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양재 본사. [사진=현대자동차그룹]](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12121025160901848439a4874112222163195.jpg&nmt=29)
현대차·기아 양재 본사. [사진=현대자동차그룹]
양대 R&D 수장 동시 교체, 이례적 인사
11일 현대차그룹은 양희원 현대차·기아 R&D본부장(사장)의 후임으로 만프레드 하러(Manfred Harrer) 제네시스&성능개발담당 부사장을 내정했다. 하러 부사장은 다음 주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해 R&D본부장으로 부임할 예정이며, 양 사장은 오는 15일 남양연구소에서 퇴임식을 진행한다.
이에 앞서 지난 4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총괄해온 송창현 AVP본부장(사장) 겸 포티투닷 대표가 사임 의사를 밝혔다. 송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거대한 하드웨어 중심의 산업에서 소프트웨어의 DNA를 심고 단순히 차를 만드는 것이 아닌 AI 디바이스를 만들겠다는 무모해 보이던 도전은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고 순탄치 않았다"며 "테크 스타트업과 레거시 산업에 있는 회사 사이에서 수없이 충돌했다"고 토로했다.
이번 인사의 배경에는 SDV와 자율주행 기술 분야에서 경쟁사 대비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다. 최근 테슬라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주행하는 '레벨2+' 수준의 감독형 완전자율주행(FSD) 기능을 국내에 도입했고, GM 역시 핸즈오프 주행이 가능한 '슈퍼크루즈'를 선보이며 한국 시장에서 경쟁을 시작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전방 주시 의무조차 없는 '레벨3' 자율주행 기술을 독일과 미국 일부 지역에 내놓은 상태다.
반면 현대차·기아의 자율주행 기술은 아직 운전대에서 손을 떼면 경고음이 울리는 레벨2.5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대차그룹은 높은 기술 완성도를 확보해야 한다는 이유로 '핸즈오프' 기능 도입을 미뤄왔고, 이로 인해 '국내 최초' 타이틀을 경쟁사에 내준 상태다.
더 큰 문제는 SDV 전환 속도다. '바퀴 달린 컴퓨터'로 불리는 SDV는 스마트폰이나 PC처럼 자체 운영체제(OS)를 통해 차량 성능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는 자동차를 말한다.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려면 SDV 전환이 필수적인데, 수십 개의 제어기(ECU)로 이뤄진 기존 자동차 시스템으로는 실시간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SDV 전환을 위해서는 설계부터 뜯어고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기계적 안전성을 중시하는 하드웨어 조직과 혁신을 앞세운 소프트웨어 조직 간 충돌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프레드 하러 제네시스 차량개발담당 부사장이 11월 21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르 카스텔레의 ‘폴 리카르 서킷’에서 제네시스 ‘GV60 마그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포르쉐+애플' DNA 갖춘 만프레드 하러
특히 포르쉐 재직 시절(2007~2021년) 하러 부사장은 포르쉐의 주력 모델인 카이엔, 박스터 등 내연기관 차량뿐만 아니라 포르쉐 최초의 전기차인 '타이칸' 개발을 주도한 인물이다. 현대차그룹에는 지난해 5월 합류해 제네시스 전 차종과 현대차 'N' 브랜드 및 GV60 마그마 등 고성능 차량 개발을 이끌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하러 부사장은 하드웨어의 완성도를 해치지 않으면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노하우와 경험을 갖춘 인물"이라며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R&D본부와 AVP본부 간 장벽을 허물고 화학적 결합을 이끌어낼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물러나는 양희원 R&D본부장은 차체 설계부터 프로젝트매니저(PM)까지 두루 거친 정통 엔지니어로, 하드웨어 품질을 안정화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하러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면 현대차에서 다섯 번째 외국인 사장이 탄생한다. 현재 현대차의 외국인 사장은 호세 무뇨스 대표이사, 루크 동커볼케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 브라이언 라토프 글로벌최고안전·품질 책임자, 성 김 전략기획담당 등 4명이다. 이로써 현직 현대차 사장 6명 중 5명이 외국인이 되는 셈으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경영 전략이 더욱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AVP본부 후임 인사와 조직 개편 방향 주목
관심은 이제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AVP본부의 후임 인사로 쏠리고 있다. 현재까지 현대차그룹은 송 사장의 후임을 확정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테슬라 출신 고위 임원 등 글로벌 빅테크 인재를 폭넓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IT 개발자 출신의 외부 인사가 영입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직 개편 여부도 관심사다. 업계에서는 송 사장 영입을 계기로 남양연구소에서 분리했던 조직을 다시 연구소로 이관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며, AVP본부를 R&D본부 산하에 넣는 방안도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계적 안전성을 중시하는 하드웨어 조직과 혁신을 앞세운 소프트웨어 조직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보다 유기적인 협업 체계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인사를 시작으로 미래차 기술 개발에 더 속도를 낼 전망이다. 판매량 기준 글로벌 톱3 메이커인 현대차그룹은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테슬라와 중국 업체들에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져왔다. 정의선 회장이 R&D 조직의 '심장(하드웨어)'과 '두뇌(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진 만큼, 전기차·하이브리드카 등 당장의 '승부 기술'은 물론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고도화에 얼마나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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