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6.17(수)

기금형제도 성공 핵심 필요 조건(3)

DC와 기금형 배분선택(하이브리드모델) 허용해야

성기환 CP

2026-06-17 08:23:44

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 박사)

김성일 이음연구소장(경영학 박사)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대한민국 퇴직연금 제도가 ‘기금형’이라는 새로운 항해를 준비하고 있다. 가입자 개개인의 책임에만 맡겨져 있던 자산 운용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전문성을 갖춘 기금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으로 자산을 증식시키는 이 모델은 국민의 노후 준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선박이 성공적으로 순항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제도의 외형을 바꾸는 것을 넘어, 실제 승객인 근로자들의 심리와 현실을 정교하게 반영한 내부 설계가 필수적이다.

특히, ‘100% 전문가에게 위탁하는 기금형’과 ‘100% 개인이 운용하는 DC형’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본 칼럼을 통해 연금 선진국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기금형 제도의 성공을 담보할 핵심 조건으로서 ‘하이브리드(Hybrid) 운용 모델’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이는 근로자가 자신의 퇴직 적립금 중 일정 부분은 전문가 집단인 ‘기금’에 위탁해 안정적인 코어(Core) 수익을 추구하고, 나머지는 기존 DC형 계좌처럼 본인이 직접 운용해 추가 수익(Satellite)을 노리는 방식이다.
1. ‘전부 위탁’의 함정: 통제권 상실에 대한 불안과 금융 교육의 역행

만약, 새로운 기금형 제도가 모든 적립금을 의무적으로 기금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설계된다고 가정해 보자. 이는 금융에 무관심하거나 지식이 부족한 대다수 가입자에게는 분명 편리하고 안정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부 위탁’ 모델은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첫째, ‘내 돈’에 대한 통제권 상실이라는 심리적 저항감이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노후를 위한 최선의 결정일지라도, 모든 운용 권한을 전문가 집단에 넘겨야 한다는 사실은 상당수 근로자에게 재산권 침해나 자율성 박탈로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스스로 투자 판단을 내리며 적극적으로 자산을 관리해 온 근로자들에게는 거부감이 더욱 클 것이다. 이러한 저항은 제도 도입 초기,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둘째, 가입자의 금융 이해도 향상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역행할 수 있다. 근래 들어 퇴직연금 자산운용에 실적배당형 비중이 늘어나고 특히 ETF 자산의 증가(최근 3년간 매년 100% 이상씩 증가)는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산운용에 대한 가입자들의 태도변화를 감안한다면 모든 것을 기금에 맡기는 구조는 근로자들을 다시 ‘수동적인 관찰자’로 회귀시켜 연금에 대한 무관심을 고착화시킬 위험이 있다.

2. 연금 선진국의 해법: 영국 NEST와 미국 401(k)의 ‘선택적 위탁’ 사례

이러한 딜레마를 연금 선진국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들은 강제적인 일원화가 아닌, 전문가 운용과 개인의 선택권을 조화시키는 유연한 구조를 통해 해답을 찾았다.
사례 1: 영국의 NEST (National Employment Savings Trust)

영국은 자동가입 퇴직연금 제도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대표적인 국가다. 정부가 설립한 공적 성격의 연금 사업자인 NEST는 가입자에게 정교하게 설계된 생애주기펀드(TDF)를 디폴트옵션으로 제공해 대다수 근로자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한다. 하지만 여기서 핵심은, NEST가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근로자는 사용자가 제공하는 다른 적격 퇴직연금 사업자(Qualifying Scheme)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일단 NEST에 가입했더라도 다른 개인연금(SIPP, Self-Invested Personal Pension) 등으로 자산을 이전(Transfer Out)하여 직접 운용할 권리를 가진다(다만, 현재 기여금을 납입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만 가능).

즉, ‘전문가 운용(NEST)’이라는 강력한 기본값을 제공하되, 원한다면 언제든 ‘개인 직접 운용’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기금형 위탁’과 ‘DC형 직접 운용’을 근로자 스스로 배분하는 하이브리드 개념과 맞닿아 있다.

사례 2: 미국의 401(k)와 자가운용계좌(SDBA)

세계 최대 퇴직연금 시장인 미국 401(k)는 하이브리드 모델의 가장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401(k) 플랜은 TDF나 밸런스펀드 등 10~20개의 전문가 선정 펀드 라인업(Core Investment Options)을 제공한다. 근로자는 이 안에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상당수의 플랜은 ‘자가운용계좌(SDBA, Self-Directed Brokerage Account)’라는 옵션을 추가로 제공한다. 이는 근로자가 자신의 401(k) 적립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별도의 증권계좌로 이체해 주식, 채권, ETF, 뮤추얼펀드 등 수천 개의 투자 상품에 직접 투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SDBA는 완벽한 하이브리드 모델이다. 근로자는 자신의 총 적립금 중 70%는 안정적인 TDF에 넣어두고, 나머지 30%는 SDBA를 통해 자신이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성장주나 특정 섹터 ETF에 투자하는 식의 정교한 자산 배분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전문가 운용을 통한 안정성’과 ‘개인 직접 투자를 통한 초과수익 추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3. 기금형 제도를 위한 제언: ‘한국형 하이브리드 모델’을 설계하자

영국과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명확한 방향을 제시한다. 기금형 제도의 성공적인 연착륙을 위해, 다음과 같은 ‘한국형 하이브리드 모델’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첫째, 적립금 분할 운용 구조 설계로서 근로자는 자신의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방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70% 기금 위탁, 30% 개인 직접 운용(DC형 계좌 유지)’와 같이 사전에 설정된 몇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본인이 직접 비율을 설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다.

둘째, 안정적 자산과 위험 자산의 조화로서 이러한 구조는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를 분리하는 효과를 낳는다. ‘기금 위탁분’은 대체투자 등을 포함한 장기 분산투자를 통해 안정적인 알파 수익을 추구하는 ‘코어(Core) 자산’의 역할을 한다.

반면, ‘개인 직접 운용분’은 근로자가 자신의 투자 철학에 따라 개별 주식이나 고수익 펀드 등에 투자하여 추가 수익을 노리는 ‘새틀라이트(Satellite) 자산’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는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도 부합하는 합리적인 투자 전략이다.

셋째, 지속적이고 현실적인 가입자 교육(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 및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에 관한 노사정 공동 선언문에 적시된 가입자교육)은 가입자가 연금 시장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공동선언문을 계기로 지난 20년 동안 형해화된 계약형 가입자 교육도 퇴직연금사업자 책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가입자 교육의 실효성만큼 제도의 발전과 가입자들의 노후를 증진시키고 제도운영에 동참하게 하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새롭게 도입될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우리의 노후를 바꿀 중요한 기회다. 그러나 그 성공은 제도 설계의 유연성과 현실 수용성에 달려 있다. 전문가의 체계적인 관리 능력과 개인의 자율적 선택권을 조화시키는 ‘하이브리드 모델’은 제도의 안정성과 가입자의 만족도를 동시에 높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현명한 대안이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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