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6.24(수)

기금형제도 성공 핵심 필요 조건(5) : 성과평가 공시의 합리성

성기환 CP

2026-06-24 08:25:27

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박사)

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박사)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대한민국 퇴직연금 제도가 ‘기금형’이라는 새로운 시대로의 도약을 앞두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 변경이 아니라, 국민의 노후 자산을 운용하는 ‘철학’의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한다.

이 거대한 전환의 중심에는 ‘수탁법인’이 있다. 수탁법인은 가입자의 소중한 노후 자금을 위탁받아 수십 년간 운용하고 증식시켜야 하는, 말 그대로 ‘노후의 수호자’이자 막중한 책임을 지닌 청지기다.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탁법인이 과연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이를 이해 정부는 수탁법인의 성과를 정기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시정명령, 심지어 영업정지까지 내릴 수 있는 강력한 감독 체계를 가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성공은 법 조항의 유무가 아닌,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만약 평가가 단순히 과거 수익률이나 수수료 같은 정량적 지표에만 매몰된다면, 우리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에만 집착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기금형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왜 수치 너머의 ‘정성적 평가(Qualitative Assessment)’가 필수적인지를 해외 연금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역설하고자 한다.

1. ‘평가’는 단순한 성적표가 아닌, 시스템의 ‘나침반’이다

먼저 우리는 수탁법인에 대한 ‘평가’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 평가는 단순히 잘한 곳에 상을 주고, 못한 곳에 벌을 주는 사후적 절차가 아니다. 평가 기준 그 자체가 수탁법인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자, 시장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는 ‘게임의 규칙’이다.

만약 평가가 오직 ‘단기 수익률’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든 수탁법인은 장기적 안정성이나 철학보다는 당장의 수익률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고위험 단기 매매에 몰두할 것이다. 이는 퇴직연금의 본질을 훼손하고 시장 변동성에 국민의 노후를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최악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반대로, 평가에 인력의 전문성, 인사의 안정성, 경영의 안정성, 가입자 보호 체계 등 정성적인 항목이 포함된다면, 수탁법인들은 단기 실적 경쟁을 넘어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조직을 운영하며, 가입자 소통을 강화하는 데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즉, ‘올바른 평가’는 수탁법인들이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이다. 따라서 공정하고 정당한 평가 체계를 설계하는 것은 기금형 제도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라 할 수 있다.
2. 숫자의 함정: 왜 정량 평가는 불완전한가

물론 수익률, 운용보수, 비용 효율성 등 정량적 지표는 평가의 중요한 기초다. 이는 객관적이고 비교가 용이하다는 명백한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퇴직연금과 같이 초장기 투자를 다루는 영역에서 정량 지표에만 의존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심각한 맹점을 가진다.

첫째, 과거의 수익률이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특정 해에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이 운용 능력의 증거인지, 아니면 단순히 운 좋게 시장 트렌드에 편승한 결과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평균으로의 회귀’ 법칙에 따라, 올해의 1등이 내년의 꼴찌가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과거 수익률은 참고자료일 뿐, 미래를 예측하는 수정구슬이 될 수 없다.

둘째, ‘어떻게’ 벌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5%의 수익률이라도,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분산투자를 통해 안정적으로 달성한 것과, 소수의 위험 자산에 ‘몰빵’해 얻은 것은 그 질이 완전히 다르다. 정량 지표는 수익이라는 ‘결과’만 보여줄 뿐, 그 과정의 건전성과 지속가능성은 설명하지 못한다.

셋째, 조직의 보이지 않는 리스크를 측정하지 못한다: 잦은 운용인력 교체, 최고투자책임자(CIO)의 잦은 교체, 단기 실적 위주의 보상 체계, 부실한 내부 통제 시스템 등은 당장의 숫자에 드러나지 않지만 미래에 심각한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지뢰’다. 정량 평가는 이러한 조직 내부의 구조적 리스크를 간과하기 쉽다.

3. 연금 선진국의 지혜: ‘4P’와 ‘Due Diligence’에서 길을 찾다

이러한 정량 평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연금 선진국들은 일찍이 정성적 평가를 핵심적인 평가 기준으로 채택해 왔다. 그들의 방법론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사례 1: 모닝스타(Morningstar)의 ‘5 Pillars’ 평가

세계적인 펀드평가사인 모닝스타는 펀드를 평가할 때 단순히 과거 성과만 보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People), 프로세스(Process), 모회사(Parent), 가격(Price), 성과(Performance)라는 5가지 기둥(Pillar)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특히 운용팀의 경험과 안정성(People), 투자 철학의 일관성과 리스크 관리 체계(Process), 펀드 운용을 지원하는 모회사의 문화와 안정성(Parent)을 매우 중요한 질적 요소로 평가한다.

모닝스타의 '5 Pillars'는 현재 '3 Pillars(People, Process, Parent)'로 개편해 단순화됐다. 이는 ‘얼마를 벌었는가’를 넘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 운용하는가’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의미다.

사례 2: 기관 투자자의 실사(Due Diligence) 프로세스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이나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와 같은 세계적인 연기금들이 외부 운용사(GP)를 선정할 때 수행하는 실사(Due Diligence) 과정은 정성 평가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서류 심사를 넘어, 직접 운용사를 방문해 핵심 운용인력들을 심층 인터뷰하고, 투자 의사결정 회의를 참관하며, 내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샅샅이 확인한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CIO와 핵심 펀드매니저들은 이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 그들의 이탈률은 어떠한가?” (인사의 안정성)

“시장 급락 시 의사결정은 누가, 어떤 절차를 통해 내리는가? 위기 대응 매뉴얼이 있는가?” (프로세스의 견고함)

“운용팀의 보상 체계는 장기 성과와 연동되어 있는가, 아니면 단기 성과에 치중되어 있는가?” (이해관계의 일치)

“회사의 지배구조는 투명하며, 가입자(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는가?” (경영의 안전성 및 가입자 보호)

이 모든 질문은 숫자로 쉽게 계량화할 수 없지만, 해당 조직의 장기적인 성과를 예측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정성적 요소들이다.

위의 사례와 같이 우리는 연금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해 다음과 같은 ‘한국형 정성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첫째, 평가 항목의 구체화 및 가중치 부여로서 법안에 명시된 ‘인력 전문성, 인사 안정성, 경영 안전성, 가입자 보호’ 등의 항목을 구체적인 세부 지표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전문 평가기관의 실사(On-site Due Diligence) 의무화로서 평가를 위탁받은 전문 기관이 서류 심사에 그치지 않고, 정기적으로 수탁법인을 직접 방문하여 핵심 인력을 인터뷰하고 내부 시스템을 실사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서류 뒤에 숨겨진 조직의 진짜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셋째, 평가 결과의 투명한 공개로서 최종 평가 결과를 정량적 등급과 함께 상세한 정성 평가 내용을 담은 ‘서술형 보고서’ 형태로 가입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가입자들은 단순히 수익률 순위가 아닌, 각 수탁법인의 운용 철학과 장단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노후를 맡길 파트너를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단기 실적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가입자의 노후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굳건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숫자를 넘어 조직의 철학과 시스템, 사람을 꿰뚫어 보는 깊이 있는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정성 평가라는 굳건한 닻을 내릴 때, 비로소 우리의 기금형 연금은 긴 시간의 풍파를 견디고 순항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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