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센터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주문·재고·배송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물류 흐름을 최적화하는 기업이 시장을 주도하는 시대다.

쿠팡의 무인지게차, 출처=쿠팡
쿠팡: 데이터가 로봇을 조종하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는 물류를 단순히 보관과 배송을 담당하는 시설에서 AI와 로봇이 지배하는 자동화 공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핵심은 인공지능이다.
쿠팡은 2024년 4월 미국 텍사스 소재의 로봇 스타트업 콘토로에 8400만 달러(약 1200억 원)를 투자했다. 콘토로가 개발한 로봇팔은 흡착판 기술로 손상된 소포도 안정적으로 옮기며, 다양한 크기와 무게의 박스를 처리할 수 있다. 하역 작업 성공률이 99%에 달한다. 쿠팡은 이 기술을 국내 물류센터에 시범 도입할 계획이다.
인력 구조도 바뀌고 있다. CFS의 오토메이션 직군은 AI 기반 설비와 로봇을 운영하고 유지보수하는 엔지니어들이 중심이다. 2025년 1월 330명이던 자동화 관련 기술 인력은 2025년 9월 750여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연말까지 180여 명의 신규 채용이 추가될 예정이다. 단순 반복 노동이 사라지는 자리에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러한 투자는 2026년까지 제천, 부산, 김천 등 전국 곳곳에 신규 풀필먼트센터를 구축하는 쿠팡의 확장 계획과 맞닿아 있다. 광주최첨단물류센터는 지난해 호남권 최대 규모로 준공됐으며, AGV·소팅봇·자동 포장 로봇(로보틱 배거) 등 최첨단 자동화 설비가 가동 중이다. 쿠팡의 현지 임시대표 해롤드 로저스는 지난 4월 미국 워싱턴DC에서 "AI를 활용해 경제 성장과 글로벌 무역을 재정의하는 혁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과 리플렉션AI의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MOU’ 행사 협약식. (신세계 제공)
신세계: 상품 기획부터 배송까지, 리플렉션 AI와 손잡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3월 미국 AI 기업 리플렉션 AI와 유통 전 과정 혁신 협약을 체결했다.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다. 상품 소싱·발주·가격 책정·물류·재고관리·고객관리 등 유통사업의 6개 핵심 영역 전체에 AI를 접목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미 진행 중인 AI 활용 사례도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5월부터 생성형 AI 기반 보이스 POP(점포 음성 안내)를 전점에 도입했다. 과거에는 성우가 직접 녹음한 내용을 각 점포로 보냈지만, 이제는 400여 가지 목소리로 즉시 생성하고 송출한다. 농산·축산·수산·즉석조리 등 다양한 상품 카테고리와 시시각각 변하는 행사 가격까지 반영할 수 있다.
상품 개발 단계에서도 AI가 개입한다. 상품 기획자(MD)들이 해외 산지와 제조사를 발로 뛰며 최적의 상품을 찾는 과정에서 AI가 상품정보 처리와 ERP 연계 작업을 담당한다. 가격 책정도 AI의 영역이다. 'AI 신선 마크다운' 시스템은 전국 매장의 판매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하며 현재 재고를 고려해 최적의 할인율을 자동 추천한다.
계산대에서도 AI 카메라가 작동한다. 점원의 스캔 누락이나 오류를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안내한다. 올해 50개점 규모로 시범 운영 중이다. 고객 상담도 디지털화됐다. 이마트와 트레이더스 전점에 도입한 디지털 상담 플랫폼은 AI 챗봇으로 전체 민원의 40%를 처리한다.
신세계 경영진은 지난 1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을 계기로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행정부의 AI 정책 담당자들을 만나 유통업에 활용할 AI 기술에 관해 대화했다. 신세계그룹은 리플렉션 AI와 국내에 전력용량 250㎿급 AI 데이터센터 건립 프로젝트도 추진 중이다.
한편 신세계의 계열사 신세계디에프도 물류 자동화에 적극 나섰다. 지난 3월 LG전자와 손잡고 입고부터 보관·피킹·출하까지 물류 전 과정을 AI와 이동형 로봇, 디지털 트윈으로 지능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동시에 신세계면세점 명동점과 인천공항 통합물류센터에는 비전 AI 기반 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게차 운행과 화물 적재 시 2인 1조 작업 수칙 준수 여부, 고객 쓰러짐과 인파 밀집도가 AI가 실시간으로 감지된다. 이는 면세업계 최초로 비전 AI와 비전언어모델(VLM)을 결합한 영상분석 시스템이다.

부산 강서구에 있는 롯데마트 제타 스마트센터에서 피킹 로봇이 식료품이 담긴 바스켓을 실어 나르고 있다. 롯데마트 제공
롯데: 새벽 5분, 자동화로 준비한다
롯데마트는 유통 플레이어들 중에서 가장 공격적인 자동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영국 오카도의 스마트 플랫폼(OSP)을 도입한 것이 그 증거다. 오카도는 온라인 그로서리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기업으로, 자동화된 물류센터로 유명하다. 롯데가 이 기업의 기술을 선택한 것은 온라인 식료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부산 제타 스마트센터는 이 기술을 한국에 본격 도입하는 첫 현장이다. 고객 주문부터 상품 피킹(창고에서 상품을 꺼내는 일), 배송 준비까지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도록 설계됐다. AI와 로봇이 주문 패턴을 학습하면서 재고 배치를 자동 최적화하고, 작업 동선까지 계산한다. 센터 가동 후 부산·경남 지역에서는 새벽배송은 물론 2시간 단위 주간배송 서비스가 본격 제공될 예정이다. 이는 새벽배송 시장에서 롯데의 포지션을 재정의하겠다는 의도다.
온라인 그로서리 경쟁은 단순히 배송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신선식품의 품질 유지, 정확한 피킹, 신속한 배송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롯데가 오카도의 고도화된 자동화 플랫폼을 선택한 배경이 여기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지난 6월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베트남은 그룹 글로벌 사업의 핵심 국가"라며 현지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시장 진출도 가속화하고 있는데, 자동화 물류 인프라가 그 밑거름이 되고 있다.
롯데가 자동화에 집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수익성 개선이다. 2026년 1분기 롯데마트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개선되면서 미래 사업 투자를 가속할 여력이 생겼다. 부산 제타 센터의 성공 여부가 전국 확대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속도에서 정밀성으로
유통·물류 산업의 경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쿠팡이 데이터 기반 자동화 투자로 주문-배송 시간을 단축하는 동안, 신세계는 상품 소싱부터 고객 경험까지 전 과정의 정확성을 높이는 길을 택했다. 롯데는 자동화 플랫폼 도입으로 새벽배송 서비스의 확산을 노린다.
이들이 공통으로 지향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배송 속도 경쟁이 어느 정도 평준화되면서 다음 경쟁의 축은 '얼마나 정확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쿠팡의 AI 알고리즘이 수백만 개 옵션을 분석하는 이유도, 신세계가 물류와 재고에 AI를 접목하는 이유도, 롯데가 자동화 솔루션을 도입하는 이유도 같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사람의 직감을 대체할 때 효율성과 정확성이 동시에 향상된다는 점이다.
다만 현실의 과제가 있다. 대기업의 자동화 투자가 시장을 선도할 때, 협력사와 중소 물류 기업은 얼마나 빠르게 따라갈 수 있을까. 신세계나 롯데의 물류센터 자동화가 가시화되는 시점은 2026~2027년이다. 그때의 실제 운영 수치가 AI 물류 투자의 효율성을 증명할 것이다. 자동화 설비의 도입 비용과 운영 안정성, 고장 시 대응 체계도 검증해야 할 항목들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력 전환이다. 단순 배송과 하역을 담당하던 근로자들이 자동화 시대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 것인지가 남는 과제다. 쿠팡이 자동화 기술 인력 채용을 2배 이상 늘렸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모든 기업이 같은 속도로 따라갈 수는 없다. 자동화 인프라에 투자할 자본과 기술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규모가 있는 기업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방향은 명확하다. 물류는 이제 인간의 판단과 손노동에 의존하는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 데이터를 읽고, AI가 제시한 최적 경로를 신뢰하고, 로봇이 그것을 실행하는 구조로 옮겨가고 있다. 물류센터 바닥에 데이터 흐름이 보이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 흐름을 얼마나 빨리, 정확하게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는가가 유통사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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