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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던져 가격인상 순서 정했다" 4년간 은폐된 제지업계 담합의 전말

96% 시장 점유율 제지사들의 담합으로 가격 71% 상승…공정위 '史상 최大 과징금'

안재후 CP

2026-04-23 13:23:34

"동전 던져 가격인상 순서 정했다" 4년간 은폐된 제지업계 담합의 전말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국내 인쇄용지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한 제지사들이 4년간 정기적으로 모여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중징을 받게 됐다. 담합 기간 판매가격이 평균 71% 상승했고, 공정위는 총 33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며 두 업체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을 장악한 소수 기업들의 불공정한 행위가 수년간 적발되지 못했던 적나라한 사건이 드러났다.

6개 제지사의 광범위한 담합
공정위는 무림SP, 무림페이퍼, 무림P&P, 한국제지, 한솔제지, 홍원제지 등 6개 제지사가 2021년 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약 4년간 인쇄용지 가격을 담합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23일 밝혔다. 이들 회사는 최소 60회 이상 정기적·비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졌으며, 7차례에 걸쳐 기준가격을 인상하거나 할인율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판매가격 인상을 합의했다.

국내 인쇄용지 시장에서 이들 6개 제지사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96%에 달한다. 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한 기업들이 담합을 벌인 만큼, 일반 소비자와 기업들은 부당한 가격 인상의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치밀한 은폐 수법으로 진행된 담합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담합 과정에서 적용된 은폐 수법의 치밀함이다. 제지사 임직원들은 담합 사실이 들통날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본인 명의 휴대전화 사용을 피했다. 대신 공중전화와 식당 전화, 타 부서 직원의 휴대전화 등을 이용했으며, 연락처는 별도의 종이에 이니셜과 가명으로만 메모해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

거래처에 가격 인상을 먼저 알리는 업체에 불만과 반발이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담합 참여사들은 통보 순서까지 미리 합의했다. 합의가 원만하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동전이나 주사위를 던져 순서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는 담합이 단순한 암묵적 합의가 아닌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불공정행위였음을 보여준다.

"동전 던져 가격인상 순서 정했다" 4년간 은폐된 제지업계 담합의 전말

소비자가 부담한 71% 가격 인상
담합의 결과는 명확하다. 담합 기간 인쇄용지의 판매가격이 평균 71% 상승했다. 96%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한 제지사들이 담합으로 인한 가격 인상을 강제했으므로, 일반 기업과 소비자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이 가격을 수용해야 했다.

관련 매출액만 약 4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담합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 규모는 매우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급 과징금과 검찰 고발
공정위는 이번 사건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솔제지 1425억8000만원, 무림피앤피 919억5700만원, 한국제지 490억5700만원, 무림페이퍼 458억4600만원, 홍원제지 85억3800만원, 무림에스피 3억4700만원 등 총 338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규모는 공정위가 담합 사건에 부과한 과징금 중 5번째로 큰 금액이며, 제지업체 담합 사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관련 매출액 4조원을 기준으로 홍원제지에는 4%의 과징금 부과율을 적용했고, 나머지 5개 업체에는 12%를 적용했다. 공정위는 "조사 심의와 협조 등을 고려해 과징금 일부를 감경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제지와 홍원제지는 검찰에 고발됐다. 이는 단순 행정조치를 넘어 형사 책임 추구로 나아간 조치다.

3년간의 가격 재결정 의무
공정위는 담합행위가 고착화된 점을 고려해 6개 제지사에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을 내렸다. 마지막 7차 합의 이후 기준가격이 변경되지 않아 담합의 영향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각 제지사는 담합 전의 경쟁 수준으로 가격을 독자적으로 재결정하고, 향후 3년간 반기마다 변경 내역을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가 가격재결정 명령을 내린 것은 2006년 4월의 밀가루 담합 사건 이후 두 번째다.

생활밀접 분야 담합 감시 강화
남동일 공정위 부위원장은 이번 사건을 통해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공정위는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의 담합행위에 대한 감시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며, 적발될 경우 예외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법 집행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재 심의 중인 밀가루, 전분당, 계란 등 식료품 분야의 담합 사건들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진행할 예정"이라며 소비자 생활과 관련된 분야의 부정행위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강조했다.

이번 제지업체 담합 사건은 시장 자율성에 의존하는 경제 구조에서 거대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진행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를 통제하기 위한 공정경제 감시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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