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6.23(화)

[정보철의 한끗차이] 집으로 가는 다섯 개의 골목

정보철 칼럼리스트

2026-06-23 10:54:51

[정보철 칼럼리스트] 어젯밤, 나는 문득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우이동 골짜기에 이삿짐을 풀고 산 지 꽤 시간이 흘렀건만, 집으로 향하는 골목이 몇 개인지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나의 작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세어볼 것도 없다. 그저 그냥 알 수 있는 것인데, 일일이 세어보고 나서 다섯 개의 골목임을 알았다는 사실에 쓴 웃음이 나왔다.

한때 나는 지하철 2호선과 4호선 역 이름을 순서대로 줄줄 외웠다. 업무로 늘 다녔던 길이었기에, 노선도를 훑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 선명히 새겨졌다. 불암산에서부터 오이도까지 이어지는 4호선, 그리고 신촌에서 이화여대 입구까지의 2호선 순환선 역들. 그 역 하나하나가 생생히 떠오르는데, 정작 내 집으로 가는 골목 수는 기억하지 못한다니, 분명히 내 삶 속에 무언가가 꺾여버렸다는 신호임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정말 묻고 싶다.
“내가 사는 집은 과연 어디일까?”
골목 수를 따위를 두고 이렇게 스스로 비하하는 것이 논리 비약일지 몰라도, 솔직히 사는 것에 의욕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희미해지는 기억 사이에서 길을 잃고, 인적 없는 산속 깊은 곳으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마음이 어둠 속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부디,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나를 찾아올 사람 없는 그곳으로 스며들게 해달라’는 절박한 바람이 내 안에 숨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모기와의 사투는 그런 절망을 상징이었다. 달포 전, 구매한 스피드 모기장은 현관문 옆에 덩그러니 놓인 채 개봉조차 되지 않았다. 어느 날 새벽, 온몸이 모기에게 물리고도 며칠이나 지나서야 겨우 모기장 포장을 뜯었을 정도였다.

나는 알고 있다. 적어도 내가 사는 우이동에서만큼 나보다 게으르고 한심하고 무기력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내 마음속에는 삶에 대한 의욕이 단 한 톨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엉터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소에는 실패와 무기력은 깊숙이 마음 구석에 꽁꽁 숨겨두고 살았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무겁게 눌려있던 삶의 파편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이 말을 서너 번 반복했을 것이다. 정만례 누님은 깜짝 놀라 내 말을 막으려 애썼다. 둘레길에서 마주치면 늘 따뜻한 말을 건네던 그녀였다. 순간 ‘괜한 말을 해버렸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나와 전혀 달리, 누님은 매 순간 감사함으로 삶을 채우는 분이었다. 산길을 걸을 수 있음에 기뻐하고, 이른 봄 새싹이 돋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며,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는 작은 순간도 놓치지 않는 마음을 가졌다.
나이와 무관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그 빛나는 10대 소녀 같은 감성이 아직도 그녀에게 살아 숨 쉬는 듯했다. 그녀는 ‘뒹구는 낙엽만 봐도 까르르 웃는’ 그런 묘한 사람이었다.

묘(妙)란 글자는 ‘젊고 맑은 마음’을 뜻한다. 묘는 계집녀(女)와 적을 소(少)가 합쳐져 나이가 어린 여자를 의미한다.
‘묘’의 감성을 잃지 않은 여인은 삶의 환희를 잃지 않은 영원한 어린 소녀이다.
나는 알고 있다. 그 환희야말로 ‘삶의 의욕의 절정’이라는 것을.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런데 그 감성을 언제 잃어버렸을까?

언젠가부터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야기가 있다. 어렸을 적 들은 그리스신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야기다. 이발사가 왕의 비밀을 숨기지 못해 병이 들었고,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치자 병이 나았다는 전설. 그리고 그 후 대나무밭에 바람이 불 때마다, 이발사가 속삭이던 그 비밀이 온 나라에 퍼져나갔다는 이야기.

내 안에서 이 낡은 이야기가 다시 소환된 건 전적으로 장모 때문이었다. 우이동에 이사 온 나를 찾아오신 장모는 고단하고 외로운 내 모습이 안쓰러우셨을 것이다.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긴 대화 없이 큰길가 슈퍼 앞 모퉁이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에 처음 올라오셨을 때 장인어른이 저 자리에 이발소를 내셨었지.”

그 말 속엔, 지금도 변두리인 우이동 골짜기지만, 장인이 이곳에 터를 잡았을 당시 얼마나 척박하고 낙후된 곳이었을지에 대한 서러움과 고단함, 그리고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장모의 무거운 한숨에 마음이 짓눌렸다.

슈퍼 근처, 내가 가끔 가는 이발소가 있다. 장모가 다녀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발사에게 ‘슈퍼자리가 예전에 이발소 자리라고 들었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처음 듣는 얘기네요”라고 놀라워했다.

지난 한 달, 나는 자주 이발하는 꿈을 꿨다. 전에는 한 번도 꾼 적 없었기에 이상한 일이었다. 낡은 나무의자에 걸터앉으면, 정체 모를 이발사가 밤마다 바리깡으로 내 머리를 쑥 밀었다. 그러고 나서 귀에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지만, 그 말이 무엇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특히 피곤해서 일찍 잠든 날이면, 더욱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려 했고, 나는 그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한 달 넘게 꿈속에 나타났지만, 그는 언제나 어둠에 가려진 그림자일 뿐이었다.

과연 그가 속삭이려 했던 비밀은 무엇일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아무리 숨겨도 결국 드러나는 진실일까?’

어젯밤 늦게, 결국 나는 그 이발사의 비밀을 직접 찾아 나섰다. 어제라는 시간은 다섯 개의 골목길을 확인한 그날이었다. 마음속에 무언가 터질 것 같아 집에 머물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골목 끝,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잔잔히 번지고 있었다. 그 빛 아래로 두 인형(人形)이 조용히 걸어가고 있었다. 벙거지를 쓴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였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꽉 쥐고 절뚝거리며 걷고, 손자는 그런 할아버지를 묵묵히 따라 걸었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그들의 발걸음은 느리고 묵직했으며, 한 걸음 뗄 때마다 할아버지는 손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 걸음 걷고 손자의 얼굴을 바라보고, 지팡이를 고쳐잡고 두 걸음 걷고 다시 바라보고, 잠시 숨을 돌리고 세 걸음 걷고 또다시….
그들의 실루엣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두 번째 골목, 길게 늘어진 가로등 불빛 아래에는 젊은 엄마의 잔소리 섞인 목소리가 아이의 웃음소리에 묻히고 있었다. 아이는 나무 막대를 휘두르며 마치 세상을 모두 차지한 듯 뛰놀고 있었다.
진흙투성이 아이의 손을 잡고 집안으로 들여보내려는 엄마의 얼굴에는 지친 듯하면서도 따뜻한 기색이 어려있었다. 결국, 아이는 엄마 품에 이끌려 집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무심코 그 집 대문 앞에 멈춰 서서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었다. 이제는 내게서 이미 사라진, 엄마와 아이 사이의 가슴 저린 속삭임을 듣고픈 까닭이었다. 정말로, 그 속삭임은 욕지거리라도 정겨울 것만 같았다.
무슨 까닭일까? 애써 참으려 해도 흐르는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세 번째 골목, 낡은 대문 옆 가로등 밑에 한 소녀가 서 있었다. 어둠 속 정적 속에서 그녀는 간절한 눈빛으로 누군가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가도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계는 어느덧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대로 밤을 새워서라도 기다릴 태세인듯했다.
기다린다는 것은 이토록 처연한 것인가.
밤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릴 때마다 드러나는 불안과 외로움이 내 가슴까지 저리게 만들었다.
나는 아무 소리 없이 그녀의 옆을 지나쳤다. 내게도 한때 저렇게 밤을 꼬박 새우며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었으리라. 지금은 삶에 지친 내 영혼의 덫 때문에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네 번째 골목, 눈발이 조용히 내려앉은 언덕길에는 연탄재가 수줍게 타다 만 흔적을 희미하게 감추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어슴푸레 비친 그 길은 지나간 계절과 지난 시절의 추억을 머금고 있었다. 어릴 적, 눈 내리면 집집마다 연탄재를 뿌리고, 아이들은 연탄재를 발로 꾹꾹 누르던 것이 하나의 놀이였다. 추위에 부르튼 아이들의 입술은 말라서 말라비틀어진 늙은 오이 같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배시시 웃고 말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으니까. 타다 남은 연탄재처럼 붉은빛이 감돌고 있는 골목 끝의 가로등 밑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마지막 다섯 번째 골목. 가로등 불빛이 가장 어둡게 번지고 있었고, 바로 그곳이 나의 집 앞이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사랑을 고백했지만 돌아오는 건 싸늘한 거절뿐. 그 고백과 거절 사이로 청춘의 무게가 깊게 내려앉았다.
그 청년은 버스에서 그 여인을 처음 보고 자신도 모르게 따라 내렸다. 이미 내릴 정류장을 한참 지난 뒤였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 다섯 개의 골목을 꺾을 동안 그 여인에게 한마디 말도 붙이지 못했다. 다섯 번째 가로등 불빛 밑이, 그러니까 바로 나의 집 앞이 그가 처음으로 용기 내어 그녀에게 말을 건넨 곳이다. 그러나 바들바들 떨고 있는 청년을 뒤로하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골목 안으로 사라져갔다.

결국, 내뱉지 못한 말, 그러나 기어이 내뱉었어야 했던 말, 당연히 내뱉어야만 했던 말들이 내 가슴 속에서 요동쳤다.

“뭘 망설이는 거야. 쫓아가란 말이야.”

다섯 가로등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가로등 불빛 아래서 나는 내 삶의 파편을 온전히 마주했다. 그날 밤, 나는 압도적으로 피곤했지만, 그 피곤이 싫지 않았다.

삶은 결국 여행이다.
거친 길과 무거운 피로를 겪으며 걷는 그 자체가 소중한 동반자가 되는 여행이라면 그것이 행복한 삶일지도 모른다. 역으로 아무런 굴곡도 없는 평탄한 길이야말로 가장 외롭고 불행한 삶의 길일지 모르겠다.

삶에 대한 의욕이 꺾인 곳에는 언제부터인가 두꺼운 벽이 세워져 있었다. 견고한 벽,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아 스스로 포기했던 벽이다. 하지만 바람이 속삭여주었다. 저 벽 너머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다섯 골목과 가로등이 들려준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다시 벽 앞에 섰다. 그 벽 앞에 선 순간은 지난날 잃어버렸던 시간을 되찾은 순간이자. 또한 바로 이 순간이다. 저 벽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도 바로 이 순간일 수 있다는 예감이 조심스럽게 든다.

큰길가 슈퍼를 지나 다섯 골목을 돌면 내 집에 닿는다. 다섯 골목은 정말 먼 길이었다. 멀고 먼 길을 돌아 겨우 도착했다는 느낌이다. 얼마 만에 느끼는 안도감인가. 비록 작은 방 한 칸이지만, 내가 머무는 이 집이 소중하다.
나는 이제 나를 그동안 그토록 괴롭혔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침내 나는 집에 도착했다.”

[정보철 칼럼리스트]
<저작권자 ©GLOBALEPIC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주식시황

항목 현재가 전일대비
코스피 8,375.31 ▼739.24
코스닥 901.10 ▼67.30
코스피200 1,350.83 ▼126.39

가상화폐 시세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95,484,000 ▼654,000
비트코인캐시 292,900 ▼2,000
이더리움 2,579,000 ▼14,000
이더리움클래식 10,690 ▼50
리플 1,679 ▼13
퀀텀 1,065 ▼6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95,450,000 ▼552,000
이더리움 2,577,000 ▼15,000
이더리움클래식 10,650 ▼90
메탈 362 ▼3
리스크 130 ▼1
리플 1,676 ▼14
에이다 238 0
스팀 63 ▼1
암호화폐 현재가 기준대비
비트코인 95,530,000 ▼580,000
비트코인캐시 293,500 ▼900
이더리움 2,580,000 ▼14,000
이더리움클래식 10,720 ▼30
리플 1,680 ▼12
퀀텀 1,070 ▼10
이오타 6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