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이달 말 이사회를 열어 KDB생명 매각 안건을 논의하고, 다음 달 공개 경쟁입찰에 나설 계획이다. 산은은 최근 금융당국과도 KDB생명 매각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산은은 작년부터 한국투자금융지주, 교보생명, 태광그룹 등 잠재 인수 후보군을 폭넓게 접촉해 왔다. 현재로서는 한국투자금융지주가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된다. 산은은 한투와 실사 조건, 매각가 등을 놓고 물밑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보와 태광그룹은 내부 검토 끝에 KDB생명 인수전에 참여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투의 이번 움직임은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이사 회장이 지난해 초부터 공언해온 보험사 인수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다. 김 회장은 작년 3월 주주총회 후 "보험사 인수를 위해 여러 대안을 놓고 신중하게 검토하는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투는 이를 위해 보험사 인수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시장에 매물로 나온 보험사들을 전방위로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은 KDB생명의 자본건전성을 개선한 후 매각할 계획이다. 산은은 지난해 12월 30일 KDB생명을 대상으로 5천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산은의 KDB생명 지분율은 97.65%에서 증자 후 99.66%로 상승했다. 산은은 올해에도 3천~5천억원 가량 추가 증자에 나설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KDB생명의 총자산은 2025년 9월 말 기준 17조3천56억원으로 생명보험업계 14위 수준이다. 덩치는 작지 않지만, 건전성은 업계 '꼴찌'에 가깝다. 이 회사의 자기자본(자본총계)은 2025년 9월 말 -1천17억원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다.
특히 자본건전성은 업계 최하위 수준으로, 2025년 3분기 기준 KDB생명의 지급여력비율(K-ICS, 킥스)은 경과조치 후 165.2%로 금융당국의 권고치를 넘지만, 경과조치 전 킥스비율은 43.5%에 불과했다. KDB생명의 지난 3분기 경과조치 전 가용자본은 1조3천100억원이지만, 요구자본은 5천697억원에 불과한 상황이었다.
산업은행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완료했다고 가정하고 단순 계산하면, KDB생명은 가용자본을 1조6천억원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경과조치 전 킥스비율을 120%대까지 개선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2025년 3분기 기준 KDB생명의 가용자본 중 기본자본(Tier 1)은 -2천323억원, 채권 등으로 구성된 보완자본(Tier2)은 1조1천406억원이었다. 사실상 빚인 채권이 자본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산업은행의 유상증자를 통한 기본자본 확충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한투가 보험사 인수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한국판 버크셔해서웨이' 모델 구축이다. 보험사를 통해 저렴하고 안정적인 장기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한국투자증권이나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전문성을 활용해 높은 수익률로 운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제 한투의 보험사 인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메리츠금융, 미래에셋, 삼성금융그룹 등이 보험 계열사를 기반으로 유사한 전략을 구사하며 강력한 수익을 내고 있다. 특히 메리츠금융은 증권사가 딜을 소싱하고 보험사가 이를 소화하는 구조를 통해 빠르게 몸집을 키운 대표적 사례다. 메리츠금융은 2025년 3분기 누적 기준 순이익이 2조원을 넘어서며 증권과 보험 간 유기적 결합 모델의 성공을 입증했다.
한투는 현재 한국투자증권을 필두로 한국투자저축은행, 한국투자신탁운용, 한국투자캐피탈, 한국투자부동산신탁, 한국투자파트너스 등을 산하에 두고 있지만, 보험 관련 자회사는 없다. 한투의 수익은 대부분 한국투자증권에서 발생하는데, 2025년 상반기 한국투자증권의 순이익은 5천362억원에 달했다. 반면 한국투자캐피탈의 순이익은 144억원, 한국투자저축은행은 83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증권사는 외부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므로 매년 수익의 변동성이 높다"며 "그룹 차원에서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하려면 사업 다각화가 필요한데, 최근 한국투자증권이 높은 실적을 거둬 분위기가 좋은 만큼 지금이 적기"라고 평가했다.
카디프·롯데손보·KDB생명 저울질하다 KDB에 주목
한투의 보험사 인수 전략은 선택적이면서도 치밀하다. 한투는 지난해 3월 BNP파리바카디프생명 인수를 위해 삼정KPMG를 회계자문사로 선정하고 실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시너지와 성장성 측면에서 매력도가 낮다고 판단해 보류 상태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카디프생명의 자산규모는 약 2조원 수준으로, 사실상 보험업 라이선스 확보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평가였다.
이후 한투는 롯데손해보험으로 눈을 돌렸다. 2025년 9월경 한투는 딜로이트안진을 회계자문사로 선정해 롯데손보 인수를 위한 실사를 진행했다. 당초 한투는 생명보험사 인수를 우선 검토해왔으나, 매물로 나온 보험사들의 조건을 따져본 결과 롯데손보가 검토 대상이 됐다.
롯데손보의 2025년 상반기 순이익은 475억원으로, 한투가 인수할 경우 순이익 규모에서 한국투자증권 다음 가는 계열사가 될 수 있는 규모였다. 롯데손보의 2025년 3분기 기준 총자산은 14조8천835억원이며, 자본은 5천909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롯데손보의 경과조치 전 킥스비율은 115.3%로, 단순 수치로 비교할 때 KDB생명보다 건전성 및 수익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롯데손보는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적기 시정조치(경영개선권고)를 받으면서 인수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위는 롯데손보의 자본적정성이 취약하다고 판단해 건전성 관리 강화를 위해 최하위 수준의 적기시정조치를 부과했다. 여기에 롯데손보 최대주주인 JKL파트너스가 2조원대의 높은 매각가를 희망하면서 가격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웃돈을 주더라도 제대로 된 자산을 인수한다'는 기조가 확고하다"며 "실사 결과와 가격 조건이 맞지 않으면 과감히 포기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투는 다시 KDB생명으로 관심을 돌린 것으로 관측된다. KDB생명은 총자산 17조3천56억원(2025년 9월 말 기준) 규모로 중소형 보험사 중에서는 덩치가 작지 않고, 생명보험 라이선스를 단번에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산업은행이 '선(先) 정상화, 후(後) 매각'을 선언하며 대규모 증자에 나선 점이 결정적이다.
KPMG 가치평가 완료…실사 결과가 최종 변수
최근 보험업계에 따르면, 한투는 삼정KPMG를 통해 KDB생명의 가치평가를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투가 KDB생명 인수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최종 의사결정 단계에 근접했음을 의미한다.
보험사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에 한투가 삼정 KPMG를 통해 KDB 생명의 가치 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안다”며 “산은에서 우선KDB생명에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테니, 최대 8천억원 정도를 태워서 인수하라고 한투를 설득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앞서 한투는 BNP파리바카디프생명 인수 검토 시 삼정KPMG를, 롯데손보 실사에는 딜로이트안진을 각각 회계자문사로 선정한 바 있다. KDB생명 가치평가에 KPMG를 선정한 것은 세 번째 보험사 인수 검토 과정에서 다른 회계법인의 시각을 참고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투가 KDB생명 인수전을 완주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추후 KDB생명 실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 지가 관건"이라며 "경영 정상화를 위해 투입해야 할 자금이 예상보다 많으면 한투가 발을 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KDB생명은 과거 단기 실적 위주의 상품 판매와 취약한 리스크 관리로 체질이 약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보험업 경험이 없는 '낙하산 인사'들이 경영을 주도하며 경쟁력이 약화된 결과다. 회사가 단기 실적을 위해 중장기적으로 부담이 될 상품을 판매해 오며 악순환을 거듭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에서는 "한투는 보험사 인수 자체보다도 인수 이후 투입해야 할 총비용을 가장 중시하는 투자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사 과정에서 추가 자본 소요가 예상보다 커질 경우, 과거 카디프생명과 롯데손보 사례처럼 발을 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험 M&A 시장 전반에 미칠 파장
한투의 KDB생명 인수 여부는 보험 M&A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보험업계에는 KDB생명 외에도 롯데손해보험, 예별손해보험(이전 MG손해보험) 등이 매물로 나와 있다.
롯데손해보험은 2025년 11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적기시정조치(경영개선권고)를 받으면서 매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는 2019년 롯데손보를 3천734억원에 인수한 뒤 3천6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해 총 7천3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지만, 현재 시가총액은 5천억원대에 그치고 있다. 적기시정조치 효력 정지 신청도 기각되면서 올해 1월 2일 경영개선계획서를 제출한 상태다.
예금보험공사는 예별손해보험에 대한 예비 입찰을 진행 중이다. 예별손보는 예금보험공사가 100% 출자해 설립한 가교보험사로, 파산한 MG손보의 자산 및 부채를 이전받아 보험 계약의 유지 및 관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예별손보의 공개매각 예비입찰 마감은 오는 1월 23일 예정돼 있다.
보험사들의 매각 논의가 더디게 진행되는 배경에는 제도 환경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새 회계제도(IFRS17) 도입 이후 보험부채가 시장금리 변동에 따라 시가로 재평가되면서, 보험사들의 손익과 자본은 이전보다 변동성이 커졌다. 과거에는 장기간에 걸쳐 분산되던 부담이 재무제표에 즉각 반영되면서, 인수 이후 실적과 건전성을 예측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졌다는 평가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형사의 경우 단독 생존보다 대형 금융그룹 편입이 현실적인 선택지"라며 "자본 여력이 있는 대형 금융지주나 보험사를 중심으로 인수·합병 형태의 M&A 논의가 지금보다 더 잦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는 보험사들은 수차례 매각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이력이 있다"며 "이들 보험사의 건전성과 수익성 제고를 위해서는 인수 이후에도 추가적인 자금 수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투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KDB생명의 운명뿐 아니라, 롯데손보와 예별손보 등 다른 매물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한투가 KDB생명 인수를 확정한다면, 보험사가 없는 다른 증권 중심 금융그룹들도 보험사 인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글로벌에픽 성기환 CP / keehwan.s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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