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국내 주식시장이 호황을 누리면서 담보로 제공한 주식의 가치가 대폭 상승한 영향이다. 오너일가가 보유한 전체 주식의 가치도 37조1724억원에서 69조1317억원으로 약 2배 증가했다. 담보여력은 풍부해졌지만, 실제로 돈을 빌린 규모는 거의 늘지 않은 것이다.
주가 오르자 주담 대출 속속 상환
대출 비중이 이처럼 급감한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는 주식시장의 강세다. 지난 1년간 국내 주식시장이 확대되면서 보유주식의 가치가 상승했고, 이는 자동으로 담보여력을 증가시켰다. 둘째는 오너일가의 능동적인 상환 움직임이다. 일부 총수 일가가 주식을 처분하거나 자산을 정리하면서 담보대출금을 상환했다.
경영권 리스크 크게 완화돼
주식담보 대출 비중의 급감은 재벌 오너 일가의 경영 안정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신호다. 대주주 일가가 주식을 담보로 설정해도 법적으로는 의결권을 유지할 수 있지만, 주가가 담보권 설정 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금융권의 마진콜에 따른 반대매매가 발생할 수 있다. 반대매매가 일어나면 주가는 추가로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경영권 위협까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주가가 크게 오르면서 담보 대출 비중이 낮아지자, 이러한 리스크가 대폭 완화됐다. 담보로 제공된 주식 가치가 충분해졌고, 마진콜 발생 가능성도 낮아진 것이다. 리더스인덱스 관계자는 "국내 주식시장이 호황 국면에 접어들면서 경영권도 덩달아 안정화됐다"고 분석했다.
삼성은 대출 늘렸지만, 담보비중은 크게 낮아져
다만 담보 비중을 보면 사정이 다르다. 삼성가 세 모녀의 담보비중은 34.5%에서 27.5%로 낮아졌다. 이는 주식가치가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홍라희 명예관장의 경우, 지난해 1월 2조1200억원을 대출받았으나 올해는 2조5750억원으로 4550억원 증가했다. 그럼에도 담보비중은 67.7%에서 29.3%로 크게 내려갔다. 보유주식의 가치가 2.2배 가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홍 명예관장은 올해 들어 추가로 1500만주에 대해 신한은행과 유가증권 신탁계약을 체결했는데, 현재 보유주식 가치는 지난해 1월 대비 약 2.2배 증가한 13조1000억원(1월 16일 종가 기준)에 달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지분 600만주를 처분하면서 삼성전자 지분 담보대출 2500억원을 전액 상환했다. 이로 인해 재출금은 5300억원으로 1년 전 대비 500억원 감소했다.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은 지난해 삼성물산 주식담보로 3240억원을 대출받았으나, 올해는 2600억원으로 640억원 줄어든 반면, 삼성전자 담보 대출은 2488억원에서 4978억원으로 2490억원 확대했다.
셀트리온·영풍 등 경영 변화 반영 대출 증가
삼성 다음으로 담보대출 규모가 크게 늘어난 그룹은 셀트리온이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지난해 1월 셀트리온 보유 주식 826만8563주(3.9%) 중 348만6689주를 담보로 2897억원을 대출받고 있었다. 1년 새 담보주식 수는 445만8950주로 100만주 이상 늘었고, 대출 금액도 4127억원으로 1230억원 증가했다. 담보비중은 39.1%에서 42.1%로 소폭 올라갔다.
영풍그룹의 경우,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자금 확보 차원으로 대출이 크게 늘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일가는 지난해 1월 공동명의를 포함해 18명이 총 4895억원을 대출받았으나, 1년 사이 5603억원으로 708억원 증가했다. 담보로 제공된 주식 가치는 1조92억원에서 2조492억원으로 2배 이상 급등했다.
신세계그룹 오너일가 주식담보 대출금은 1년 새 500억원 증가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담보대출은 2158억원으로 변동이 없었으나, 정유경 신세계 회장이 신세계 보유지분을 담보로 500억원을 신규로 대출 받았다. 한화그룹 오너일가의 대출금도 489억원 증가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담보대출은 1050억원에서 990억원으로 감소했지만, 장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180억원에서 380억원으로 200억원 증가했고, 삼남 김동선 부사장은 580억원에서 940억원으로 360억원 늘었다.
효성·DB·롯데 등 12개 그룹은 대출 감소로
대출금이 감소한 그룹들도 눈에 띈다. 가장 큰 감소폭을 보인 곳은 효성그룹이다. 오너일가 주식담보 대출금이 8358억원에서 2080억원으로 6278억원 줄어들었다.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지난해 효성, 효성티앤씨, 효성중공업, 효성화학 등 4개 계열사들의 보유지분을 담보로 5950억원의 대출을 받고 있었으나, 1년 사이 92% 감소해 444억원으로 축소됐다. 현재는 효성(178억원)과 효성티앤씨(266억원) 일부만 남아 있고 다른 담보 건은 모두 정리된 상태다. 조현상 HS효성 부회장도 같은 기간 4개 계열사 지분을 담보로 한 대출금이 2407억원에서 절반 이상 줄어든 1138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서는 조현준·조현상 형제가 경영진 사이의 대립을 줄이고 "독립 경영" 체제로 전환하면서 담보대출을 정리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DB그룹의 담보대출 규모도 4008억원에서 3244억원으로 764억원 감소했다.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의 담보대출은 3211억원에서 2446억원으로 감소했고, 딸 김주원 부회장도 318억원에서 248억원으로 줄었다. 다만 아들 김남호 명예회장은 479억원에서 550억원으로 71억원 증가해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롯데그룹은 오너일가 주식담보 대출금이 3174억원에서 2569억원으로 605억원 줄었다. 신영자 롯데재단 의장이 담보로 제공했던 소유 지분을 모두 정리하면서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도 250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주식담보 대출금이 500억 감소했다. 이 밖에도 박철완 전 금호석유화학 상무(255억원 감소), 박준경 금호석유화학 총괄사장(253억원 감소), 구광모 LG그룹 회장(220억원 감소),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180억원 감소) 등이 담보대출금을 줄였다.
결국 이 1년 사이의 변화는 주식시장의 호황과 오너일가들의 자산 관리 전략 변화를 보여준다. 담보로 제공된 주식 가치가 2배 이상 늘어나면서 대출 비중이 자동으로 내려갔고, 일부 오너들은 이를 기회로 삼아 기존 담보대출을 상환하고 있다. 이는 재벌 경영진들의 경영권 리스크를 크게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특히 주가가 담보권 설정 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발생하는 마진콜과 반대매매 위험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는 오너일가의 경영 안정성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변화로, 향후 한국 재벌의 경영 구조가 한층 더 견실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큰 상황에서 이러한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가가 급락할 경우 담보여력이 빠르게 줄어날 수 있으므로, 오너일가들은 계속해서 담보대출 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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