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6.08.25(화)

[심층분석] AI 활용능력으로 재편되는 취업 시장

‘AI를 아느냐’보다 AI로 풀어내느냐’로 채용 기준 질적 변화

안재후 CP

2026-08-25 14:22:04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KT가 25일 밝힌 신입 채용 공고는 대기업 채용 기준의 근본적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네트워크(NW) 인프라 운용, B2B 컨설팅과 세일즈, B2C 마케팅과 세일즈 분야의 대졸 신입을 다음 달 7일까지 모집하는 KT는 직무 맥락에서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지원자가 AI를 어떻게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하겠다고 명시했다. 이선주 KT 인재실장(전무)은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은 물론 AI를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역량까지 종합적으로 살핀다"며 "AI 대전환(AX) 플랫폼 컴퍼니에서 성장해나갈 인재들의 관심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채용 기준의 전환은 KT만의 흐름이 아니다. SK하이닉스는 자기소개서를 없애고 지원자가 AI를 업무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와 반도체 직무 전문성을 직접 기술하는 서식을 새로 넣었으며, 기존 20~30분이던 면접을 반나절로 늘려 과제 수행과 인터뷰를 함께 진행하며 직무 전문성뿐 아니라 AI 응용 능력, 인문학적 소양, 논리적 사고력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대기업들이 신입 채용부터 임원 평가까지 'AI를 아는가'가 아니라 'AI로 현업 문제를 풀 수 있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채용과 인사 체계의 중심축이 AI 활용 능력으로 재편되고 있다.

고객 접점 직무까지 AI 평가를 의무화하다
네트워크 인프라 운용, 기업 고객 컨설팅, 소비자 마케팅. 이 세 직무에는 한 가지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기술 백엔드가 아니라 고객을 직접 대면하고 현장 사업을 펼치는 분야들이다. KT가 이런 분야에 AI 평가를 적용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채용의 중심이 'AI 기술을 아는가'에서 'AI로 실무 문제를 푸는가'로 근본적으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KT는 평가 방식도 명확히 설정했다. 직무 맥락에서 제시된 상황 속에서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본다. 이는 생성형 AI 사용 경험이나 도구 명칭 같은 표면적 지식이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적절한 AI 도구와 데이터를 선택하며 결과를 검증하고 현업에 적용하는 전체 프로세스를 평가한다는 의미다.

입사 후의 책임도 명시했다. KT는 "선발된 신입사원이 입사 후 현장에서 고객과 사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각 직무의 전문성을 체계적으로 쌓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성장 기회를 제공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채용과 교육의 경계를 허물고, AI 활용 능력을 조직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신호다.

SK하이닉스, 자소서 폐지하고 'AI 응용력' 묻다
SK하이닉스의 움직임은 더욱 파격적이다. 2026년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진행 중인 하반기 신입 채용부터 자기소개서를 폐지하고 학력·연령 제한을 전면 폐지했다. 막바지 접수가 한창인 상황에서도 이 같은 파격적 전환의 신호는 뚜렷하다. 대신 서류에서 AI 활용 역량과 반도체 직무 전문성을 기술하는 신규 서식으로 전환했고, 면접은 기존 20~30분에서 반나절 심층면접(과제 수행+인터뷰)으로 대폭 늘렸다. 학력과 어학 성적 같은 기존 스펙은 과감하게 버렸고, 지원자가 직무 기반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지를 집중 검증하는 구조로 전환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했다. "AI를 실제 업무에 어떻게 활용해 현업 문제를 풀 수 있는가"가 핵심 질문이다. 성장 과정이나 성격의 장단점 같은 기존 자소서식 서술이 아니라 구체적 문제 상황에서의 AI 활용을 묻는다. 반도체 기술 직무의 현장 과제를 AI로 해결하는 해커톤을 4분기에 개최하고, 우수 참가자에게는 서류전형 면제와 면접 직행 기회까지 제공한다.


채용 떠나 조직 전체 'AI 역량 평가'로 확산
현대차와 기아는 채용 연계형 교육 프로그램을 AI 중심으로 재편했다. 올해 상반기 모집을 완료한 소프티어 부트캠프 8기부터 '인공지능(AI) 퍼스트' 커리큘럼을 적용하고 AI 엔지니어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기존 교육 과정에 AI 커리큘럼을 대폭 추가했으며, 실무 프로젝트 전반에도 AI 도구를 활용하도록 구성해 현장에서 즉시 투입 가능한 수준의 전문 엔지니어를 길러낸다. 교육을 수료하면 신입 채용을 위한 최종 면접 기회가 주어져, 교육 과정 자체가 곧 채용의 관문으로 이어진다.

채용 기준의 전환은 재직자 평가로까지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오는 10월로 예정된 임원 목표관리(MBO·Management By Objective) 평가에서 기존 2~5점이던 'AI 대전환(AX) 역량 제고' 배점을 20점으로 늘렸다. 이는 12월 정기 임원 인사에 반영될 예정이다. 평가는 단순히 AI 도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개편, AI 에이전트 확보, 조직 효율성 향상 같은 구체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롯데 그룹도 같은 방향을 잡았다. AI 에이전트 역량이 향후 채용 및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고 밝히며, 그룹 내 AI·IT 담당 임원 150여명이 'AX가 만드는 진짜 가치'를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하고 있다. 최근에는 AX가 그룹의 핵심 경영 과제로 떠오르면서 AI와 데이터, 플랫폼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CEO로 전진 배치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알고 있다'에서 '풀어낸다'로, 평가 기준 본질적 전환
여러 기업의 사례에서 공통점이 드러난다. 생성형 AI 사용 경험이나 도구 명칭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기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기업들이 보는 것은 네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문제의 정의다. 주어진 업무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능력이다. 둘째는 도구 선택이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AI 도구와 데이터가 필요한지 판단하는 역량이다. 셋째는 결과 검증이다. AI가 제시하는 그럴듯한 거짓말(환각 현상·Hallucination)이나 편향된 데이터를 필터링하고, AI의 답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단순 면접을 넘어 반나절 이상의 심층 면접과 현장 과제를 설계한 배경에는 이 검증 역량의 중요성이 자리 잡고 있다. 넷째는 현업 적용이다. AI의 결과를 업무 현장에 어떻게 실제로 반영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지점이다.

이 변화의 의미는 명확하다. "챗GPT를 써봤다"는 진술보다 "고객 이탈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안을 만들 때 AI 결과를 어떻게 검증하고 보완했는가"가 더 큰 무게를 가진다는 뜻이다. AI 리터러시의 실무화, 또는 AI 활용력의 직무역량화라고 부를 수 있는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교육과 채용의 동반, 새로운 시장 만들다
다만 한 가지 쟁점이 남는다. AI 활용 능력을 채용의 필수 요건으로 삼을 경우, 교육 접근성에 따른 구직자 간 격차가 심화될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채용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AI 유료 도구 결제나 사교육 접근성에 따른 새로운 'AI 격차(AI Divide)'가 기존 스펙 부담 위에 또 다른 취업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대차·기아와 KT처럼 채용연계 교육을 병행하거나, SK하이닉스처럼 직무 기반 해커톤을 통해 지원 경로를 다층화하는 기업들의 접근 방식은 이 문제에 대한 한 가지 보완책으로 작동할 수 있다. 기업이 필요한 인재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그 인재를 길러내는 책임까지 함께 지는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채용과 평가, AI 중심 새로운 인사 체계 완성
KT의 AICE 자격시험이 은행과 대학, 공공기관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변화의 범위를 시사한다. 한두 회사의 일시적 실험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구조적 전환이라는 신호다.

대기업 채용에서 AI는 더 이상 특정 직군을 위한 가산점이 아니라, 각자의 직무 전문성을 확장하는 기본 업무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채용의 관건도 "AI를 사용할 줄 아는가"에서 "AI의 답을 검증하고 현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로 이동했다. 이 변화가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깊게 시장 전체에 침투할지가 2026년 한국 취업 시장의 핵심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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