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천억원 규모 리베이트 의혹, 수면 위로
24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전날부터 엔씨소프트 본사에 조사관을 파견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이는 구글이 자사 앱마켓 '구글플레이' 중심의 생태계 구축을 위해 국내 주요 게임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본격 수사하기 위한 조치다.
문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한국게임이용자협회, 한국게임소비자협회가 공정위에 제기한 신고였다. 이들 단체는 구글이 엔씨소프트, 넷마블, 펄어비스, 컴투스 등 국내 주요 게임사 4곳에 마케팅 명목의 리베이트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토종 앱마켓인 원스토어 등 경쟁 플랫폼 출시를 포기하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프로젝트 허그' 논란의 한국 버전
이번 의혹의 핵심 근거는 미국에서 벌어진 에픽게임즈와 구글 간의 반독점 소송에서 공개된 구글의 내부 문건이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는 구글이 플레이스토어 수수료의 5%를 리베이트로 제공했지만, 이를 유튜브 거래나 클라우드 서비스 할인 등으로 위장해 30% 수수료 부담을 줄여주는 미묘한 방식을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구글의 이런 전략은 '프로젝트 허그(Project Hug)'라는 코드명으로 불렸다. 법정에서는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2020년 3억6000만달러 규모의 인센티브 패키지를 받고 경쟁 플랫폼이 아닌 구글플레이에서만 게임을 출시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라이엇게임즈의 경우에도 구글이 약 3000만달러를 지불해 자체 앱스토어 개발 계획을 중단시켰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23년 12월 배심원단은 구글이 구글플레이 앱스토어와 결제 서비스를 통해 불법적인 독점을 운영했다며 에픽게임즈의 손을 들어줬다. 이는 구글의 리베이트 전략이 단순한 마케팅 활동이 아닌 시장 독점을 위한 불공정 행위라는 점을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구글은 전 세계적으로 반독점 규제의 표적이 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구글의 독점 행위로 총 80억 유로가 넘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2018년에는 안드로이드 모바일 기기 관련 불법적 제한 행위로 43억4000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자사 쇼핑 추천 서비스에 불법적 우위를 제공한 행위로는 24억 유로의 과징금이 확정됐다.
최근에는 EU 법원에서 안드로이드 관련 과징금 취소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 3월에는 EU의 새로운 디지털시장법(DMA) 위반 혐의로 또 다른 조사를 받고 있으며, 글로벌 연 매출의 최대 10%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받을 위험에 처해있다.
한국 게임업계의 딜레마
한국 상황에서 주목할 점은 게임사들의 입장이다. 신고 대상이 된 4개 게임사들은 모두 리베이트 제공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이는 구글의 리베이트가 직접적인 현금 지급이 아닌 마케팅 지원, 해외 진출 지원, 앱 노출 혜택 등의 형태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실제로 공정위는 이미 2023년 4월 구글이 2016~2018년 기간 동안 4개 게임사에 앱 화면 상단 노출, 해외 진출 지원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구글플레이에만 게임을 출시하고 원스토어 등 경쟁 앱마켓에는 출시하지 않도록 한 행위에 대해 42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그 이후 기간을 대상으로 한다.

토종 플랫폼의 생존 위기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리베이트 제공을 넘어서 국내 디지털 생태계의 다양성 훼손 문제다. 구글의 전략적 리베이트로 인해 원스토어 같은 토종 앱마켓이 경쟁력을 잃고, 결국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는 구조적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구글플레이는 현재 국내 안드로이드 앱 유통의 압도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30%의 높은 수수료율에도 불구하고 게임사들이 구글플레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용자 접근성과 마케팅 효과 때문이다. 여기에 구글이 추가적인 인센티브까지 제공한다면, 경쟁 플랫폼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위법 사항 확인될 시 엄정 조치 예정
공정위의 이번 조사는 국내 디지털 플랫폼 시장의 공정 경쟁 질서 확립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의 위법 행위가 확정될 경우, 기존 421억원보다 훨씬 큰 규모의 과징금이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남용에 대한 국내 규제 당국의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전망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구글의 독점적 지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도 이런 글로벌 흐름에 동참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조사 여부나 구체적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위법 사항이 확인될 경우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구글의 리베이트 전략이 단순한 마케팅 활동인지, 아니면 시장 독점을 위한 불공정 행위인지에 대한 공정위의 판단이 주목되는 이유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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