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각 대상은 AK홀딩스 등 애경그룹 계열이 보유한 경영권 지분 약 63%이며, 매각 주관은 삼정KPMG가 맡았다. 애경산업의 5일 기준 시가총액이 4294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반영한 과감한 베팅이었다. 태광 컨소시엄은 연내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고 거래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애경그룹 재무위기 해소, 태광은 신성장동력 확보
이번 매각은 애경그룹과 태광그룹 모두에게 윈-윈 거래로 평가된다. 애경그룹은 유통과 석유화학 사업 부진으로 지주사인 AK홀딩스의 유동성 위기가 불거지자 그룹 내 캐시카우로 꼽히는 애경산업의 매각을 추진해왔다. AK홀딩스의 총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4조원 수준으로, 부채비율이 328.7%에 달하는 상황이었다.
석화·섬유 중심에서 K뷰티·생활용품 대전환
태광산업은 이번 애경산업 인수로 기존 섬유·석유화학 사업 부진에서 벗어나 'K뷰티'라는 새로운 성장 동력에 집중할 계획이다. 태광산업은 업황 부진에 올해 2분기 매출 4646억원, 영업손실 189억원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애경산업은 생활용품 브랜드 '2080', '트리오', '케라시스'와 화장품 브랜드 '루나', '에이지투웨니스'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 매출 6791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화장품 부문이 매출의 약 60~70%를 차지하고 있어, 태광그룹에게는 기존 B2B 중심 사업구조에서 B2C 시장으로의 진출 기반을 마련해주는 의미가 크다.
업계에서는 태광그룹이 보유한 화학·소재 사업과 애경산업 간 시너지 효과도 주목하고 있다. 화장품 용기·패키징에 쓰이는 소재를 자체 공급하거나, OEM·ODM 확장에 활용하는 등 그룹 내부 조달 체계 구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태광그룹이 계열사로 홈쇼핑을 보유하고 있어 뷰티와 홈쇼핑 라이브커머스 시너지도 기대된다. 애경산업이 국내 유통망과 중국 등 해외 시장으로의 수출 기반을 갖추고 있는 점도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태광산업은 애경산업 인수와 동시에 석화·섬유 산업 비중을 줄이고 저수익 사업을 정리하는 등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 중국발 증설 과잉에 최근 현지 스판덱스 공장을 철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 스판덱스 사업을 하는 태광화섬의 지난 3년간 누적 영업적자는 935억원에 달한다.
7월 중순부터는 중국 경쟁사들의 증설과 수요 회복 둔화가 겹치며 중국 스판덱스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중국 닝샤에서 추진하던 스판덱스 2공장 건설도 멈췄다. 앞서 올해 1월에는 울산 석유 2공장의 프로필렌 생산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석유 3공장의 아세토니트릴과 아크릴 공장도 절반 이상 가동을 멈췄다.
이번 거래가 성사되면 태광그룹은 2008년 유선방송 사업자를 인수해 티브로드를 출범한 후 17년 만에 대형 M&A를 성사시키게 된다. 그간 공격적인 M&A를 통해 케이블TV·홈쇼핑·금융업 등으로 사세를 키워왔지만 오너리스크가 불거지며 2008년 이후 인수 작업이 멈춘 상태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다시 M&A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흥국리츠운용을 통해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호텔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애경산업 외에도 계열사 흥국생명은 부동산 자산운용사 1위 이지스자산운용 인수전에 뛰어들며 사업 확장을 검토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지즈자산운용 인수전 참전
재계에서는 태광그룹의 공격적인 M&A 행보를 이호진 전 회장의 복귀 시그널로 해석하고 있다. 조 단위에 이르는 굵직한 인수 결정은 오너의 강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데다, 최근 사면 복권으로 사법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되면서 이번 M&A 성과가 이 전 회장의 경영 전면 복귀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태광산업은 올해 2분기 기준 유동자산 2조7126억원, 현금 및 현금성 자산 5039억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익잉여금은 4조1589억원에 달한다. 지난 10여 년간 신규 투자보다 벌어들인 수익을 축적한 결과 대형 인수를 감당할 충분한 실탄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태광그룹은 올해 7월 내년까지 화장품·부동산·에너지 등 신사업에 1조5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어, 앞으로도 공격적인 M&A 행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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