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 310개 포트폴리오로 시장 재편
디폴트옵션은 DC형과 IRP 가입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 지정한 포트폴리오로 자동 운용되는 제도다. 2023년 7월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도입됐으며, 2025년에는 전체 가입자로 확대 적용되면서 완전히 정착됐다.
금융회사들은 이 제도 시행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개발했다. 2025년 2분기 기준 전체 금융회사가 승인받은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는 310개를 기록했다. 위험도에 따라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으로 구분되며, TDF(타겟데이트펀드), BF(밸런스펀드), SVF(안정가치펀드), SOC(사회간접자본펀드) 등 다양한 실적배당형 상품을 포함한다.
가입자는 자신의 위험 선호도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선택할 수 있으며, 언제든 변경이 가능하다. 만기 도래 후 6주 이내 운용지시가 없으면 사전 지정한 포트폴리오로 자동 운용되는 구조다.

디폴트옵션은 자동화 시스템
위험도별 수익률 격차 최대 5배, 선택의 중요성 부각
디폴트옵션의 진정한 가치는 위험도별 수익률 차이에서 드러난다. 2024년 4분기 공시 기준으로 초저위험 포트폴리오(예금 100%)는 연3.32%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저위험(실적배당형 30% 이상)은 7.20%, 중위험(실적배당형 40~70%)은 11.77%, 고위험(70% 이상)은 16.83% 이상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의 고위험형 BF1 상품은 2025년 연간 수익률 26.62%를 기록하며 전 퇴직연금 사업자 중 1위를 차지했다. 초저위험과 비교하면 10배 이상의 수익률 차이다.
이러한 격차는 가입자들의 선택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잘 모르니까 그냥 예금"이라는 소극적 태도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내 위험 선호도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선택하자"는 능동적 태도로 변화하고 있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회사에서 디폴트옵션 선택 안내를 받고 처음으로 퇴직연금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중위험 포트폴리오를 선택한 후 1년간 8.5% 수익을 올렸다"고 말했다.
업권별 디폴트옵션 경쟁, 증권사 고수익 상품 우위
디폴트옵션 포트폴리오는 업권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은행은 주로 예금과 채권형 펀드 중심의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제공하는 반면, 증권사는 주식형 펀드 비중을 높인 공격적 포트폴리오를 내놓고 있다.
2025년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증권사의 적극투자형 디폴트옵션 평균 수익률은 16.30%로 은행(14.64%)과 보험사(13.88%)보다 높았다. 전체 고위험형 평균이 14.93%인 점을 고려하면 증권사의 운용 역량이 돋보인다.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형 증권사들은 자사 운용 펀드를 적극 활용해 차별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특히 글로벌 주식형, 테크주 중심, 배당주 중심 등 다양한 테마로 세분화해 가입자 선택권을 넓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디폴트옵션은 수익률 경쟁의 새로운 전장"이라며 "높은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신규 고객 유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TDF 16조원 돌파, 집합투자증권의 핵심상품으로
디폴트옵션과 함께 2025년 시장을 주도한 또 다른 주인공은 TDF(타겟데이트펀드)다. TDF는 가입자의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자동 조절하는 생애주기형 펀드다.
2024년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집합투자증권 투자액은 75.2조원으로 증가했으며, 이 중 TDF가 약 11.9조원을 차지했다. 2025년 12월 말에는 TDF 설정액이 16.5조원을 돌파하며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불과 2021년만 해도 TDF 투자액은 3.5조원에 불과했으나, 4년 만에 4.5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퇴직연금 적립금 내 TDF 비중이 2024년 먈 기준으로 15%을 넘어섰는데, 2026년까지 30%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TDF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이다. 젊을 때 주식 등 위험자산 비중은 70%까지 높여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한다.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을 늘려서 자산을 보존한다. 은퇴 시점에는 안전자산이 비중이 80%까지 높아진다.
이러한 자산배분 경로를 '글라이드패스(Glide Path)'라고 부르며, 각 운용사마다 고유한 글라이드패스 전략을 갖고 있다.
TDF의 4가지 장점: 자동화, 최적화, 분산화, 전문화
TDF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자동 리밸런싱으로 관리 부담이 없다. 가입자가 별도로 자산배분을 조정할 필요 없이 펀드가 알아서 해준다.
둘째, 생애주기에 맞는 최적 포트폴리오를 유지한다. 나이와 은퇴 시점에 따라 자동으로 위험도가 조절되므로, 젊을 때는 공격적으로, 은퇴 직전에는 보수적으로 운용된다.
셋째, 글로벌 분산투자로 변동성을 낮춘다. 대부분의 TDF는 국내외 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에 폭넓게 분산 투자하므로 특정 자산의 급락 위험을 완화한다.
넷째, 전문가의 적극적 운용을 받을 수 있다. 액티브형 TDF의 경우 펀드매니저가 시장 상황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며 초과 수익을 추구한다.
자산운용 관계자는 "TDF는 투자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 가입자들에게 최적의 솔루션"이라며 "은퇴까지 남은 기간만 알면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패시브 vs 액티브, 운용사별 전략 다양화
TDF 시장이 성장하면서 운용사들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크게 패시브형과 액티브형으로 나뉘는데, 각각 장단점이 있다.
패시브형 TDF는 인덱스를 추종하는 방식으로, 운용 수수료가 낮고(연 0.2~0.4%) 투명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TDF' 시리즈가 있다.
액티브형 TDF는 펀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시장을 분석하고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높은 수익률을 추구한다. 수수료는 다소 높지만(연 0.5~0.8%)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한화자산운용의 '한화 TDF', KB자산운용의 'KB TDF' 등이 대표적이다.
2024년 성과를 비교해보면, 액티브형 TDF의 평균 수익률이 12.5%로 패시브형(10.8%)보다 1.7%p 높았다. 다만 시장 하락기에는 패시브형이 더 나은 성과를 보일 수 있어 일률적으로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다.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처음에는 수수료가 낮은 패시브형을 선택했는데, 수익률을 비교해보니 액티브형이 더 나아서 옮겼다"며 "장기적으로는 수익률 차이가 크게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2040, 2045, 2050 빈티지 인기, ESG·테마형도 등장
TDF는 은퇴 예정 연도(빈티지)에 따라 상품이 구분된다. 2025년 가장 인기 있는 빈티지는 2040년, 2045년, 2050년이었다. 현재 30~40대 직장인들이 주로 선택하는 빈티지다.
2040 빈티지는 은퇴까지 약 15년 남은 50대 초반이 주 타겟이며, 주식 비중이 50~60% 수준이다. 2045 빈티지는 40대 후반과 50대초반 대상으로 주식 비중 60~70%이다. 2050 빈티지는 30대 후반, 40대 후반이 주 타겟이며, 주식 비중은 70~80%이다.
최근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를 반영한 TDF도 등장했다. 삼성자산운용의 'ACE TDF ESG' 시리즈, 한국투자신탁운용의 'KOSEF TDF ESG' 등이 대표적이다. MZ세대를 중심으로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배당주 중심 TDF, 인플레이션 헤지 TDF 등 테마형 상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TDF 시장이 성숙하면서 가입자 니즈도 세분화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다양한 전략의 TDF가 출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에픽 신상근 연금경제연구소장 / pinefield@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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