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지배구조 선진화'가 드디어 인사의 언어로 번역되는 순간이다. 이번 주총에서 주목할 신임 사외이사 후보 여섯 명을 들여다봤다.
신한금융의 선택, 박종복과 임승연
신한금융이 첫 번째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낙점한 인물은 박종복 전 SC제일은행장이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꼭 10년간 행장직을 이어온, 4연임에 성공한 인물이다.
국내 은행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긴 재임 기간으로, 그 시간 동안 디지털 전환, 리테일 현장, PB 영업, 글로벌 금융그룹의 지배구조까지 실무부터 경영 전반을 두루 경험했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그를 추천하며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실질적 조언을 이사회에 제공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자본시장 전문가인 최영권 현 이사와 조합되면 은행업과 자본시장을 아우르는 균형 있는 이사회 논의가 가능해진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수십 년 금융 현장을 뛰어온 CEO 출신이 내부통제·소비자보호·신사업 전략 논의를 이사회 안에서 직접 이끌게 된다.
신한금융의 두 번째 신임 사외이사 후보는 임승연 국민대 경영대학장이다. 미국 공인회계사(CPA) 출신으로 재무·회계 분야의 학문적 전문성과 타 금융사 사외이사·감사위원 실무 경험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다. 임기가 만료되는 윤재원 이사가 같은 분야 전문가였던 만큼, 이사회 내 재무·회계 전문성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여성 이사 비율도 함께 지키기 위한 인선이다.
신한금융 이사회는 임 후보에 대해 '내부통제와 감사에 대한 이사회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현 시점에서 금융회사 감사 프로세스에 깊은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 견제·감시 역할을 수행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임 후보 합류로 신한금융의 여성 사외이사는 총 4명으로 유지되며, 업계 최고 수준의 성별 다양성이 이어진다.
KB금융이 선택한 서정호 조세 전문 변호사
KB금융은 법무법인 더위즈 서정호 대표변호사를 신임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했다. 그 결과 교수 출신이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서 후보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모두 통과한 인물로, 국세청과 재정경제부를 거쳐 현재는 조세·금융·행정 분야 법률 자문을 맡고 있다. 현대캐피탈과 한화손해보험 등 금융사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한 이력도 있어 금융 규제환경에 대한 이해가 깊다.
우리금융은 AI 전문가 류정혜와 금융감시센터 정용건 선택
우리금융은 이번 주총에서 기존 사외이사 3명 중 2명을 민간 현장 출신으로 교체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 첫 번째 카드가 류정혜 후보다.
류 후보는 대통령 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위원이자 '과실연 AI미래포럼'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AI 분야 전문가다. 네이버·NHN·카카오 등 국내 주요 플랫폼 기업에서 AI·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직접 이끈 실무 경력이 핵심이다.
우리금융 임추위는 이번 인선 배경에 대해 '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이사회 내 AI 전환(AX) 전문가 합류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단순한 트렌드 반영이 아니라 그룹 전체의 AX 전략을 이사회 차원에서 직접 설계하고 검증하겠다는 의지다.
우리금융의 또다른 사외이사 후보는 정용건 금융감시센터 대표다. 정 대표는 금융시장 감시, 불완전판매 방지, 금융 취약계층 지원 등 소비자 보호 분야를 현장에서 직접 다뤄온 인물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과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금융제도 운용 경험도 쌓았고, 현재는 케이카캐피탈 상무 겸 준법감시인으로 재직 중인 현직 실무자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이 거듭 강조해온 소비자 보호 강화를 이사회 내부에서 구현할 인물로 평가된다. 류정혜 후보와 정용건 후보의 동시 합류로 우리금융 이사회 내 교수 출신은 기존 3명에서 단 1명으로 줄게 된다. 전원 민간 현장 인사로 채운다는 뚜렷한 방향성이 이번 인선에서 읽힌다.
JB금융의 선택, 이동철 전 KB금융 부회장
JB금융은 이동철 전 KB금융지주 부회장을 사외이사 후보로 선택했다. KB국민카드 대표를 거쳐 지주 부회장까지 오른 인물로, 국내 최대 금융그룹에서 실무부터 그룹 경영 전반을 두루 경험한 대형사 출신 전문가다. 전북·광주를 기반으로 하는 지방금융지주에 국내 최상위 금융그룹의 경영 경험을 수혈한다는 점에서 파격에 가까운 인선이다.
지방은행지주의 이사회는 그간 지역 기반 인사와 학계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강했다. 이번 이동철 후보 합류는 JB금융이 지배구조 선진화 압박에 응하면서, 동시에 그룹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사회 전문성 업그레이드를 꾀하는 이중 포석으로 읽힌다.
이사회가 바뀌면 경영이 바뀐다
이번 개편이 '완전한 물갈이'가 아닌 것은 사실이다. 4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2명 중 임기 만료자 23명 가운데 교체된 인원은 6명에 그쳤다. 금융당국이 원하는 수준의 변화라고 보기 어렵다는 시각도 나온다. CEO 연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곳도 아직 없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히 달라졌다. 10년 행장, AI 플랫폼 실무가, 소비자경제학 권위자, 조세 전문 변호사, 금융소비자 현장 감시인, 대형 금융그룹 부회장 출신이 이사회에 들어오는 것은 불과 수년 전에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금감원 지배구조 선진화 태스크포스가 이달 말 추가 개선안을 내놓으면 이사회 구성 방향이 더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주총은 마침표가 아닌, 변화의 시작점이다.
■ 이번 주총 신임 사외이사 후보 한눈에 보기
• 박종복 (신한금융) — 전 SC제일은행장, 4연임 10년, 현장형 금융 CEO
• 임승연 (신한금융) — 국민대 경영대학장, 미국 공인회계사, 재무·감사 전문가
• 서정호 (KB금융) — 법무법인 더위즈 대표변호사, 행정·사법고시 합격, 조세·금융법 전문가
• 류정혜 (우리금융) — 국가AI전략위원회 위원, 네이버·카카오 AI 실무 출신 전문가
• 정용건 (우리금융) — 금융감시센터 대표, 소비자보호·준법감시 현장 전문가
• 이동철 (JB금융) — 전 KB금융 부회장·KB국민카드 대표, 대형 금융그룹 경영 전문가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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