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규모 경제사절단의 구성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에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포함됐다. 여기에 허태수 GS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구자은 LS그룹 회장, 최수연 네이버 대표 등 경제계 리더들이 합류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출국 전 기자들의 사절단 각오를 묻는 질문에 간단히 "열심히 하겠다"고 답했으며, 다른 총수들은 특별한 발언 없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해외 출장 중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현지에서 사절단에 바로 합류할 예정이다.
투자는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바이오, 원전 등 전방위적 분야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다. 4대 그룹의 투자 규모만 약 126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각 그룹별로 구체적인 투자 계획들이 속속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그룹별 투자 계획과 전략
삼성전자는 최근 테슬라와 차세대 AI6 칩 파운드리 계약을 맺으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한 상황이다. 이재용 회장은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의 증설 계획을 공개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90% 이상 건설이 완료된 이 공장은 2026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애플과의 대규모 공급 계약도 발표된 상태다.
SK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SK하이닉스가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파예트에 38억7000만 달러(약 5조원)를 투자해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을 위한 반도체 후공정 공장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SK온은 조지아주 소재 단독 공장을 운영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누적 대미 투자가 205억달러(28조6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2028년까지 추가로 210억달러(29조3000억원)를 더 투입할 계획이다. 조지아주 신공장과 루이지애나주 철강공장 신설 등이 포함된다.
1500억달러 마스가 프로젝트의 게임 체인저 역할
한국과 미국 정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관세 협상을 진행하며 마스가 프로젝트를 위한 1500억달러(약 208조원) 규모의 협력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 정치 슬로건 'MAGA'에 '조선업(Shipbuilding)'을 결합한 상징적 명칭이다.
WSJ는 최근 한국 정부와 재계가 내놓은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선호하는 대규모 패키지형 딜 구조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이 프로젝트는 미국 내 조선소 건립, 인력 양성, 공급망 재구축, 유지보수(MRO) 분야까지 포괄하는 산업안보 프로젝트로 구성됐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한미 조선업 협업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확장·현대화 계획도 주목받고 있다. 정부와 여당, 국내 조선사들이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위해서 특화 조선소를 설립하려는 이유다.
다양한 분야의 협력 확대 전망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은 SMR(소형모듈원자로) 관련 한미 협력을,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LNG(액화천연가스) 등 에너지 관련 협업을,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해저케이블·전력기기 사업 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전략광물 수출 확대를 통해 미국의 공급망 탈중국화 기조에 부응할 계획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미국 보잉과 항공기 구매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대한항공은 올해 초 보잉·GE에어로스페이스와 327억달러(45조6000억원) 규모의 항공기·엔진 도입 계약을 진행했으며, 향후 항공기 10대를 추가 구매하는 옵션 계약 발표도 기대된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미국 현지 바이오기업 생산 공장 인수의 후속 조치를,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인공지능(AI) 관련 협력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式 빅딜 외교와의 궁합
기업 의사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총수들이 경제사절단에 합류하면서, 이들의 등판 자체만으로도 외교전에 힘을 보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한국 대기업 총수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가 트럼프식 '원샷 빅딜' 협상 방식과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일본이 관료·경영인 중심의 합의형 방식을 통해 점진적 성과를 내는 것과 달리, 한국은 그룹별로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한꺼번에 제시할 수 있어 트럼프가 원하는 '종합 세트형 투자 약속'이 가능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워싱턴포스트도 "한국이 조선·제조업 분야에서 수백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제안한 것은 트럼프식 '빅딜 외교'의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이라고 전한 바 있다.
한미 동맹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번 경제사절단의 방미는 단순한 투자 약속을 넘어 한미 동맹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의미를 갖는다. 한국 대기업들의 대미 투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슬로건으로 내건 '미국 제조업 부활'과 맞아떨어지는 동시에, 구체적 투자금액을 성과로 강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조선·반도체·배터리 등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서의 대미 투자 확대는 양국 모두에게 윈-윈 구조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미국은 첨단 제조업 부활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출국에 앞서 경제사절단과 전략회의를 열어 각 그룹이 준비한 대미 투자 계획을 점검했다. 25일 워싱턴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 한미 동맹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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