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방산기업 제치고 단독 수주
미국 육군이 현재 운용 중인 M777 155mm 견인포를 대체하기 위해 추진하는 자주포 현대화 사업(MTC·Mobile Tactical Cannon)에 K9MH가 선정되었다. 견인포보다 신속하게 이동하고 사격 후 즉시 진지를 이탈할 수 있는 자주포가 필요하다는 미군의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한화는 미국법인을 통해 K9 자주포의 화력체계 기술을 차륜형 플랫폼에 접목한 K9MH를 제안했다. 기존 궤도형 K9과 달리 도로 기동성이 뛰어난 차륜형 차량에 포탑을 탑재해 장거리 이동과 신속한 전개에 강점을 둔 설계다. 미국 육군은 올해 초부터 주요 글로벌 방산 기업에 신형 자주포 시제품 제작을 의뢰했으며, 납기·요구 성능·현지화 비용 등을 다각도로 평가했다. 독일의 라인메탈과 영국의 BAE 시스템즈 같은 글로벌 방산업체들이 참여한 수주전에서 한화가 단독 사업자로 확정된 것이다.
최대 4년간 작전 검증 거쳐 양산으로
이번 계약 이전까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궤도형 K9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해있었다. 이번 차륜형 자주포 계약으로 양쪽 플랫폼 모두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시험평가 결과에 따라 후속 양산은 물론 탄약·정비·군수지원 사업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최종 도입 물량은 약 500문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기존 본사업 규모는 10조 원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미국 현지화 강화로 장기 파트너십 구축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시장 확보를 위해 현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4월 앨라배마주 오펠리카의 유휴 공장을 3년간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현지 자주포 공급망에 투자해 미국 전투 차량 산업 기반 강화에 나설 방침이다. 이는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미국 육군의 장기 전력 현대화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는 전략이다.
이번 성과의 배경에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그의 장남 김동관 수석부회장 2대에 걸친 방산 사업에 대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김승연 회장은 오랫동안 방산을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업이자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탈바꿈해야 할 핵심 분야로 판단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술을 확보하라"는 그의 철학은 한화 방산 사업의 방향성을 결정했다. 또한 그는 미국 정계와 깊은 인연을 맺어온 대표적인 미국통 기업인이다. 빌 클린턴·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책 지도자들과 수시로 국제 정세를 논의해왔으며, 미국 정책연구기관 헤리티지재단의 창립자 에드윈 펄너와는 40년 넘게 인연을 유지해오고 있다. 2022년에는 김동관 수석부회장도 함께 글로벌 경제·외교 현안과 한미 우호 관계 증진 방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9년의 준비, 워싱턴 D.C.부터 시작된 미국 공략
한화의 미국 시장 진출 의지는 오래전부터 일관되었다. 9년 전 워싱턴 D.C.에서 열린 북미 최대 규모 지상 방산 전시회에 수십 톤에 이르는 실물 K9 자주포와 비호복합 장갑차를 직접 수송해 전시장에 전개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한화는 미 육군의 자주포 현대화 사업을 겨냥한 맞춤형 솔루션 제시를 본격 모색했다.
구체적인 조직 개편도 이어졌다. 전 주한미군사령관·미국 행정부 전직 관료·글로벌 방산기업 출신 최고경영자(CEO) 등을 미주법인에 영입해 미국의 정책과 전략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김승연 회장이 2024년 11월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직을 겸임하기 시작한 것도 탄탄한 대미 인적 네트워크를 토대로 조선·방산·에너지 분야 협력을 본격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더욱이 2021~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자 김동관 수석부회장은 유럽지역 방산 물자 수요 증가에 대비했다. 태스크포스를 꾸려 핀란드·에스토니아·폴란드·루마니아 등 유럽 전역에 임직원을 보내 현지 관계자들과 대화 채널을 구축하고 한화 무기체계의 강점을 소개했다. 그 결과 한화는 폴란드에 K9 자주포와 천무다연장로켓 수출 계약이라는 결실을 얻기도 했다.
조선 사업까지 연결되는 한미 경제협력 계기
이번 K9 자주포 수주가 미국의 해군 함정 건조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내 조선소를 소유한 외국 기업에 대해 한시적으로 본국에서 배 최대 2척을 건조할 수 있게 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 양국에 조선소를 보유한 기업은 한화가 사실상 유일해 미 해군 함정 수주전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화 관계자는 "축적된 네트워크와 그룹이 쌓아온 경험이 일찌감치 미국과 유럽 등 해외 방산 시장 진출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과감하게 인적·물적 투자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이라 설명했다. 그러면서 "2대를 이어온 방산 육성 의지와 글로벌 네트워크, 그리고 치밀하고도 전략적 리더십은 한화가 미국 자주포 수출과 해군 함정 사업을 동시에 성사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고 덧붙였다.
국산 완성형 무기체계의 미국 수출은 한국 방산산업의 위상 변화를 상징한다. 이는 단순한 제품 거래를 넘어 한미 동맹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기도 하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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