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리스크 해소 … 경영 복귀 타이밍?
이호진 회장의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선임은 법적·정치적 환경 변화와 맞물려 있다.
2011년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되어 2021년 10월 만기 출소한 후, 2023년 8월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되었던 그는 약 2년간 공식 활동을 자제해왔다. 그 사이 일부 법적 리스크가 해소되는 과정을 거쳤다. 올해 4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이 회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으며, 이는 재단 이사장 선임의 법적 선결조건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태광타운' 완성과 1조5000억 규모 M&A의 신호
이호진 회장의 복귀 신호는 태광그룹의 공격적 인수합병 전략과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
올해 들어 태광그룹은 M&A 시장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기업 전략을 넘어 오너의 경영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먼저 메리어트 호텔 인수는 상징성이 깊다. 태광그룹이 계열사 흥국리츠운용을 통해 KT&G로부터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남대문 일대에 소유하고 있던 흥국생명 건물들과 함께 '태광타운'을 완성하게 되었다. 인수가는 2000억원대 중반으로 알려졌으며, 이는 태광이 지난 6월 자사주를 담보로 발행한 3186억원 규모의 교환사채(EB)와도 연계되어 있다. 태광이 태광산업이 지난 초 SK브로드밴드 매각으로 유입된 약 1조원의 현금을 기반으로 1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 시기였다.
더욱 주목할 점은 애경산업 인수 전략이다. 태광산업과 티투프라이빗에쿼티(PE), 유안타인베스트먼트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애경산업 지분 약 63%를 약 4700억원에 매입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태광이 기존의 B2B(기업 간 거래) 중심의 섬유·석유화학 사업에서 벗어나 뷰티, 생활용품 등 B2C(기업·소비자 거래) 시장으로 진출하는 신호탄이 된다. 애경산업은 '루나', 'AGE 20's', '케라시스', '2080' 등 국민 브랜드를 보유한 알짜 기업이며, 태광 계열사 태광홈쇼핑과의 라이브 커머스 시너지도 기대된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 인수 계획이다. 흥국생명이 인수 숏리스트에 선정되어 실사를 진행 중인 이지스자산운용은 올해 상반기 기준 펀드 운용 규모 29조원, 순자산총액 31조원의 국내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다. 인수 가격은 6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태광그룹은 기존의 흥국생명, 흥국화재, 흥국증권 등 금융계열사에 이지스자산운용까지 더해 '종합금융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된다.
한 투자은행 관계자는 "태광그룹은 금융·소비재·부동산을 잇는 삼각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 안정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주력 산업인 섬유와 석유화학 부문의 글로벌 경기 둔화와 중국 공급 과잉으로 인한 실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다. 실제로 태광산업의 최근 3년간 누적 적자는 2300억원을 웃돌고 있다.
사업 구조 개편, 3세 승계의 포석?
재계에서는 이번 공격적 M&A가 단순한 사업 다각화를 넘어 3세 승계 작업의 신호라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애경산업 인수에 참여하는 티투PE의 지분 구조가 이를 뒷받침한다. 티투PE는 태광산업과 IT 계열사 티시스가 각각 4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호진 회장의 장남 이현준씨와 장녀 이현나씨가 각각 9%씩 지분을 갖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러한 지분 구조가 사익편취형 거래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다만 업계 관계자는 "주력 산업인 석유화학 및 섬유 산업은 최근 수년간 업황이 크게 악화해 3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며 "뷰티, 부동산, 호텔업으로 신사업을 전환하는 태광그룹의 행보는 그룹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한 작업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개선 전략, 사회적 책임 강조
이호진 회장의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선임에는 이미지 개선 차원의 전략도 담겨 있다. 2023년 광복절 특별사면 과정에서 법무부 차관의 이해충돌 논란과 수년간의 사법적 논란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화되었던 그가 문화예술 재단의 수장직을 맡음으로써 사회적 공헌과 문화 지원자로서의 위상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무보수·비상임직이라는 점도 의미가 있다. 태광그룹 관계자들이 강조하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메시지로 전달하는 동시에, 법적 문제에서 기인한 '자신감 부족'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그룹 경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창업주 일가가 설립한 비영리 재단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한다는 메시지는 태광그룹의 정통성과 지속성을 나타낸다.
현재 진행 중인 M&A들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리어트 호텔 인수와 애경산업 인수가 연내 또는 내년 초 결납예정인 가운데, 이지스자산운용 인수도 연내 최종 인수자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러한 주요 거래들이 마무리되는 내년 상반기에는 이호진 회장이 태광그룹 경영 일선으로 본격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는 업계 평가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요소는 건강 상태의 호전이다. 오랜 간암 투병으로 올해 초까지만 해도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최근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경영에 필요한 체력과 의지가 회복되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태광그룹은 공식적으로는 이호진 회장의 경영 복귀에 대해 선을 그으며 "현재 복귀와 관련해 준비되고 있는 것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재단 이사장 선임, M&A 공격, 조직 개편, 새로운 사업 목적 추가 등 일련의 움직임들이 결코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세화예술문화재단 이사장 선임은 외형상 문화예술 지원 조직의 리더십 교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태광그룹의 '조용한 경영 복귀'의 신호탄이자 대규모 구조 재편의 시작점으로 평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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