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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검은머리’ 외국인이 늘고 있다

총수일가 582명 중 41명이 외국 국적 … 이중 38명이 3·4세대

안재후 CP

2026-01-07 13:46:45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대기업 총수일가의 국적 지형이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쿠팡 개인정보 사태를 계기로 불거진 '검은머리 외국인' 논란이 단순한 논쟁을 넘어 대기업 경영체계의 구조적 변화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상장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집단 62곳의 총수일가 58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외국 국적자 비중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데이터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자 582명 중 7.0%에 해당하는 41명이 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표면적으로는 소수에 불과해 보이지만, 세대별로 살펴보면 변화의 방향은 극히 분명하다. 그룹 창업자를 비롯해 1·2세대 총수일가의 외국 국적 비율은 1.7%(3명)에 그쳤지만, 그들의 자녀 세대인 3·4세대의 외국 국적 비율은 무려 9.4%(38명)로 급증했다. 이는 부모 세대에 비해 약 5.5배 높은 수치다.

특히 3세대 총수일가의 외국 국적 비율이 10.8%로 가장 높으며, 4세대도 6.7%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는 단순한 수치 변화가 아니라 재벌가의 국적 구조가 세대교체와 함께 '글로벌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외 거주와 교육을 경험한 3·4세대가 현지 국적을 취득하는 경향이 점차 일반화되면서 전개되는 현상이다.

41명 중 39명(95.1%)이 미국 국적
외국 국적 총수일가 41명의 국적 구성을 살펴보면 압도적인 미국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41명 중 무려 39명(95.1%)이 미국 국적자로 집계됐으며, 일본과 싱가포르 국적자는 각각 1명에 불과했다. 일본 국적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이며, 싱가포르 국적자는 LS그룹 일가인 구재희 씨다.

미국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글로벌 금융·경제의 중심지라는 지위와 교육, 사업 기회 등을 고려한 재벌가의 실리적 선택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미국 거주 경험과 교육을 받은 총수 일가가 해당 국적을 유지하는 추세가 계속되면서 미국 국적 비중은 앞으로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재벌가, ‘검은머리’ 외국인이 늘고 있다


외국 국적 총수일가 26.8%가 경영에 참여

더욱 주목되는 대목은 외국 국적을 보유한 총수일가 상당수가 실제로 국내 기업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 대상 외국 국적자 41명 중 11명(26.8%)은 현재 임원으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단순한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 내에 이미 편입되어 있다는 의미로, 기업 경영과 의사결정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이다. 그는 조사 대상 중 유일한 외국 국적 총수(동일인)로 미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이우현 회장을 기업집단 OCI의 동일인으로 지정했으나, 외국 국적 총수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관리 체계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총수의 배우자와 직계 자녀 범위에서도 외국 국적 경영인의 사례는 계속 이어진다. 정몽규 HDC 회장의 부인인 김나영 호텔HDC 감사는 미국 국적이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아들 신유열 롯데지주 부사장은 일본 국적을 유지한 채 그룹 핵심 계열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삼천리의 이만득 명예회장의 딸인 이은선 부사장과 ST인터내셔널코퍼레이션의 유상덕 회장의 아들 유용욱 부사장도 모두 미국 국적자로 각각의 기업에서 경영활동을 수행 중이다.

혈족 범위를 넓히면 논란은 더욱 커진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여동생인 조현민 한진 사장은 하와이에서 태어난 미국 국적자로, 과거 2010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진에어의 등기이사를 역임했던 사실이 드러나 항공법 위반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국내 항공법은 외국인의 항공운송사업자 등기임원 취임을 명확히 제한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에 대한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외국 국적 경영인에 대한 제도적 공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이외에도 CJ 회장의 누나인 이미경 CJ 부회장, 세아제강의 이휘령 부회장, 고려아연의 최주원 부사장 등 다수의 외국 국적자가 국내 대기업의 경영 체계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SK·LS·효성 등 주요 대기업도 다수

외국 국적 일가가 가장 많은 곳은 고려아연으로, 지분을 보유한 최씨 일가 47명 중 13명이 미국 국적이다. 다만, 이들 중 해외 법인에 근무하는 1명을 빼고는 모두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다음으로는 SK(5명, 17.9%), LS(4명, 8.9%), 효성(3명, 27.3%) 순이며, CJ, 삼천리, 세아 각각 2명씩 외국 국적 총수일가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도 LG, 롯데, GS, 한진, 현대백화점, 사조, 애경, 아모레퍼시픽, HDC, OCI 등 10개 기업집단에서 각각 1명씩의 외국 국적 총수일가가 확인되었다. 주요 대기업집단의 상당 부분이 외국 국적 총수일가를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일인 지정 기준 재정비 필요

이번 조사가 상장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총수일가만을 대상으로 한 만큼, 실제 외국 국적을 보유한 재벌가 인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쿠팡 김범석 의장은 동일인이 법인으로 지정되어 이번 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개인정보 사태를 통해 외국 국적 경영인의 책임성과 규제 문제가 사회적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외국 국적 총수일가에 대한 동일인 지정 기준과 친족·지배구조 공시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적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 경영 참여 여부와 실질적인 지배력 수준에 따라 국적과 상관없이 동일한 책임과 투명성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회 차원의 제도 정비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재벌가의 국적 변화가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만큼,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투명한 경영 공시 체계와 책임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결국 '검은머리 외국인' 논란은 한국 재벌 지배구조의 또 다른 민낯을 드러내고,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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