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일 이음연구소장, 경영학박사
그동안 기금형 제도의 핵심으로 논의되어온 수탁법인 설립 방식은 노사 동수로 구성된 법인이 기금을 운용하는 구조였다. 이는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여러 한계를 노출했다.
수탁법인 방식은 몇몇 공적 기관이 기금을 일괄 운용하는 구조로, 가입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시장 경쟁 원리가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컸다. 운용 성과가 부진해도 대안이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안도걸 의원의 법안은 퇴직연금사업자가 직접 '퇴직연금기금 전문운용사'를 설립하고 노동부의 인가를 받도록 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한다. 이 법안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3개 이상 사업자와의 계약 의무화'다.
이러한 구조는 운용사 간의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여 수익률과 서비스 품질 향상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 운용사들은 더 나은 성과를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동기 구조를 갖게 된다.
법안 도입에 찬성하는 세 가지 이유
이 법안을 지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실질적인 선택권 확보다. 법으로 정해진 복수 계약 의무 조항을 통해 가입자들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운용사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는 공적 기금의 획일적 운용 방식과 비교할 때 명백한 진전이다.
둘째, 전문성과 책임성의 동시 강화다. 법안은 기금전문운용사의 설립 요건을 대통령령으로 구체화하여, 자본금과 인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수탁자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운용사의 책임성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다.
물론 이 법안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기본법상 중소기업' 전체를 기금형 대상에 포함한 것은 현실적 한계를 드러낸다. 중소기업 참여 확대를 위한 인센티브 지원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예산 제약으로 인해 실제 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
퇴직연금기금 전문운용사의 설립은 퇴직연금사업자들에게 기회이자 시험대가 될 것이다. 운용 역량이 부족한 사업자들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며, 진정한 운용 능력을 갖춘 사업자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안도걸 의원안은 비록 최상의 방안은 아닐지라도, '경쟁을 통한 건전한 시장' 조성이라는 목표를 향한 현실적인 차선책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제는 수탁법인 설립을 통한 기금형 제도 도입 논의를 마무리하고, 기금전문운용사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도입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공론의 장을 마련해야 할 때다. 모든 퇴직연금 이해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퇴직연금제도의 진정한 주체인 기업과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시장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퇴직연금 개혁의 최종 수혜자이자 소비자는 바로 기업과 근로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만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에픽 신규섭 금융·연금 CP / wow@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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