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브랜딩 컨퍼런스'가 이데일리M 주최로 2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축사를 하고 있다. 'K-F&B, 맛을 넘어 브랜드로'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컨퍼런스는 단순한 제품을 넘어 스토리텔링과 경험을 담아내는 F&B 브랜딩의 가치와 미래를 제시하기 위해 매련됐다
이미지 확대보기삼양식품은 2025년 상반기 누적 매출 1조821억 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처음으로 반기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2020년 약 6,485억 원이었던 연간 매출은 2024년 1조7,300억 원으로 5년 만에 166% 성장했다. 65년 업력의 식품 기업에서 신생 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폭발적인 성장률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영업이익이다. 2024년 삼양식품의 영업이익은 3,442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3% 급증하며 영업이익률 20%를 달성했다. 같은 해 농심의 영업이익 1,631억 원, 영업이익률 4.7%와 비교하면 격차가 명확하다. 1998년 전자공시 이후 처음으로 삼양식품이 농심의 영업이익을 앞지른 것이다.
'명동 찜닭집'에서 시작된 불닭의 탄생
곧바로 제품 개발에 착수한 삼양식품은 1년간 매운 소스 2톤, 닭 1,200마리를 투입하며 '맛있는 매운맛' 찾기에 매진했다. 전국의 유명 불닭, 불곱창, 닭발 맛집을 찾아다니며 레시피를 정교화한 끝에 2012년 불닭볶음면이 세상에 나왔다.
하지만 초기 반응은 미미했다. 일부 매운맛 마니아들의 호응은 있었으나 대중적 인기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당시 삼양식품은 '매운 라면'이라는 콘셉트가 과연 통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심층분석] '불닭 신화' 삼양식품, 농심 넘어선 비법은?](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92914005700432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유튜브 챌린지에서 글로벌 열풍으로
전환점은 2014년 2월 유튜브 채널 '영국 남자'에서 시작됐다. '파이어 누들 챌린지(Fire Noodle Challenge)' 영상이 화제를 모으면서 해외 유튜버들이 잇따라 유사한 콘텐츠를 제작했다.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 유튜버들이 불닭볶음면을 먹으며 극한의 매운맛에 도전하는 영상이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삼양식품은 이를 교훈 삼아 2018년부터 본격적인 글로벌 전략을 수립했다. 치즈, 까르보나라 등 변형 불닭볶음면을 출시하며 매운맛 레벨을 다양화했고, 동남아와 중동 시장을 위한 할랄 인증을 획득했다. 2019년부터 2021년 사이에는 미국, 중국, 일본에 해외 법인을 설립하며 유통 인프라를 구축했다.
팬데믹이 만든 완벽한 타이밍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불닭볶음면에게 예상치 못한 기회였다. 집밥 문화가 확산되면서 라면 간편식 수요가 급증했고, K-드라마와 K-팝 열풍과 함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특히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매운 라면 챌린지'가 10~20대를 중심으로 바이럴되면서 불닭볶음면은 글로벌 청년층의 필수 체험 아이템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삼양식품은 2014년과 달리 이번에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해외 법인과 유통망이 구축되어 있어 바이럴 열풍을 실제 구매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 2022년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56.2% 증가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이후 2023년 31.6%, 2024년 45.7% 증가율을 이어갔다.
구글 트렌드 데이터를 보면 불닭볶음면의 검색량은 2021년부터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해 2024년 초 정점을 찍었다. 현재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며 일회성 열풍이 아닌 지속 가능한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전 세계인들과 함께한 ‘스플래시 불닭’ 캠페인 /사진 제공=삼양식품
수출 82.3% vs 9%, 삼양 vs 농심 엇갈린 전략
2024년 말 기준 삼양식품의 면 및 스낵 부문 수출 비중은 82.3%에 달한다. 2020년 58.6%에서 불과 4년 만에 20%p 이상 증가한 수치다. 반면 농심의 2024년 라면 매출 중 수출 비중은 약 9%에 불과하다. 삼양식품이 수출형 기업으로 탈바꿈한 반면, 농심은 여전히 내수 중심 기업의 성격이 강하다.
해외 법인의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2025년 1분기 삼양아메리카의 매출은 9,100만 달러(약 1,271억 원)로 전년 대비 62% 증가했다. 월마트, 코스트코, 크로거, 타깃 등 미국 주요 유통망에 입점하며 메인스트림 시장을 공략한 결과다. 중국 법인은 22% 증가한 6억1,000만 위안(약 1,182억 원)을 기록했으며, 2024년 7월 설립한 유럽 법인도 1분기에만 1,600만 유로(약 25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삼양식품의 해외 매출은 2020년 3,606억 원에서 2024년 1조3,000억 원으로 3.6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매출은 2,543억 원에서 2,800억 원으로 소폭 증가에 그쳤다. 성장의 거의 전부가 해외 시장에서 나온 것이다.
가격 인상과 원가 절감의 이중 전략
삼양식품의 높은 수익성은 가격 전략에서도 기인한다. 불닭볶음면의 개당 판매가는 2022년 757원에서 2024년 902원으로 19% 상승했다. 같은 기간 농심의 신라면은 오히려 726원에서 690원으로 가격이 하락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한 불닭볶음면은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증가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여기에 원재료 가격 하락이 더해졌다. 라면의 주 원재료인 밀가루(맥분) 가격이 2023년 대비 2024년에 11.8% 하락하면서 원가율이 개선됐다. 삼양식품의 매출 총이익률은 2021년 26.6%에서 2024년 41.9%로 급상승했고, 영업이익률도 같은 기간 약 10%에서 20%로 두 배 증가했다.
반면 농심의 매출 총이익률은 28~30%, 영업이익률은 3.5~6.3% 수준에 머물렀다. 2024년 4분기 농심의 영업이익률은 2.4%로 떨어지며 동종업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국내 공장 운영과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크고, 내수 시장 소비 둔화로 인한 판촉비 증가가 수익성을 악화시켰다.
생산 능력 확대로 글로벌 수요 대응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삼양식품은 생산 설비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익산 공장의 면류 공장 가동률은 95.7%로 거의 최대 생산 능력에 도달했다. 2025년 6월 완공된 밀양 2공장은 연간 6억9,000만 개의 라면을 생산할 수 있으며, 이로써 총 생산 능력은 약 26.8억 개로 증가했다.
더 나아가 삼양식품은 2027년 중국에 2,140억 원 규모의 신규 생산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6개 라인에서 연간 8억4,000만 개의 불닭볶음면이 생산될 계획이며, 이는 현재 생산 능력의 31% 증가에 해당한다. 중국 공장까지 완공되면 삼양식품은 연간 총 35억2,000만 개의 라면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지구 인구의 약 1/3이 먹을 수 있는 양이다.
2024년 삼양식품은 토지 매입에 279억 원, 건물에 40억 원, 기계 장치에 535억 원을 투자했다. 유형 자산은 2023년 대비 37.8% 증가했으며, 2027년에는 거의 1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흥미로운 점은 적극적인 설비 투자에도 불구하고 총 자산 내 유형 자산 비중이 2022년 51.4%에서 2024년 46.9%로 오히려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는 제품 인기로 인해 현금성 자산과 재고 자산이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으로, 투자가 효율적으로 회수되는 건전한 재무 구조를 보여준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ㅣ 삼양식품
김정수 부회장의브랜드 전략: 현지화·바이럴·팬덤
2025년 9월 2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K-브랜딩 컨퍼런스'에서 김정수 부회장은 불닭볶음면의 성공 비결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바로 '현지화', '바이럴', '팬덤'이다.
첫째, 현지화 전략이다. 불닭은 오리지널 제품에서 멈추지 않고 까르보나라, 하바네로, 똠양, 야키소바 등 현지 음식 문화를 반영한 다양한 변형 제품을 출시했다. 중국에서는 마라 불닭볶음면, 북미에서는 히스패닉계를 겨냥한 하바네로라임 불닭볶음면이 인기를 끌었다. 비건과 할랄 인증 제품도 도입하며 글로벌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에 대응했다.
둘째, 바이럴 마케팅이다. 김 부회장은 "소비자가 문화를 만들었지만 그 무대를 설계하고 최적화한 것은 삼양식품"이라며 "불필요한 간섭을 줄이고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불닭은 '놀이'와 '챌린지'의 대상이 되면서 셀러브리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셋째, 팬덤 구축이다. "브랜드는 책상 위가 아닌 현장에서 팬이 만든다"는 철학 아래 삼양식품은 '불닭 까르보 소녀', 덴마크 리콜 해제 파티, 코첼라 음악축제 등을 통해 진정성과 공감 가치를 전달했다. 2025년 4월 김 부회장은 직접 미국 코첼라 축제 현장을 방문해 불닭 부스를 점검하고 방문객들과 소통했다.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태도 자체가 팬덤의 충성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2027년 1위 탈환을 향한 도전
삼양식품은 1987년까지 국내 라면 시장 1위였으나 1988년 농심에 1위 자리를 내준 후 지금까지 3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불닭볶음면의 성공으로 2027년 40년 만에 1위 탈환이 현실화되고 있다.
2025년 1분기 삼양식품의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매출 37% 증가, 영업이익 67% 증가를 기록하며 영업이익률 25.3%에 달했다. 1분기 매출을 단순 연환산하면 2025년 연간 매출은 약 2조1,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면 및 스낵 부문만 따지면 약 1조9,000억 원으로, 농심의 2024년 면 매출 약 2조8,000억 원과의 격차를 1조 원 안쪽으로 좁히게 된다.
2027년 중국 공장이 완공되고 생산 능력이 31% 증가하면 상황은 더욱 유리해진다. 최대 생산량 중 약 30억 개가 판매된다고 가정하면, 개당 판매 단가 902원 기준으로 약 2조7,000억 원의 매출이 발생할 수 있다. 여기에 가격 인상까지 더해진다면 농심의 라면 매출 1위 자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포스트 불닭,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과제
하지만 삼양식품 앞에는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현재 불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소비 트렌드 변화 시 매출 급락 리스크가 존재한다. 이에 삼양식품은 '포스트 불닭' 전략을 추진 중이다.
첫째, 제2의 불닭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삼양식품은 2024년 새로운 글로벌 라면 브랜드 '맵(MEP)'을 출시했다. 일본 시장을 겨냥해 현지화된 이 제품은 불닭의 성공 DNA를 계승하면서도 다른 맛의 정체성을 추구한다.
둘째, 불닭 소스의 조미료화 전략이다. 삼양식품은 불닭 소스를 전 세계 50여 개국에 수출하며 소스 및 조미 소재 부문 매출을 2020년 64억 원에서 2024년 259억 원으로 4배 증가시켰다. 홈페이지에 불닭 소스를 활용한 다양한 레시피를 게시하며, 간장이나 고추장처럼 주방의 기본 소스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셋째, 헬스케어 컴퍼니로의 전환이다. 김정수 부회장은 2025년 신년사에서 "'탱글'과 '잭앤펄스'를 통해 식물성 단백질을 비롯한 건강기능식품 시장을 공략하겠다"며 "헬스케어와 식품 간 경계를 허물고 통합적 사업 시너지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웰니스 센터와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의 개인 맞춤 건강 개선 서비스 사업도 추진 중이다.
넷째, 지속적인 마케팅 투자다. 불닭 열풍이 장기적인 수요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해외 유명 셰프, 유튜버, 인플루언서와의 장기 콜라보나 월드컵, 올림픽 등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스폰서십 체결이 필요하다. 불닭볶음면이 '도전 음식'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생각나는 제품으로 포지셔닝되어야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
재무 건전성 유지하며 공격적 투자
급격한 성장과 대규모 투자에도 불구하고 삼양식품의 재무 건전성은 양호하다. 부채 비율은 2022년 50.8%에서 2024년 48%로 개선됐으며, 유동 비율은 137%를 유지하고 있다. 2024년 ROE(자기자본이익률)는 39.37%로 농심의 6.17%보다 6배 이상 높다.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은 2025년 6월 29일 10조 원을 돌파하며 국내 식품업계 역사상 최초로 10조 클럽에 진입했다. 같은 해 5월 16일에는 주가가 100만 원을 넘어서며 '황제주'에 등극했다. 이는 농심 시가총액의 4배, 오뚜기 시가총액의 4.5배에 달하는 규모다.
불닭이 증명한 K-푸드의 가능성
불닭볶음면은 2023년 누적 판매 50억 개, 2024년 70억 개를 넘어 2025년 상반기에는 80억 개를 돌파했다. 13년간 지구 인구와 맞먹는 80억 개가 팔린 것이다. 이 중 90% 이상이 해외에서 소비됐다.
김정수 부회장은 "K-컬처의 후광만 믿고 있다가는 언젠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며 "K-컬처는 브랜드 성장의 촉매가 될 수 있지만, 결국 승부는 브랜드 자체의 차별화된 코어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불닭은 단순한 매운 라면이 아니라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다"며 "앞으로도 변화와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삼양식품의 성공은 단순히 한 기업의 실적 개선을 넘어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현지화를 통한 진입 장벽 완화,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자발적 바이럴, 진정성 있는 팬덤 구축, 그리고 적시의 인프라 투자가 결합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기회가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65년 역사의 식품 기업 삼양식품이 불닭 하나로 라면 업계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2027년 1위 탈환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삼양식품의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매운맛은 중독성이 강하다. 한국 사람들이 매운맛을 잊지 못하고 찾아 먹듯이,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매운맛을 중독시켜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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