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엇갈린 판단
1심은 2022년 12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665억원과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실상 노 관장이 패배한 셈이었다. 그런데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지난해 5월 뒤바뀐 판단을 내렸다. 양측 합계 재산을 약 4조원으로 계산한 뒤 그중 35%인 1조3808억원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위자료도 20억원으로 대폭 상향됐다. 1심보다 20배 이상 증가한 액수였다.
2심이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모친 김옥숙 여사가 남긴 '선경 300억' 메모와 선경건설(현 SK에코플랜트) 명의 약속어음을 증거로 인정했다. 노 전 대통령의 300억원이 당시 선경(현 SK)그룹으로 유입돼 기업 성장의 발판이 됐다고 본 것이다. 이를 토대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특유재산이 아닌 부부 공동재산으로 재분류했다.
대법원 1부는 16일 오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상고심에서 2심 판결을 깨고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은 대법원이 원심판결에 법리적 오류가 있다고 판단할 때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 다시 심리하도록 하는 절차다.
대법원은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원 지원을 재산분할에서 노소영 관장의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자금의 존재 자체가 확인되지 않았으며, 비자금이 SK 성장과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는 논리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단이다. 다만 위자료 부분에 대해서는 "법리를 오해하고 재량의 한계를 일탈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SK 지배구조 안정화, 하지만 소송은 계속
파기환송 결정은 최 회장에게 숨통이 트이는 결과다. 2심 판결이 확정됐다면 최 회장은 1조3808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SK 주식을 대규모로 매각해야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SK그룹의 지배구조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지연이자도 하루 1억8000만원씩(연 5% 기준) 발생해 연간 690억원대의 이자 부담이 예상됐다.
그러나 소송의 장기화로 인한 경영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환송심이 다시 진행되면서 재산분할액이 최종적으로 얼마가 될지, 언제 확정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2017년 7월 조정 신청 이후 이미 8년 3개월이 경과했으며, 소송은 더욱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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