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훈 변호사
술을 과하게 마시면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표현하는 블랙아웃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는 뇌의 해마 기능이 일시적으로 억제되어, 당시의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현상이다. 말하고 걷고 행동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나중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특히 공복 음주, 폭음, 빠른 음주 속도 등은 블랙아웃 발생 위험을 높인다.
반면 패싱아웃은 의식을 잃고 반응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다. 실신하듯 쓰러지거나 외부 자극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며, 블랙아웃과 달리 행동이나 의사표시도 불가능해진다.
그런데 준강간은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을 때 이를 이용해 간음이나 추행이 이뤄진 경우에 성립한다. 이때 말하는 ‘심신상실’은 정상적인 판단력이나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항거불능’은 저항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블랙아웃 상태는 기억이 없을 뿐, 당시 피해자가 의사소통을 했거나 행동이 가능했다면 법적으로 심신상실로 인정되기 어렵다. 반대로, 패싱아웃 상태는 명백히 의식을 잃은 상태로 간주되기 때문에 준강간죄의 성립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법원은 두 상태를 구분할 때, 피해자의 평소 음주 습관, 사건 당시의 영상 기록(CCTV), 제3자의 진술, 피해자와 피의자의 진술 일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단순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만으로는 법원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시 정황을 구체적으로 소명해야 한다.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과정, 피해자의 의사 표현, 성적 행위 전후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준강간의 성립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준강간죄는 강간죄와 마찬가지로 유기징역 3년 이상의 중형이 선고될 수 있는 중대 범죄다. 초범이라고 해도 실형 가능성이 존재하며, 벌금형은 아예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사건 발생 후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법무법인 YK 인천분사무소 이동훈 변호사는 “술자리에서의 성적 행위는 사적 영역일 수 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형사사건으로 번질 수 있는 만큼 경계심이 필요하다”며 “항상 상대방의 상태와 동의 여부를 신중히 확인해야 하며, 문제가 발생했다면 당시 상황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와 진술을 확보해야 한다. 처벌이 무거운 만큼, 신속한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에픽 이수환 CP / lsh@globalep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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