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일 이음연구소장, 경영학박사.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퇴직연금 연간 평균 수익률은 4.77%다. 국민연금과 그 지지자들은 이 수치조차도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 수익률은 15.00%(금액가중수익률, 잠정)라는 근거로 퇴직연금 시장 전체가 비효율과 무능에 빠진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숫자 뒤에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퇴직연금의 핵심 가치가 숨어있다.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달리 가입자 개인의 사유재산이며, 운용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이 근본이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여겨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자산을 묶어두는 가입자가 있는가 하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가입자도 있다. 실제로 2024년 한 해, 대부분의 가입자가 2~3%대 수익률에 머무는 동안, 수익률 상위 10%의 현명한 투자자들은 10%, 20%를 훌쩍 넘는 성과를 거두었다. 금융감독원 분석에 따르면, 소위 '퇴직연금 고수' 그룹의 최근 1년간 수익률은 38.8%에 달해, 평균 가입자의 9배를 상회했다.
이처럼 극명한 수익률 격차는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 개인의 투자 철학과 선택이 반영된 당연한 결과다. 국민연금은 이 모든 개인의 선택을 '평균'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실패로 낙인찍고, 자신들의 시장 진출 명분으로 삼고 있다. 이는 마치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식단을 강요하며 개인의 입맛과 건강 상태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폭거에 가깝다.
2024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는 정보기술(28.7%), 산업재(22.1%), 금융(12.1%) 등 국가 기간산업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운용사, 즉 '선수'로 직접 뛰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령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이 부진하다고 가정해 보자. 국민연금은 자신들이 대주주로 있는 기업들을 상대로 어떤 요구를 할 수 있을까? 주주 가치 제고라는 명분 아래 배당 확대를 압박하거나, 심지어는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통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부양하려 들 수 있다. 이는 자신들이 운용하는 퇴직연금 상품의 수익률을 단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명백한 '내부자적 행위'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는 금융 시장에서 '꺾기'라 불리는 불공정 거래 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 퇴직연금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특정 기업에 대한 주식 투자를 약속하거나, 반대로 퇴직연금 적립률이 저조한 기업의 주식을 매도하며 압박하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하다. 국가의 공적 기금을 운용하는 공공기관이 자본 시장의 질서를 흔들고 사익을 추구하는 '심판 겸 선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민간 금융사와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전체 자본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자신들이 퇴직연금 시장에 진출하면 수익률은 3배로 높이고 수수료는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과거 운용 성과가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3년간 국민연금의 연평균 수익률은 6.98%였으며, 이는 시장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동할 수 있는 수치다.
퇴직연금 시장의 문제는 '누가 운용하느냐'보다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있다. 가입자의 무관심과 원리금 보장 상품에 편중된 보수적인 투자 문화가 저수익의 근본 원인이다. 2024년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원리금 보장형 상품의 비중은 74.6%에 달하는 반면, 실적배당형 상품은 17.5%에 불과하다.
국민의 노후는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시혜적 복지의 대상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통해 일구어 나가는 소중한 권리다. 국민연금의 퇴직연금 시장 진출 시도는 이러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자본 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임을 직시해야 한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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