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랑이 선생님에서 글로벌 기업 리더로
1925년 4월 24일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구인회 LG 창업 회장의 첫째 아들로 태어난 구자경 명예회장은 원래 교사의 꿈을 품고 있었다. 1945년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지수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학생들에게 규율과 원칙을 강조해 '호랑이 선생님'으로 불렸다.
그러나 1950년 아버지의 부름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아버지의 부름 앞에 도리가 없었다. 구 명예회장은 '공장 지킴이'였다.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펴 럭키크림을 생산했다. 하루걸러 공장 숙직을 하며 새벽마다 도매상을 맞았다.
1150배 성장의 신화를 만든 25년
1970년 1월 후임 LG그룹(당시 럭키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구자경 회장은 1995년 2월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기기 전까지 25년간 그룹을 이끌었다. 이 기간 동안 LG그룹은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 취임 당시 매출 260억원이었던 그룹을 30조원 규모로 키웠다.
구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은 명확했다. "생산기업을 시작하면서 항상 마음에 품어온 생각은 우리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업보국 정신은 모든 경영 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기술입국, 꿈이 아닌 현실로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업 보국도 공염불"이라는 신념으로 수많은 혁신을 만들어냈다. 구 명예회장의 기술 중시 경영은 여러 혁신적 성과로 이어졌다.
이후 회장 재임기간 동안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는 "연구소만은 잘 지어라. 그래야 우수한 과학자가 오게 된다"고 했다.
투명경영과 글로벌화의 선구자
구 명예회장은 기술 혁신뿐만 아니라 경영 혁신에서도 선구적 역할을 했다. 1970년 2월 그룹의 모체 기업인 락희화학이 민간 기업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곧 이어 전자 업계 최초로 금성사가 기업공개를 하면서 주력 기업을 모두 공개한 한국 최초의 그룹이 됐다.
글로벌화에서도 앞장섰다. 재임 기간 동안 50여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했으며 1982년에는 미국 알라바마주 헌츠빌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세웠다. 이는 한국 기업 최초의 해외 현지 생산 공장으로 기록되었다.
사람 중심 경영철학의 토대
"그는 '겸손한 학습자'이자 '기술·인재 중시 경영자'로서 LG의 정체성을 '사람과 기술'이라는 테마로 확립시킨 주인공"이라고 평가했다.
"사람이 곧 사업"이라고 말하며 인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구 명예회장은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것과 같은 애정이 바탕이 돼야 인재를 기를 수 있다"고 했다.
구 명예회장은 1988년 인화원 개원식에서 "기업은 인재의 힘으로 경쟁하고 인재와 함께 성장한다. 기업의 궁극적 목표인 인류의 번영과 복지도 인재의 빛나는 창의와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다"며 "인재 육성은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전략이요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했다.
구광모 회장으로 이어지는 혁신 DNA
연구자들은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도전과 개척 정신이 구자경-구본무-구광모 회장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광모 회장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기술 중시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구 회장은 고객 가치 제고뿐만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으로 'ABC(인공지능·바이오·클린테크)' 전략을 제시하고 생존을 위한 변화를 강조하며 위기 돌파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5년간 AI 3조 6000억원 투자, 바이오 1조 5000억원 투자, 클린테크 분야 1조 8000억원 투자 등 미래사업의 청사진 역시 확고한 편이다.
한국형 기업가정신 초석 닦아낸 인물
학술세션에 참가한 연구자들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타 산업과의 융합이라는 부분에서는 새롭게 보완해야 할 점으로 평가했다. 미래 산업의 특성이 인공지능(AI)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기타 산업과의 융합이라는 측면은 꾸준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는 것이다.
박진용 건국대 교수는 "LG그룹은 그동안 중시해왔던 사람 중심 조직 문화의 장점은 그대로 흡수해 나가야 한다"며 "AI시대에 발맞춰 기타 산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 꾸준히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종선 명지대 교수는 "구 명예회장은 다년간 그룹을 이끌면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한국형 기업가정신의 초석을 닦아낸 인물"이라며 "사업보국과 글로벌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말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남긴 '사람과 기술' 중심의 경영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구 회장 취임 당시인 2018년 123조원이던 공정자산총액 규모는 올해(2025년) 186조원으로 7년간 약 63조원 증가했다. 이는 구자경 명예회장이 뿌린 혁신의 씨앗이 현재까지도 LG그룹의 성장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탄생 100주년을 맞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리더십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계승해야 할 경영 철학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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