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그니오는 2021년 2월에 설립된 비교적 신생 회사로, 미국·유럽을 거점으로 전자 폐기물(e-waste) 재활용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고려아연의 자회사 페달포인트가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이그니오 지분 100%를 약 5,800억 원(대략 4억5000만 달러)에 인수하였는데, 이는 설립 1년 6개월도 안 된 회사에 대한 대규모 투자였다.
매출 100억의 자본잠식 회사
이그니오 인수가 문제가 된 이유는 매매 가격의 적정성이다. 인수 당시 2021년 기준 이그니오의 자기자본은 약 -19억 원의 완전 자본잠식 상태였다. 같은 기간 매출은 약 100억 원 안팎으로 추정되는데, 고려아연이 제시한 인수가는 이 매출의 약 50배 수준이었다.
자원순환 전략 거점이자 공급망 확보 전초기지
고려아연은 이그니오를 통해 '트로이카 드라이브'라는 중장기 성장 전략의 한 축인 자원순환 사업을 강화하려 했다. 트로이카 드라이브는 재생에너지, 자원순환, 2차전지 소재 등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 고려아연의 미래 사업 포트폴리오다.
이그니오는 미국과 유럽에서 발생하는 전자폐기물(특히 회로기판과 전자부품 스크랩)을 수집하여 제련 공정을 통해 구리, 금, 은, 팔라듐 등 유가금속을 추출한다. 프랑스에 전자 스크랩 제련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조지아주에는 약 8,500만 달러 규모의 2차 제련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고려아연은 최근 미국 정부의 구리 관세 부과 조치로 구리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에서 이그니오의 가치가 재평가받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공급망 안정화와 원료 확보 관점에서 이그니오의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치열한 법적 공방의 현황
미국 법원은 이그니오 인수 과정에 대한 증거 확보와 관련 임원들의 증언 취득을 인정했다. 미국 뉴욕 남부지방법원은 올해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영풍의 증거개시 신청을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페달포인트의 재무자료는 이그니오가 과대평가된 가격으로 인수됐음을 보여줄 수 있으며, 이사들이 거래에 대해 적절한 실사를 하지 않았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부풀려진 기업 가치를 수용했음을 입증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현재 영풍은 이그니오 투자에 핵심적으로 관여한 페달포인트의 CFO 함모씨를 비롯해 시니어 매니저 하모씨 등의 증언을 확보한 상태다. 한국 법원의 주주대표소송 첫 변론은 2026년 1월 29일에 예정되어 있다.
경영권 분쟁 전초전이자 정기주총 승패 가를 변수
업계는 이그니오 인수 분쟁을 내년 3월 정기주총을 앞둔 전초전으로 보고 있다. 정기주총에서는 현재 이사회 19명 중 6명의 임기가 만료되며, 최윤범 회장 측과 영풍-MBK 연합의 지분 확보 경쟁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현재 고려아연에 대한 영풍-MBK 연합의 지분은 약 44%로 최윤범 회장 측의 약 30%를 크게 앞서고 있다. 이그니오 인수가 경영상 실책으로 판명될 경우 고려아연 경영진의 판단력과 경영 능력에 대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이는 영풍이 추가 이사진을 확보하기 위한 유력한 명분이 될 수 있다.
실적 개선과 법적 판단이 좌우할 결과
이그니오의 평가는 향후 실적 개선 여부, 미국·유럽 전자폐기물 리사이클링 시장의 수요 확대 속도, 법원의 최종 판단에 크게 달려 있다.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부터 이그니오의 실적이 반등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재무 수치는 비공개 자회사 특성상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 법원의 증거개시 결정과 핵심 임원들의 증언 확보는 한국 법원의 주주대표소송 판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그니오 인수 과정이 과연 적절한 실사와 의사결정 절차를 거쳤는지, 아니면 부풀려진 기업가치에 기반한 부적절한 투자였는지가 규명되는 과정은 고려아연의 지배구조와 경영권 판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글로벌에픽 안재후 CP / anjaeh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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