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 원인, 제품 하자와 설치 불만이 주범
보일러 관련 분쟁 사유를 살펴보면 제품 자체의 하자가 61.8%(361건)로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설치 불만이 28.1%(164건)로 그 뒤를 이었다. 그 외에도 친환경 보일러 지원금 신청 누락 등 행정 처리 불만이 4.3%(25건), 부당한 대금 청구가 3.2%(19건)로 집계됐다.
세부 피해 유형을 분석하면 더욱 구체적인 문제점이 드러난다. 제품 하자 361건 중에서는 난방과 온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난방·온수 불량'이 56.5%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한편 설치 불만 164건 중에서는 배관과 연통 등 주요 부품을 잘못 시공한 '배관·연통 오설치'가 69.5%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는 제품의 문제뿐 아니라 설치 과정에서의 기술 부족이나 관리 소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보일러 피해구제 신청을 사업자별로 분석하면 특정 업체에 피해가 집중된 패턴이 명확히 드러난다. 귀뚜라미가 182건(42.3%)으로 가장 많은 피해구제 신청을 받았으며, 뒤이어 경동나비엔 109건(25.3%), 대성쎌틱에너시스 100건(23.3%), 린나이코리아 39건(9.1%) 순이었다. 주목할 점은 이 4개 제조사에 대한 피해구제 신청이 전체의 73.6%(430건)를 차지한다는 것으로, 보일러 시장에서 소수 업체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소비자들이 문제에 노출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동나비엔 합의율 50.5% 상대적 양호
더욱 심각한 문제는 피해 신청을 해도 실제 보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584건의 피해구제 신청 중 환급이나 수리 등으로 실질적인 보상을 받은 건은 단 42.3%(247건)에 불과했다. 사업자별로 보면 경동나비엔의 합의율이 50.5%로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지만, 피해구제 신청이 가장 많았던 귀뚜라미는 36.8%에 그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신청 건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이 원만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으로, 소비자 피해 해결 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합의율이 낮은 근본적인 원인은 보일러의 특수한 구조에 있다. 보일러는 제조사가 제품을 생산하고 별도의 설치업체가 시공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제품의 문제인지 설치의 문제인지를 두고 양쪽이 책임을 서로 미루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소비자원의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책임 공방이 분쟁 해결을 어렵게 만들어 다른 제품군 대비 현저히 낮은 합의율을 초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10월 피해구제 신청 상위 4개 제조사와 간담회를 개최했다. 간담회에서는 최근 5년간의 피해 현황을 공유하고 반복되는 피해의 예방 및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보일러 제조사들은 이 자리에서 소비자 피해의 적극적인 해결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자율상담처리 시스템을 강화하며 대리점에 대한 교육과 관리를 철저히 하는 등 피해 예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겨울철 보일러 피해는 단순한 개별 소비자 문제를 넘어 산업 구조적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제조사와 설치업체 간의 책임 회피 관행, 낮은 합의율로 인한 실질적 보상의 어려움 등은 소비자 보호 강화와 업체 간 책임 체계 개선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소비자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제조사들의 자발적 개선 의지와 정부 차원의 규제 강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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