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료와 기술을 전적으로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척박한 환경에서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도전정신이 남긴 유산은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올해 상반기 역대 최대 실적과 106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는 고려아연의 성과는 한 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창업주의 정신 위에 최창걸·최창영·최창근 명예회장이 각각 경영·기술·자원 경쟁력을 차곡차곡 쌓아올렸고, 현 경영진은 이를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으로 확장하고 있다.
산업을 만들기로 결정하다
최기호 창업주가 비철금속 제련에 진출할 무렵, 국내 산업의 현실은 척박했다. 산업화 시대를 맞이했지만 비철금속 기반은 아직 취약했다. 대기업들도 발을 담그기 망설이던 분야였다. 최창걸 회장은 창업주와 함께 고려아연을 설립해 회사 전체 경영을 총괄했다. 조직 체계와 재무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주요 사업 현안을 폭넓게 챙기며, 초기 기업이 흔들리지 않도록 버팀목 역할을 했다. 특히 지속적인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이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한 것이 그의 가장 큰 공으로 평가된다.
기술로 경쟁력을 쌓다
자원을 찾아 세계를 누비다
최창근 명예회장의 무대는 세계 곳곳의 광산 현장이었다. 원료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직접 발로 뛰며 글로벌 공급망을 구축했다. 안정적인 원료 확보가 곧 제련기업의 핵심 경쟁력이라는 신념 아래, 그는 수많은 자원개발 프로젝트를 주도적으로 추진했다. 이 세 명의 명예회장이 만든 경영·기술·자원의 삼각축이 맞물리면서, 고려아연은 더 이상 단순한 아연과 연 제조업체가 아니었다.
멀티메탈 통합제련의 완성
이 세 명의 명예회장이 만든 경영·기술·자원의 삼각축이 맞물리면서 고려아연은 단순한 아연·연 생산 기업을 넘어, 하나의 원료와 제련 부산물에서 금·은·동, 각종 희소금속까지 회수하는 멀티메탈 통합제련 체계를 완성했다. 이 구조가 바로 106분기 연속 흑자의 기반이 됐다. 단 하나의 금속이나 사업에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러 금속과 계열사의 실적이 서로의 변동성을 보완하는 구조다. 올해 2분기만 해도 금과 은의 가격이 약세였지만, 아연 가격 상승과 동 판매량 증가, 핵심광물 판매 확대가 이를 보충했다. 매출 6조3730억원, 영업이익 5870억원이라는 실적은 50년이 넘게 쌓인 다각화 전략의 결과였다.
핵심광물 시대를 선도하다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현 경영진은 선대가 마련한 기반을 단순히 계승하는 데 멈추지 않았다. 같은 멀티메탈 시스템이라도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현재의 상황에 맞게 고도화했다. 핵심광물에 주목한 것이다. 전략광물의 가치가 치솟으면서 R&D와 설비 투자를 강화했다. 같은 원료에서 더 많은 유가금속을 회수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현재 통합공정의 유가금속 회수율은 최대 96.5%에 달한다. 핵심광물 회수율도 80%대로 높아졌다. 2028년에는 동 생산능력을 연간 15만톤으로 늘릴 예정이고, 갈륨·게르마늄 생산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미래에 베팅하다
온산의 기술이 미국의 안보가 되다
이제 고려아연의 다음 도전은 태평양을 건넜다. 미국이 핵심광물을 국가안보의 문제로 보고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내면서, 온산에서 수십 년 축적한 고려아연의 통합제련 기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회의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투자 프로젝트를 주요 공급망 구축 사례로 직접 언급했다. '프로젝트 크루서블'이라 명명된 이 사업은 한국의 제련 기술과 미국의 자원·산업 인프라를 결합하는 것이 골자다. 미국 통합제련소에서는 아연·연·동뿐 아니라 갈륨·게르마늄·인듐·안티모니 등 다수의 핵심광물을 생산할 예정이다. 52년 전 국내 산업화를 위해 시작한 제련사업이 반세기를 거쳐 미국의 핵심광물 공급망 재건에 활용되는 단계로 확장된 셈이다.
고려아연의 역사는 한 세대의 성과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창업주의 도전정신 위에 최창걸 회장의 경영, 최창영 명예회장의 기술, 최창근 명예회장의 자원 경쟁력이 차곡차곡 쌓였고, 현 경영진은 이를 핵심광물과 미래 산업, 글로벌 공급망으로 이어가고 있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기존 경쟁력에 새로운 선택을 더해온 고려아연의 '비전과 도전정신'이 다음 50년에도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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