용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는 수탁법인이 가입자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신의성실 의무(Fiduciary Duty)’에 충실한 결과다. 최근 영국 정부는 기업들이 퇴직연금 잉여금을 생산적 자산(주식, 벤처 등)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잉여금을 고용주와 근로자가 더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Surplus Extraction Reform)을 적극 논의 중이다.

③ 미국: 타프트-하틀리 기금(Taft-Hartley Plans)

건설, 운송 등 이직이 잦은 업종의 복수 사용자들이 연합하여 운영하는 미국의 다수사용자 DB 기금 역시 좋은 선례다. 노사 동수 이사회가 운영하는 이 기금은 특정 기업의 재무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산업 전체의 적립금을 풀링(Pooling)하여 대규모로 운용한다.

여기서 발생한 초과 수익은 개별 기업의 이익으로 환수되지 않는다. 대신 기금 내에 유보되어 근로자가 직장을 옮기더라도 퇴직급여가 단절 없이 통산되고, 급여 수준이 안정적으로 유지·향상될 수 있도록 돕는 재원으로 사용된다.

이 기금은 노사 동수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며, 특정 기업의 자산이 아닌 독립된 신탁 자산으로 관리된다. 따라서 초과 수익이 발생하더라도 개별 기업이 이를 임의로 회수할 수 없으며, 전체 가입자의 혜택 안정화 및 통산(Portability)을 위해 사용된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일관된 진리는 하나다. 복수 사용자가 참여하는 연합형 기금이 성공하려면, 사용자가 기금운영 성과에 대해 명확한 재무적 이해관계를 가져야 하며, 동시에 근로자는 기금의 성공에 따른 과실을 나누어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퇴직급여법 제15조와 제16조를 개정하여 초과 운용 수익을 근로자와 공유하는 ‘수익 공유(Surplus Sharing) 제도’를 명문화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노사가 공동으로 지배구조에 참여하여 책임 경영을 실현하고, 근로자의 노후 소득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진정한 기금형 퇴직연금으로 가는 유일한 열쇠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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